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날 기획 - ''우리 남편 안팝니다''

영원한 애증의 대상 ''남편'', 그래도 팔수야 없지!

지역내일 2011-05-23

"남편 팝니다. 사정상 급매합니다. ○○○○년 ○월 ○○예식장에서 구입했습니다. 구청에 정품 등록은 했지만 명의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한때 아끼던 물건이었으나 유지비도 많이 들고 성격장애가 와서 급매합니다. 구입 당시 A급인 줄 착각해서 구입했습니다. 마음이 바다 같은 줄 알았는데 잔소리가 심해 사용 시 만족감이 떨어집니다. 음식물 소비는 동급의 두 배입니다. 하지만 외관은 아직 쓸 만합니다. AS 안 되고 변심에 의한 반품 또한 절대 안 됩니다. 덤으로 시어머니도 드립니다."
한 때 주부들의 공감 속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던 ''남편 팝니다''라는 문자는 동시에 남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주부들 입장에서는 문자 내용처럼 정말 남편을 팔아버리고 싶었던 순간들이 어디 한 두 번뿐이었겠는가. 하지만 ''웬수'' 같다가도 험한 인생길 동지처럼 든든한 남편을 팔수는 없는 법. 부부의 날을 맞아 "우리 남편 이래서 안팝니다"라고 외치는 주부들의 사례를 모아보았다.


아들과 둘도 없는 사이인 남편
휴대폰이 없던 시절, 서로 약속 장소를 잘못 알고 있는 바람에 한 시간 넘게 애를 태운 적이 있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에 마땅히 연락해볼 곳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거의 울상이 돼 같은 곳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고 남편은 이리저리 나를 찾아 뛰어다녔다. 결국 남편은 한겨울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로,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나를 찾았다. 그래도 보자마자 미안해하면서 내 마음을 달래려고 애썼고 배고플까봐 걱정부터 했다. 그런 든든한 모습에 반해 초고속으로 결혼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그런 든든함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내가 남편 뒤치다꺼리에 나서야 했다. 무슨 남자가 전구도 하나 못 갈아 끼울 정도로 집안일에는 젬병이었고, 웬 친구가 그렇게 많은지 친구 위하느라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친구가 보험 일을 시작하면 몇 년씩 납입해온 다른 회사 보험 해약하고 다시 가입해 주었고, 자동차 판매 실적을 올리는 게 급하다고 부탁하면 어느새 멀쩡한 우리 차 옆에 새 차가 서 있기도 했다.
이런 상황만 본다면 벌써 ''급매''를 해야 했겠지만 그래도 아들에게는 둘도 없는 아빠라는 점 때문에 판매 보류 중이다. 아들이 바둑을 배운 후로는 아빠가 퇴근하기만 기다렸다가 바둑판 앞으로 끌고 갔다. 귀찮을 법도 한데 남편은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아들과의 대국을 즐겼다. 축구, 야구, 농구 등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자 주말마다 한강 공원으로 나가 둘이서 실컷 땀을 흘린 후 같이 목욕탕에서 물장난을 쳤다. 아들이 점점 커가면서 엄마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 늘어났고 그 때마다 남편은 아빠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준 것이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중요한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이면 둘이 난리가 난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TV 앞에서 흥분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친구사이 같다. 도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나만 혼자 다른 일을 할 때가 많다. 사춘기가 되면 아빠와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든다지만 우리 집은 예외다. 스포츠와 관련된 얘기로 둘이서 늘 대화를 이어가니 말이다. 평소에는 엄마밖에 모르는 아들이 야구경기의 규칙이나 구단의 역사 등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로 아빠한테 달려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남편''은 팔고 싶을 때도 많지만 ''아빠''로서는 만점이니 아들을 위해 참고 살 수밖에.


 

늙고 힘없는 남편, 안쓰럽게 느껴질 뿐
우리는 결혼 27년차, 50대 중반의 동갑부부다. 큰 딸은 학교 졸업 후 회사에 다니고, 둘째인 아들은 대학생이다. 어느덧 성인이 된 두 아이들을 보니 그 세월만큼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설펐던 신혼생활을 거쳐 시댁 식구들의 뒤치다꺼리로 바쁘게 살았던 30~40대. 충북 충주가 고향인 남편은 5남매 중 장남이다.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이 넘쳐나는 시댁은 크고 작은 대소사가 빈번했고, 그때마다 모든 행사는 맏이인 우리 집에서 치러야했다. 두 달에 한번 꼴로 찾아오는 제사는 물론 시누이와 시동생들의 결혼, 그리고 젊었을 때 혼자되신 시어머니를 챙기는 것도 우리의 몫이었다. 불만도 있었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거겠지'' 하면서 큰 불평 없이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문제였다. 여자로서는 좀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정이 많고 살가운 성격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다. 때문에 남편이 운영하고 있는 작은 사업체도 나날이 번창했다. 사업을 핑계로 남편은 거의 매일 귀가가 늦었다.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결혼생활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동안인데다 나이가 들면서 중후한 멋이 더해져 인생의 황금기를 누리는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집안 내력으로 머리가 빨리 세서 염색을 안 하면 봐줄 수 없을 정도였고, 동갑임에도 나를 연상녀로 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 모든 일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와 너무 힘든 상태였는데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여자문제가 터졌다. 상대는 초등학교 여자후배로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는 이혼녀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도와주다가 몇 번 더 만난 것뿐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당시 집안은 하루하루가 전쟁터였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집안의 냉랭한 분위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별 대안 없이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남편도 많이 늙었다. 머리에는 하얗게 흰서리가 내리고 작년에는 당뇨병 진단까지 받았다. 식이요법을 하느라 아파트 베란다에 이것저것 채소도 심었다. 지금은 "당신만을 사랑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남편, 내가 아프다면 밤새 다리를 주무르고 내 머리맡을 지켜주는 남편, 가끔은 장미꽃다발로 나를 감동시키는 남편······. 요즘 들어 부쩍 여윈 힘없는 남편이 그저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다.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키며 노력하는 남편이기에 차마…
내가 결혼할 당시에는 외적으로 잘난 남자를 ''킹카''로 표현했다. 나 역시 결혼할 당시 남편이 킹카인 줄 알았다. 학벌, 집안, 직장 등 다 번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외적인 조건만을 가지고 결혼했던 것은 아니다. 짧은 연애 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나에 대한 사랑과 매너, 배려 등은 충분히 나를 감동시켰다. 결혼 적령기에 만난 우리는 6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결혼에 골인했다. 그때까지도 나에게 결혼은 행복이고 환상이었다.
달콤한 신혼이 지나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나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를 기다렸으면서도 남편은 전혀 육아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 당시 이웃집에 살던 친구의 남편이 아이들과 밤새 놀아줬다는 얘기를 들으면 불끈불끈 울화가 치밀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나는 육아에 동참하지 않는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다. 육아뿐이겠는가, 살다 보면 서로 성격이 안 맞아 참고 참던 것들이 터지면서 그냥 갈라서자는 생각이 스칠 때도 여러 차례. 정말이지 그 때마다 팔수만 있다면 남편을 수없이 팔았을 것이다.
그래도 요즘 돌이켜 보면 위기가 올 때마다 참고 인내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은 남편에게서 작은 변화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변화의 시작은 미국 유학길에서였다. 그동안 남편은 진짜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왔고, 유학길에 오르기 전 몇 년은 영어공부 하느라 일요일까지 공부에 매달렸다. 좀체 가족과 함께 할 시간적 여유가 없던 남편이 유학을 떠나기 직전 마음의 여유가 생긴 때문인지 아이와의 교류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 남편은 아이랑 전혀 놀아줄 줄 몰라''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이와 공놀이도 하고, 체스도 두고 음악도 함께 듣는 것이다. 그 때의 놀라움이란…. 한국에 돌아온 남편은 큰 아이의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육아 서적을 뒤적이며 아이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나름 부단히 노력중이다. 
얼마 전 퇴근한 남편이 밖으로 잠깐 나와 보라는 메시지가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나가보니 남편은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영국 신사처럼 차문까지 열어주며 드라이브를 청하는 남편, 웬일인가 싶어 따라 나섰더니 30여 분을 달려서 데려간 곳은 백운호수의 어느 유명한 라이브카페였다. 남편과 둘이 연인처럼 앉아 추억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동안의 결혼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날 밤 그의 깜짝 이벤트 하나로 그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낸 한 여인의 가슴 속 응어리도 봄 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렸다. 
요즘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가끔 내 속을 뒤집어 놓는 남편이지만 어쩌겠는가. 누구처럼 팔고 싶지는 않고, 그나마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기에 오늘도 내 하나 뿐인 남편이자 아이들의 유일한 아빠에게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20년 만에 발견한 남편의 진면목
올해로 남편과 20년째 함께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남편에 대해 사랑과 감사의 감정보다 야속함과 애증의 감정이 훨씬 더 많다. 그야말로 ''자식을 위해 참고 산다''고 생각한 적도 허다하다. 이런 나의 남편에 대한 감정이 요즘 미움에서 감사로 바뀌고 있다.
입사동기 커플로 만난 우리는 2년 남짓한 연애기간에 하루가 멀다고 만났고 만날 때마다 거의 술을 마셔댔으니 술친구인 셈이기도 하다. 둘이서 만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술자리에 어울린 적도 많아 그야말로 남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당시 내가 선택한 남편의 외면적인 스펙은 최고 수준의 학벌, 대기업 연구직이라는 안정된 직장, 호감 가는 인상과 목소리 등이었고, 내면적으로는 재치 있고 유머 넘치며, 대인관계가 좋아 많은 좋은 친구들이 있었으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편안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흠잡을 데 없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이제부터 흉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1등 남편감의 조건인 ''집안의 경제력''이 열악했고, 외아들이면서 보수적인 데다가 깐깐한 시어머니,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철이 덜 들었고, 키도 작았다.
그래도 남편을 선택한 것은 그의 장점이 단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장점이 단점으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결혼 후 2년 만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 그나마 볼만했던 스펙을 한꺼번에 날리더니 자신의 좋은 대인관계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해 매일같이 술자리였다. 맞벌이를 하고 있던 나는 일, 육아, 가사의 3중고에 시달리는데 남편은 그런 일 정도는 사소한 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이런 남편에게서 나는 20년 만에 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몸이 불편한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사우나를 다녀오는 것이다. 그것도 나에게는 말도 없이 슬며시. 처음엔 어쩌다 기분 내켜서 했나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기적으로 꾸준히, 아들도 하지 않는 일을 사위인 남편이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내가 이래서 남편을 좋아했었지''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더해져 20년 전의 감정으로 돌아가 본다.


살림의 영재로 부활한 남편
결혼 후 25년간, 가족을 멀리하며 주중에는 하숙생, 주말에는 손님처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접만 받으며 일관되게 살아왔던 남편. 나는 가족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며 평생 황혼이혼을 꿈꾸며 살았다. 
그런데 부활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 집에서도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 벽에 못하나 박지 않고 형광등이 꺼져도 모른 척 했던 남편은 쉰 살이 넘자 가족을 위해 조금씩 살림을 거들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살림에 소질을 보이는 영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음식 만들기에 관심을 보여 수제비 반죽을 시작으로 샐러드에 필요한 각종 채소 썰기 등 주로 손이 많은 작업부터 도전했다. 그러더니 떡볶이 볶음밥 월남쌈 부침개 등 나날이 할 줄 아는 메뉴가 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냉장고 청소는 물론이고 집안정리, 설거지, 빨래 널기와 개기는 평생을 해온 나보다 속도도 빠르며 완성도도 훨씬 높다. 특히 기운과 손재주가 좋은 남편은 다림질 솜씨가 나날이 일취월장해 세탁소에 특급 기술자로 취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주위의 평을 받고 있다. 급기야 남편은 은퇴 후에 빵집이나 작은 식당을 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평생 집안 살림도 전문성이 있다고 유세했던 내가 무색하게 남편의 살림솜씨는 한수 위다. 그렇다고 기죽을 나도 아니다. 나는 앞으로 김장이나 된장 담기에도 남편을 참여시켜 대대적으로 해볼 참이다. 요즘처럼 사먹는 음식이 불안한 시대에 아들네, 딸네 척척 나눠줄 수도 있으니 얼마나 경쟁력 있는 부모인가.
그리고 이왕이면 ''살림전문 실버 커플''로 나설까한다. 내외가 함께 살림을 하면 집안 살림도 반짝반짝하고 사시사철 먹을 것도 풍성해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거느리며 행복한 가정, 즐거운 나의 집을 이루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노후에는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데 그 어떤 취미보다 살림에 취미를 갖고 있으면 실속도 있고 건전하기도 하고 그만이다. 
사람 팔자 아무도 모른다고 노후에 이런 살림의 영재를 남편으로 둔 아내로 살아갈 줄 누가 알았으랴. 젊은 날, 남편의 살림에 대한 잠재력을 몰라보고 혼자 아이 키우고 힘들게 살림하느라 낙담했던 그 시절이 후회스럽다. 한순간 남편을 팔려고 동네방네 소문냈던 것 전면 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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