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도서관 등지에서 아이들에게 잊혀져가는 우리놀이의 재미를 알려주는 강규용 씨. 특별하고 화려한 재료 없이도 주변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꽃 풀잎 보릿대 수수깡 도토리 유리 단추 등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치면 신기하고 재밌는 놀잇감으로 변신한다.
지난 16일, 강동그린웨이 방죽근린공원에 모인 아이들은 따뜻한 햇살을 지붕삼아 도토리로 뚝딱뚝딱 팽이를 만들고 제기, 바람개비를 만들어 직접 놀아보며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놀이를 이끌고 있는 이는 바로 우리놀이연구가이자 지도자로 활발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강규용(71?고덕동) 씨였다.
놀이 목록 만들어 아이들을 매료시키다
강씨는 10여 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전통놀이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옛날 놀잇감을 재현해보며 전통놀이 매뉴얼도 만들었고, 점차 전문성을 갖추고 이목을 끌면서 노인일자리 사업, 유/초등 교원 대상 직무연수 강의 등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지난 5년간은 전국 각지를 돌며 그를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지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사회 일을 접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소일거리 삼아 복지관에 다녔어요. 거기서 전통예절지도 강의, 숲 해설가 과정 등을 배웠는데 어느 날 ‘전통놀이에 대한 세미나교육’을 한다기에 참석했던 것이 ‘운 좋은 놈 강규용’이 있게 한 계기가 됐지요.”
잊혀져가는 우리 놀이를 아이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과 함께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기나긴 칩거생활에 들어간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매번 놀이판을 이끄는 당사자였기에 애/경사가 아니면 당분간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선전포고까지 했다. 그로부터 5년간 밤낮없이 전통놀이에 대한 책도 읽고 연구를 거듭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우리 놀이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야하고 재료를 표준화해야 하기에 모든 생활이 여기에 집중돼 있었다. 그는 “당시 직장 생활하던 아들이 용돈이라도 건네주면 곧바로 청계천, 을지로로 나가서 홀라당 다 털어 넣곤 했다”면서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노년에 스타가 된 놀이 할아버지
마침내 준비기간이 끝났다. 우리 놀이를 ‘만들기’ ‘식물놀이’ ‘전래놀이’ 등 3가지로 분류해 100여 가지가 넘는 놀이목록 소책자가 완성됐다. 이제 놀이를 보여주고 놀게 해 줄 차례. 당장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기위해 직접 만든 풀잎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바람개비와 도토리 팽이를 들고 잎으로는 보리피리를 불며 어린이대공원, 대학로, 놀이터, 초등학교 등지를 놀러 다녔다.
“공원 잔디밭에 앉아서 보리피리를 불고 옆에 있는 풀이며 나무 조각을 주워 장난감을 만들어 주다보니 지나가던 아이들이 재밌어하는 거예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지닌 아빠, 엄마들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요.”
여기저기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유치원, 복지관, 초등학교 등에서 강좌 요청이 들어왔다. 2002년부터 3년간 그가 시연한 ‘전통놀이’가 대한민국평생학습축제에서 서울 대표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이후로 노인 일자리사업, 전통문화지도자반을 맡아 유/초등학생을 넘어 성인대상 강좌를 운영하는 등 전통놀이전문가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강 씨를 거친 후 아이들에게 전통놀이를 전파하러 다니는 ‘놀이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지역 곳곳에 100명이 넘는다.
동년배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상으로 강좌를 진행할 때면 더욱 강하게 어필하게 된다. “우리 세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리피리 불고 딱지 놀이하면서 들판을 뛰어다닌 추억이 있죠.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왕년에 그런 것 안 해 본 사람 있냐며 얼마나 잘 하는지 한 번 보자는 심보로 쳐다보기도 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우리 시절에는 흔한 놀이였지만 이것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적용하기위해 수년을 투자해 자료화했고 외부로 처음 전파한 사람이 바로 나’라며 겸손하게 수업에 임하라고 소리치게 됩니다.”
좋은 인성 심어주는 우리 놀이
강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참 다양한 일을 했다. 교사로 학교 현장에도 있었고 한전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다 배짱 좋게 사표를 쓰고 친구들과 함께 건설 회사를 차려 왕성하게 일했다. 해외공사도 많이 하면서 소위 잘나갔다. 그러다 중동사태가 나면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한순간에 빈손이 됐다. 누구보다 자존심 강했던 그였기에 사업실패가 인생실패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산으로 들어가 칩거하면서 살아온 세월에 대한 반성도 했다. 그 후로 5년간 친구 손에 끌려 다시 일을 하긴 했지만 그때부터 그는 자기개발에 관한 책을 읽었고 노년의 삶을 고민했었다. 실패를 경험삼아 반성과 발전의 시간으로 활용했던 셈이다.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빨리 노년, 제2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다보니 70이 넘은 지금도 바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일이지요.”
그는 여전히 우리 문화나 놀이에 대한 신문기사를 발견하면 스크랩하는 등 재밌는 놀이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늘 노력한다. 주머니 속에는 항상 도토리팽이를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한적한 전철 안에서 아이들에게 신기한 팽이를 돌려주고 나눠준다. 강 씨는 “놀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빼앗긴 채 노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럽고 안타깝다”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는 우리 놀이를 아이들에게 많이 알려 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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