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 신입생으로서의 여름방학을 끝내고 2학기 수업을 시작할 무렵, <현대시> 강의 시간에 새로운 교수가 한 분 들어오셨다. 30대 중반의 자그마한 키의 시인이셨는데, 시인이어서인지 그의 눈은 맑고 투명했다. 그 선생님과는 그렇게 만남이 시작되어 대학 4년간 참 많은 술을 함께 마셨다. 수업 시간에 함께 한 시간보다는 술자리에서 그분과 함께 한 시간이 더 많았다. 아직 학생이어서 용돈이 변변치 못한 처지라, 내가 그 분을 대접하기보다는 주로 내가 얻어먹는 편이었다. 그분의 수업은 강제력이 있기보다는 학생들에게 많은 자율을 주는 수업이었다. 그래서 학생들 중에는 수업을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그것이 좀 불만스러웠다. 왜 좀 더 강하게 학생들을 수업에 임하도록 못하시는 것일까?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분은 우리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시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신 분이었다. 자칫 방탕에 빠질 수 있는 대학 생활에서 진정한 자율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터득하도록 만들어주셨고, 술좌석에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선생님의 경험담은 지금도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침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시 창작과 강의로 바쁘신 와중에 계간(季刊) 시지(詩誌)를 창간하셨다. 순수문예지가 뿌리기 내리기 힘든 이 척박한 사회에 사재(私財)를 털어 출판사를 만드시고 시전문지를 내신 것이다. 혼탁하기만 한 이 사회에 맑은 물줄기를 흘려 넣자는 그분의 뜻이 짐작이 되어, 나는 선뜻 평생회원으로 등록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내야 하는 것이었지만, 학창 시절 그 분에게서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이기보다, 이만큼 장성한 제자가 뒤에 있어 선생님을 응원한다는 뜻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지금도 나는 머리가 복잡하면 선생님의 사무실을 찾는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노라면, 내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실타래는 술술 풀려나간다. 굳이 선생님께 문제를 말씀드리고 해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물고기 잡는 법을 다시 한 번 상기할 뿐이다.
올해로 나도, 공교육에서 20년, 사교육에서 6년, 총 교직 26년째로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그동안 제자들에게 물고기 만 잡아다 준 것은 아닐까? 오늘 저녁에는, 선생님을 모처럼 찾아뵙고 너무 오래 엉클어진 채 방치된 머릿속 실타래를 정리해야겠다.
한상면 원장 압구정 국어논술전문학원
문의 (02)3444-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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