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관 앰프로 듣는 클래식, 추억의 ‘돌체’를 되살리다!!
1950년대 이후 ''르네상스''와 함께 국내 음악감상실의 전성기를 꽃피웠던 명동의 ''돌체''. 인사동의 ''르네상스''가 고전음악을 들려주던 장소였다면 명동의 ''돌체''는 ''지고이너바이젠'' ''비창''이나 브라더스 포의 ''그린필드''등 포퓰러한 클래식이나 팝을 들려주던 곳으로 유명했다. 당대의 문인, 화가, 문학청년, 예술지망생들이 꿈을 이야기하고 비상을 꿈꾸던 ‘돌체’. 당시의 향수를 간직한 그 이름 그대로 십 수 년 째 장항동에서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수 대표, 이 행복한 문화공간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돌체’를 운영하는 김종수 대표의 남다른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클래식 마니아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클래식에 빠져
“당시 대학생들이 다 그렇듯 음악감상실을 돌아다니며 팝이나 포크음악을 즐겼다”는 그는 대학시절 DJ로 활동할 만큼 음악 애호가였다. 클래식 또한 어릴 때부터 귀에 익어 소품 정도 즐기는 수준이었다고. 군인이었던 김 대표의 부친은 클래식 마니아였다. 지금 ‘돌체’에 자리 잡고 있는 알텍 스피커는 부친이 미8군에서 어렵게 구한 것이며 수많은 LP판들은 부친이 월급날 마다 하나씩 사들인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것들. “어느 날 음악 감상실에서 아버지가 즐겨 듣던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거예요. 제목도 모르고 늘 흘려듣던 음악이 그날 귀에 쏙 들어오면서 그때서야 그 음악이 베토벤의 ‘황제’라는 걸 알게 됐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클래식에 심취했던 것 같다는 김 대표는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건축디자이너로 독립한 김 대표는 홍대 앞에 있던 작업실을 일산으로 옮기면서 작업실 겸 자신이 쉴 공간을 마련하고 ''돌체''라 이름을 붙였다. 향수 속의 ''돌체''를 되살려 놓은 셈. “작업실을 구하려 여러 군데 봤는데 지금 이 자리가 희한하게 기둥이 없는 거예요. 작업을 하는데 그리 큰 공간이 필요치 않고 집에 있는 오디오와 스피커, LP판을 갖다놓고 음악도 감상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죠.”
‘토요음악회’ 통해 손열음, 우예주, 김선욱 등 유망주들 키워내 보람
40여 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큰 울림을 주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돌체’. 지하에 자리 잡은 돌체에 들어서면 전면에 대형 스피커와 진공관 앰프 등이 자리잡고 있다. 알텍 640e.알텍A5 등 전문 감상실이나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스피커는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2개로 구성된 ''인피니티'' 스피커는 돌체의 단골이었던 성균관대 문과대 학장을 지낸 김진경 교수가 소장했던 것. 2005년 김 학장이 타계한 후 그의 딸이 기증했다고 한다. 또 공간 구석구석엔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에 알맞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김 대표의 정성이 배어 있다. 문을 열기 전 4개월 여 준비 작업을 하면서 방음설계에 특히 신경을 써 MDF로 벽면을 두르고 바닥도 저역의 보강을 위해 나무로 깔고 습기에도 유난히 신경을 썼다. 또 지하의 울림을 빨아들이기 위해 무대 천정을 높여 웅장하고 때로는 섬세한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무엇보다 ‘돌체’가 소중한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십 수 년 째 이어온 ‘토요음악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창시자이자 열렬한 음악애호가인 신동헌 화백이 음악회 진행을 맡아 딱딱한 음악이론보다는 그 음악에 대한 배경, 일화소개 등 재미있는 뒷이야기로 좌중을 이끌어온 ‘돌체 토요음악회’에는 음악 감상실에서 열리는 전문 음악회라는 독특한 컨셉과 분위기가 알려지면서 다양한 분야의 연주자들이 모여들었다. 피아니스트인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와 양고운, 첼리스트 홍성은, 실내악단 콰르텟 21, 소프라노 임미선 유승희 등 내로라하는 국내 정상급 연주자와 단체들이 기꺼이 돌체의 관객을 만났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우예주, 권혁주 손열음 등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신예들도 돌체 토요음악회를 거쳐 간 음악인들.
98년 문을 연 이후 음악 감상 뿐 아니라 매주 ‘토요음악회’를 진행해온 것이 벌써 14년 째, 거의 매주 거르지 않고 진행해 온 토요음악회는 지난 3월 19일 785회째를 맞았다. “여러 뜻있는 음악애호가들의 도움과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미루어 짐작해보아도 수지타산 맞지 않는 운영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을 터. 그렇기에 다른 신도시에 비해 문화계 인사가 유난히 많은 지역임에도 문화 인프라는 아직 부족한 일산에서 40여 평에 불과한 이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문화적 의미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마니아들만의 공간이 아닌,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를...
“연주자들은 청중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큰 무대보다 청중들과 바로 대면한 작은 이 무대에 서는 것이 더 떨리고 긴장된다고 해요. 또 음악을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연주자의 호흡을 가까이서 느끼고 연주하는 손놀림 하나 하나 세심하게 느낄 수 있어 감흥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하고요.” 돌체의 무대는 이렇게 예전 유럽의 살롱음악을 즐기듯 청중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어 연주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곳이다. 이렇게 음악마니아들과 연주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이지만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수 대표는 보람만큼 고민도 많다고.
아무래도 마니아층만 찾아오는 클래식 음악감상실이다보니 돌체를 운영하면서 경제적 이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건축디자인 일을 병행하면서 그런 어려움을 감수해왔지만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 그래서 요즘 김 대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구상 중이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니아들만 듣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이라는 김 대표는 “3~4분 만에 들을 수 있는 대중음악에 비해 몇 악장을 길게는 몇 십분 씩 들어야 하는 클래식을 갑자기 좋아할 수는 없지만 가벼운 소품부터 시작하면 차츰 클래식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처음엔 혼자 음악을 들을 공간이 필요해 작업실 겸 음악감상실로 시작해 오디오부터 갖다 놓았고, 막상 설치하고 나니 음반만 듣기 아까워 음악회를 시작했는데 벌써 785회라니…”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는 듯 낮은 톤의 목소리가 더 잦아드는 김 대표. 돌체는 7080세대의 향수 같은 공간이자 일산의 문화 자존심과도 같은 공간이다. 그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종수 대표. “돌체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해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모습으로든 음악을 사랑하고 공감대를 나누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자부심은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 김종수 대표의 다짐에 왠지 그에게 큰 짐을 떠넘긴 듯 가슴이 묵직하다. 부디 ‘돌체’가 그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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