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매표소냐 남쪽 매표소냐? 힘든 길이냐 쉬운 길이냐?
“올 들어 최고로 강한 황사가 한반도로” 며칠째 뉴스에서 우리 사는 이 지역에도 황사가 심할 것이니 주의하라는 멘트들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토요일까지 바쁜 일정으로 바깥공기를 마시지 못한 리포터에게 일요일에 방콕 하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다.
아이들과 함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저 나가기만 하면 좋아하는 나이들이라 나가서 놀 수 있을만한 장난감들과 혹시 몰라 황사대비용 마스크와 모자도 챙겼다.
전주역에서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전북의 명산 진안 마이산이다. 마이산(馬耳山)은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때 지층이 갈라지면서 두 봉우리가 솟은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마이산은 생김새부터 묘한 미스터리다. 봉우리가 암수로 나뉘어 있는 것도 독특하지만 손톱으로 긁으면 떨어져 나갈듯한 바위도 비나 바람에 씻기어져 나갈 법도한데 여태껏 산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게 신기하다. 그리고 평면에 구멍이 숭숭 뚫린 타포니(Tafoni)라는 것은 마치 마마자국 같다. 타포니란 말은 원래 벌집 모양의 자연동굴을 뜻하는 코르시카의 방언이라고 하는데 그저 리포터가 보기엔 얼굴에 깊게 파인 마마자국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 같다.
산은 생김새가 저모양이라도 영산이고 명산이라 일컫는데 사람얼굴이 저모양이면...
''사람들은 나쁘다. 예쁜것들만 좋아해!''
마이산 가는 길은 북쪽 매표소나 남쪽 매표소를 이용하는 2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북쪽은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가장 잘 볼 수 있으나 대신 약간의 산행을 감수해야 하고 남쪽은 걷는 길이 길지만 거의 평지라 쉽게 탑사와 은수사까지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리포터 같은 초보산행자는 무조건 남쪽 매표소를 이용하는게 최선이다.
마이산 초입에는 꽃비가 되어 내리는 봄이 있다
매표소를 지나며 일행의 짓궂은 장난이 시작됐다. 마이산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 대신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데 그 몇 푼 아껴볼 심사로 우리의 아이들을 앞선 다른 일행들과 함께 들여보내며 “저 앞에 가는 아저씨가 아빠라고 그래.”
아이들에게 거짓말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거라며 가르치는 부모가 오늘 이 명산에서 돈 몇 천원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을 시킨 것이다.
손톱만큼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순간 “아이들은 그냥 데리고 들어가세요”라는 매표소 아저씨의 말씀에 얼굴은 더더욱 달아오르고... 부끄럽다!
애써 애교스럽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나이 꽤나 먹은 벚꽃나무들과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만 해도 벚꽃 아니라 봉우리도 안보이더니 못 본 사이 상춘객의 마음을 흔들었던 연분홍 꽃잎들이 바람을 가르며 하늘에서 비가 되어 내린다.
전국에서 가장 늦게 핀다는 마이산 벚꽃이 지면 이젠 머지않아 찌는 듯 한 더위가 몰려 올텐데. 5월의 문턱에 발을 디딘 마이산은 수줍은 연둣빛을 발하고 있었다.
십여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오리 떼가 둥둥 떠 있는 저수지 탑영제가 펼쳐진다. 아이들을 동반한 어른들이라면 모두가 경계해야 하는 곳이다.
우리는 저수지 옆 작은 개울에 머리를 떨구고 “도마뱀 알이 없을까?”하며 뒤적거리기도 하고 “벌써 뱀이 나왔을지도 몰라” 하며 아이들의 시선을 돌리려 애썼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오리 태워주세요”라며 노래를 부른다. 막상 태워주면 시시하다고 저수지에 내리고 싶어 하는 것들이.
‘젊은것들 데이트 할 때나 좋지 뭐. 연애할 땐 지금의 신랑이 혼자 페달 밟으며 나 힘들다고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런 남편이 이젠 당신은 다리아파 쉬겠다하고 나더러 태워주라고 하니, 이 상황에서 리포터는 타고 싶은 마음 하나도 없네!’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 탑사
아이들에게 오리 배를 태워줄 수 없는 이유를 10가지를 대자 다다른 탑사, 일 년에 서너 번은 와보는 곳이건만 오늘은 또 다른 모습이다.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사자상과 호랑이상도 반갑고 예전에 없던 닭장? 들도 눈에 띈다. 오리를 태워달라며 졸라대던 아이들은 갑자기 닭장속의 닭들과 토끼들에게 관심이 쏠렸고 덕분에 우리는 또 한 번 탑사를 우러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초파일을 앞두고 와본 적이 없었나’ 불도를 닦는 사람은 아니지만 탑사를 장식하고 있는 연등의 빛깔이 봄꽃마냥 화사하다.
군데군데 떼를 지어 있는 이 탑사는 이갑룡 처사가 평생 동안 쌓았다는 80여 무더기의 석탑이다.
‘참 신기해. 이거 뭐 뱀이 똬리를 튼 것도 아니고 그냥 쌓아 올린 돌들인데 왜 안 무너지는 것일까? 접착제를 발랐을까? 아님 아무도 모르게 시멘트를 살짝 발랐을까’
이곳을 찾을 때마다 수십 번을 더 혼자 묻고 답해본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연과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경이로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동안 가슴속에 쌓인 모든 추함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탑사를 돌며 마음을 비웠다.
옆에서 잔잔하게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같이 간 일행이 이해도 못하는 어린 아들에게 마이산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간다.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았다는 뜻으로 세계 유일의 부부 봉이래. 그래서 엄마 마이봉이 있고 아빠 마이봉이 있어. 그중 누가 더 멋있어? 물론 아빠가 더 멋있지? 역시!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도 세고 멋있는 거여!”
아이는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탑에만 정신이 팔려 아빠의 설명에는 관심도 없건만 그 집 아빠는 여기까지 와서도 아빠의 강하고 멋짐을 아들에게 세뇌 시키고 싶은가 보다.
태조 이성계가 개국의 꿈을 키운 은수사
기이한 바위사이로 수십 개나 되는 돌탑 군을 뒤로하며 우리는 점차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산길을 5분정도 걷자 눈앞에 은수사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은수사는 태조 이성계가 개국의 꿈을 키우면서 절집의 샘물을 떠 마셨는데 물이 은처럼 맑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곳에 섬진강과 금강의 발원지라고 적힌 비석이 보였다. 우물에서 시원하게 물 한잔 벌컥거리는데 옆에서 섬진강의 발원지는 여기가 아니라 ‘데미샘’이란 곳으로 공식 발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못 들었으며 더 좋았을걸! 그러면 섬진강 발원지의 물을 진짜 마신 줄 알고 몇 해 동안은 행복해 했을 텐데.’
마이산의 참맛! 흑돼지 숯불구이와 막걸리 한잔
마이산 남부매표소로 되돌아 나오는 길가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특히 마이산에서 맛볼 수 있는 흑돼지를 숯불에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슬슬 밥시간 알람을 준비하는 뱃속에 고기 한 점과 막걸리 한잔은 “크윽” 소리가 절로 나게 한다.
하지만 구제역의 여파가 여기까지? 한 접시 가득히 나오던 숯불구이가 눈에 띄게 줄어 우리가 막걸리를 채 마시기도 전에 동이 났다. 사장님께 약간은 섭섭한 마음을 전하고 파전과 도토리 묵무침을 주문했다.
역시! 그 누가 말했던가? 막걸리엔 파전이고 산속에 가면 묵무침을 먹으라고...
가느다란 파와 각종 해물들이 소복이 얹힌 파전과 상추와 곁들여 무친 고소한 도토리 묵무침은 우리들의 서운함을 개운하게 몰아냈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달리 보여 다른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오늘 찾은 마이산은 봄의 돛대 봉인가 아님 여름의 용각봉인가?
얼마 전 벚꽃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울고 갔을 마이산에 오히려 자연재해인 황사를 동반한 오늘 리포터의 단출한 외출이 더 편안한 이유는 뭘까.
TIP. 주변의 볼거리
홍삼스파
북부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홍삼스파가 있다. 홍삼을 활용한 고급 휴양 시설인 진안홍삼스파는 지난 2009년에 문을 열었다. 홍삼한방과 음양오행 프로그램을 가미한 국내 유일의 스파테라피 존이며 건조, 아쿠아, 건식, 습식, 버블의 오행프로그램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용요금은 성인 39,000원이며 쿠폰 북이나 상품권을 구매하면 좀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문의 : 063-433-0393
계남 정미소
마령면 계서리에는 추억이 쌓이는 정미소가 있다. 이곳은 방아를 찧는 정미소가 아니라 갤러리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산골오지에 갤러리라니 좀 생뚱맞긴 하지만 사진작가 김지연씨가 인수해 사진전시용 박물관으로 꾸며진 곳이다.
용담댐
용담댐은 금강 상류를 막아 건설된 다목적댐으로 전라북도 진안군과 무주군 사이에 위치해 있다. 댐의 규모로는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큰 댐이며 공사시 1개읍 5개면 68개 마을의 광활한 면적이 수몰되었다고 한다.
용담댐은 드라이브 코스로 좋으며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의 라이딩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하다. 단양리 진안역사박물관에서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옛 마을의 역사와 유물, 진안의 향토사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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