햇병아리 교사시절, 윤리 수행평가로 한명씩 나와 연필을 깎아보라고 했다. 교실은 웅성거렸고 말썽꾸러기 몇몇은 평가 도중 줄행랑을 쳤다. 때마침 복도를 지나던 교장이 교실로 들어섰다. “꽤 보수적인 분이시라 황당할 법도 한데 별 말없이 나가셨어요. 나중에 따로 불러 ‘최고의 교사’가 되라고 격려까지 해주셨어요. 그때부터였어요. 동북고가 무척 맘에 들었고 정말 신바람 나게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별난 수행평가를 한 속내를 물었다. “평소 컴퓨터 자판만 두드린 아이들은 손끝 근육만 발달했지 손으로 만드는 데는 어설퍼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죠.” 강방식 교사의 답변이다. 그 후에도 마음껏 욕해보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물건 가져와 설명하기 등 기상천외한 시험으로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강방식(41세) 교사. 전국적으로 유명한 스타 논술교사다. EBS 논술강사, 교사 연수 단골 강사 게다가 유력 일간지 고정 칼럼리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논술 관련 책도 여러 권 냈다. 동북고 학생들은 강 교사의 윤리 수업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재미있어 한다.
‘웃으며 살자’가 좌우명인 그는 자전거,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옷차림새도 늘 멋쟁이다. 종횡무진 활약하는 ‘강방식 히스토리’가 궁금했다.
막노동하다 선생님 된 서울대생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학창시절 소문난 수재였다. 집이 가난했던 탓에 등록금이 싼 국립대를 가야만 했고 서울대 윤리교육학과에 입학한다. 일찌감치 대학교수로 진로를 정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대학원시절 지도 교수는 그를 제주교대 교수감으로 점찍고 밀어주었다. “학회와 세미나를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인맥, 학맥간 보이지 않는 싸움 속에서 지쳐갔죠. 제 인생의 3대 키워드가 ‘인간, 자유, 사랑’인데 이 길은 아니다 싶었죠.”
교수의 꿈을 접은 뒤 강원도에서 통나무집 짓는 곳을 기웃거리는 등 아픈 20대 후반기를 보냈다. 가난한 고학생이었지만 서울대생 프리미엄 덕에 손쉽게 할 수 있는 과외교사는 ‘쉽게 돈을 버는 게 겁나서’ 몇 번 해보다 사절했다. 대신 공사장 일꾼으로 돈을 벌었다. “노가다 경력이 꽤 되요. 흠뻑 땀 흘리고 잠깐 쉴 때였어요. 바로 옆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의 신나는 함성소리가 들려왔는데 순간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교사란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았죠.” 그 뒤 학교 후배의 주선으로 교단에 서게 되었다.
‘끝장 토론’하던 교사들끼리 뭉친 논술드림팀
“12년 전 의기투합한 동료 교사들끼리 독서토론 모임을 만들었어요. 책 한권을 정해 끝장 토론을 벌였죠. 전공이 제각각이다보니 똑같은 책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었어요. 참 많이 배웠습니다.” 이게 인연이 되어 뜻 맞는 교사들끼리 뭉쳐 동북고 논술팀을 만들게 되었다. 2005년의 일이다.
먼저 중고등학교 전 과목 30여종의 교과서를 샅샅이 분석했다. 관련 참고도서와 신문 자료를 뒤져가며 인문사회분야와 자연과학까지 통합한 논술 수업안을 마련했다. “한 교실에 물리, 경제, 윤리 세 과목 교사가 동시에 들어가 수업했어요. 가령 ‘촉매’를 주제로 과학 개념을 설명한 후 경제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 그리고 나서 사회 이슈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보죠. 아이들도 관심이 많고 재밌어했죠.” 수업은 카메라로 촬영해서 꼼꼼히 강의 내용을 평가하며 보완해 나갔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적으로 수많은 교사가 논술수업을 보기 위해 동북고를 찾았다.
교사 입장에서 논술은 수업준비하기가 까다롭다. 인문사회부터 자연과학까지 폭넓게 알고 있어야 하며 예술적 감수성도 필요하고 사회 이슈도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힘은 많이 들지만 끈질기게 파고들며 노하우를 쌓은 덕에 동북고 논술드림팀은 사교육계에서조차도 부러워하고 있다. “교사들 간 팀티칭을 하며 많이 배워요. 다들 자존심이 걸고 경쟁적으로 공부하고 벤치마킹하면서도 진심으로 서로의 성장을 돕죠. 반면 정글의 세계에 사는 학원 강사들은 우리 같은 과목 간 협업시스템이 불가능하죠.”
아이들과 ‘에티오피아에 나무심기’ 도전
시간을 쪼개 가며 늘 바쁘게 사는 강 교사는 요즘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간 에티오피아로 여행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에티오피아에 나무를 심어주는 NGO를 만들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기업을 찾아가 후원금을 모으고 홈페이지도 만드는 한편 NGO 스터디를 하며 논문을 쓰는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어요. ‘세계화, 환경문제’ 등 교과서 속 개념을 직접 실천할 수 있도록 장을 펼치는 거죠. 동북고에서 씨앗을 심어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학생의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강방식 선생님. “제자들이 사회에 나간 2~30년 뒤에도 자신 있게 인생을 개척할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길러주고 싶어요. 생각하는 힘, 창의성 그리고 실행력 이 세 가지만 갖추면 어디서건 당당할 수 있으니까요.”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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