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상징, 성산일출봉 입구에 도착하니 거대한 화산석 하나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일출봉의 첫인상은 역시 웅장했다. 높이 182m라는 생각보단 낮은 고도를 알기 전까진 말이다. 하지만 비탈길을 쫄쫄 타고 올라가 어느 순간부턴 계단으로 층층이 밟고 올라가는데 평소 운동량이 부족하고 저질체력이란 악조건 때문에 얼마 못가서 숨이 차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검은 곰보빵 같은 현무암이 이곳이 제주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평소 못 보던 암석의 재질을 보니 새롭기도 했다. 멋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내 그 생각은 순간일 뿐, 벌써 등줄기엔 땀이 베이고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앞서 오르던 손위 형님이 자꾸 돌아본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자 손을 꼭 잡고 끌어준다. 누가 봐도 다정한 자매처럼 우린 그렇게 정겨운 모습을 보여주며 정상을 향해 걸음을 뗐다.
슬슬 고도가 높아지고 풍경을 보면서 올라가자니 자주 뒤돌아보게 되지만 맑은 날씨에 적당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일출봉 아래 펼쳐진 파란 바다는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산 정상에서 볼 법한 해안선 풍경들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옆엔 우도가 자리하고 있는데 방파제와 우도가 서로 용을 쓰면 맞닿기라도 할 것 같다.
저질체력에 그래도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역시 카메라인 듯하다. 아무리 다리가 당기고 저려도 장관의 풍경만 만나면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니 다른 데 신경 쓸 새가 없다.
세계7대자연경관 후보에서 당첨까지
카메라의 고마움을 안고 드디어 일출봉 정상에 올랐다. 막상 오르고 보니 영상을 통해 본 일출봉 정상은 넓고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음을 바로 깨닫는다. 분화구다보니 제법 움푹 들어가 있는데 그걸 미처 못 깨달았다니 이때 무식이 탄로날까봐 놀라 벌린 입도 살짝 다물고 만다.
정상 한쪽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관광객들에게 팜플렛을 나눠주면서 어떤 가이드가 소리쳤다. “성산일출봉이 세계7대자연경관 후보로 올랐으니 꼭 투표해 달라”고 하면서. 이때 비로소 성산일출봉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말았다. 11월 11일 발표를 한다고 하니 마음속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이제 세계의 경관으로 알려질 그날을 기대해보며 내려올 때는 아직은 차갑게 느껴지는 봄바람의 장난질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보여줬다.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의 따뜻한 배웅도 받으면서...
유채꽃밭에서 찍을까 말까
제주도 여행을 하다보면 봄에는 유채꽃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 제주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인 유채꽃...특히 제주도 일출봉 근처에는 군데군데 유채꽃 촬영소가 있어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유채꽃밭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하트모양의 조형물에서 일출봉을 배경으로 제주도를 다녀온 증거로 쓸 수 있을 만큼 어느 누구나 유채꽃밭을 찾는다. 이런 배경 때문일까? 유채꽃밭도 이제 마음대로 들어가서 사진을 못 찍게 하니 말이다.
노오란 유채꽃이 지나가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아 멈추는데 이게 뭔 소린가! 유채꽃밭에서 기념 촬영하는데 1,000원을 내야 하다니! 개인 소유의 땅이어서 그렇다나. 저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특별한 관리가 있었겠냐마는 어찌 찜찜한 생각이 든다. 일행 모두 몇 컷 찍으려고 몇 천원 내기가 아까웠는지 손아래 동서는 “형님, 돈 안 내고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어요.” 그래서 달려간 곳이 섭지코지다.
유채꽃밭에서 여심 홀리다
동서의 말대로 일출봉 부근에서의 유채꽃 촬영은 뒤로 미루고 달려온 곳이 섭지코지였다. 섭지코지는 성산읍 고성리에 있는 해안가로 신양해수욕장에서 2km에 걸쳐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섭지란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란 뜻이며 코지는 곶을 뜻하는 제주방언이라고 한단다. 길게 뻗어 나와 있는 곶부리 형태를 가진 해안가로 우리 지역 진하 간절곶을 떠올리면 될 터.
사실 일출봉에서 이곳으로 건너오기 전 이날 묵을 콘도에서 짐을 풀고 섭지코지로 향했다. 콘도가 바로 옆에 있어 마치 산책하듯 우리 일행은 늦은 오후 햇살을 맞으며 약간 경사가 진 구릉지를 향해 타박타박 걸어 올라갔다. 바람이라도 좀 불라치면 모래가 앞을 가리며 방해도 했지만 저만큼에서 손짓하는 노오란 물체를 발견하는 순간 모래가 좀 방해하면 어떠리오.
목적지에 도착하니 동서의 말대로 유채꽃밭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무리를 짓거나 아니면 서로 자신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결혼 전 어느 유채꽃밭에 쏙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더니 꽃에 가려 인물이 죽어 보인다는 얘기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그 나이엔 꽃을 배경으로 찍으면 사진 속 주인공인 나는 왜 그리도 예뻐 보였던지...그 시대에는 그게 유행이었는데 이 나이에도 달라진 건 없나보다.
진하다고 표현하기보다 차라리 독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이 꽃향기를 가까이에서 흠취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인가 싶어 자꾸만 더 깊숙이 노란 물결 속으로 들어갔더니 재미없는 남편은 “깊숙이 들어가면 꽃가루가 옷에 묻는다, 조심해!”라고 소리 지른다. ‘에궁, 저런 사람과 25년을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구나!!’
찍으면 영화 속 배경 섭지코지
섭지코지는 이미 TV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많이 소개된 적이 있다. 드라마로는 ‘여명의 눈동자’, ‘올인’이 있고, 영화는 ‘단적비연수’, ‘이재수의 난’, ‘천일야화’ 등이 있었다고 교회 쪽으로 가니 커다란 말해주었다. 올인에서 이병헌이 송혜교를 찾아오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나도 저런 주인공이 한번 돼봤으면 했는데, 그 당시 장면을 떠올리며 그 순간 내 남편과 함께 걷고 있음에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길 따라 해안가로 다가갔다. 위에서 내려다본 투명한 물빛과는 또 다른 환상을 안겨주는 물색. 워낙 투명해서 얼굴이 훤히 비쳤다. 그 물 속에 시큼한 물체가 어른거리니 톳이었다. 제주 특산물 톳이 바위에 얼마나 촘촘히 박혀있는지 어떤 바다는 멀리서도 시커먼 색을 띤다.
동작 빠른 날쌘돌이 동서가 “형님, 정말 많아요. 이것 보세요!”하며 소리치는데 이미 손안에 톳과 미역이 수북했다. 동서가 건네준 걸 입에 넣어보니 그야말로 소태다. 바다 짠내와 쓴맛이 동시에 전해왔다. 그래도 이 순간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자신의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털어내 놓은 모습이 그냥 행복했다.
거칠기만 한 해안선이 바닷물이 한 번씩 세계 때려줄 때마다 조금씩 흔적을 없애는 현무암의 조각들처럼 이번 제주여행에서 얻은 게 하나 있다면 자연은 내놓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 맛집 모음
제주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집
제주도에는 향토음식집이 많다. 제주여행에서 맛여행도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제주도에서 나는 특산물로 조리를 해서 더욱 맛난 음식을 하는 집 몇 군데를 소개한다.
전복죽 전문-오조해녀의 집
해녀들이 직접 운영해서 더더욱 유명해진 집이다. 성산일출봉에서 제주방향으로 가다가 방조제를 건너서면 아주 큰 하얀 집이 멀리서도 보인다. 85명의 해녀가 아홉조로 나눠서 돌아가면서 해산물을 공급하기 때문에 그 싱싱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오조해녀의 집 메뉴는 해삼, 전복, 소라 등의 해산물 이름만 딱딱 정해져 있는 게 특징인데, 그 요리법은 싱싱한 재료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
특히 이집은 전복죽이 유명한데 평균 65세 이상의 경험 많은 어르신들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해녀들이 직접 잡은 싱싱하고 큰 전복을 넣고 꾸준히 저어서 자연 그대로의 맛을 내는데 내장을 넣고 끓이기 때문에 약간 연두빛 또는 노르스름한 빛을 낸다고 한다.
문의 :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일출봉 근처
문의 : 064-784-7789
뚝배기, 고등어 갈치조림-덤장
만약에 제주여행을 렌트카로 한다면 차 가져다주기 전에, 아니면 오는 길이나 가는 길에 제주에 도착하면 꼭 들러볼 만한 집이 공항근처에 위치한 ‘덤장’이다. 덤장이란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막대를 박아 그물을 울타리처럼 쳐두고 물고기를 원통 안으로 몰아넣어 잡는 그물을 말하는데, 이런 과정으로 잡은 물고기는 더운 싱싱하다고 한다. 해서인지 이집에서 취급하는 모든 생선과 해산물은 그야말로 펄쩍 뛰는 활어들이다.
덤장에서는 갈치구이, 옥돔구이, 고등어조림 등 단품메뉴도 판매하고 한상차림으로도 다양하게 메뉴가 있다. 배부른상, 소박한상, 덤장상 등이 있다. 한상차림으로 먹게 되면 단품메뉴가 거의 다 나와서 제주 향토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고등어조림은 싱싱한 고등어 맛이 베인 뭉글해진 무맛이 일품이고, 해물뚝배기도 시원한 국물에 전복도 많이 넣어주고 가재까지 들어가 아주 시원 담백한 맛을 낸다.
위치 : 제주공항 근처
문의 : 064-713-0550
흑돼지&한우 전문점 ‘늘봄흑돼지’
제주도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할 메뉴 중 하나가 흑돼지다. 흑돼지 전문점으로 유명한 ‘늘봄흑돼지’는 건물이 워낙 커서 식당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다. 건물 안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도 있다. 백화점 쇼핑하는 것처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넓은 홀이 나오고 룸도 많다. 전체 800석을 수용한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이집은 흑돼지고기 음식점으로 FCG품질인증업체로 지정도 돼 맛이나 서비스에도 완벽하다.
흑돼지고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살 속에 점정털이 박혀있고 색깔도 붉으스름하니 아주 먹음직스럽다. 이놈을 참숯불에 두툼한 흑돼지고기 삼겹살을 구워보면 입안에 넣기 무섭게 야들야들한 게 씹을 사이도 없이 잘도 넘어간다. 유채, 배추 등 야채 겉절이가 입맛을 더욱 돋우고 고기집인데도 찬류가 깔끔하고 게장도 깔끔하다.
위치 : 노형동 2343-3번지
문의 : 064-744-9001
이경희 리포터 lkh37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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