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그 대상에 대하여 잘 알아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전적으로 대상 파악에만 주목하고, 자기 변혁에는 소홀하기 쉽다. 알코올의존 문제를 앓는 사람들 중에서 이러한 대응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수가 적지 않다.
L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지방의 명문 중·고등학교를 최우등 성적으로 졸업한 머리 좋은 사람이다. 일이든 취미든 그 분야에 대해 완전하게 통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지난날 직장에서는 자신의 분야가 아닌데도 퍽 전문적 기술을 혼자 힘으로 공부해 인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행복하지 못하고 굴절이 많았다.
치료를 받고서야 그는 자신이 술과 알코올중독에 대하여 너무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몰랐으니까 알코올에 당하고 거꾸러진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래서 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 불과 몇 달 사이에 몇 년씩 단주해 온 사람들보다 아는 것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협조적이라 하기 어려운 가정과 직장의 형편에서도 단주를 잘 이어갔다. 그렇지만 그의 삶이 행복하거나 성공적으로 보이지도 않는 것 또한 바로 그의 사고방식의 한계 때문이다.
처음에는 알코올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컴퓨터와 인터넷에 미쳤다. 웬만큼 마스터했다고 느끼자, 언제부터인가 자기개발이 중요하다고는 또다시 여기에 공부의 초점이 집중되었다. 그리하여 요 몇 년 간 무언가 공부하기에 몰두하였다.
문제는 이렇게 공부한 것이 언제나 대상으로 남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미흡한 채 다음다음으로 넘어가기를 계속할 뿐이다. 예컨대 공부 잘하는 사람과 학자는 전혀 다르다. 골프를 아주 잘 치는 일반인과 프로 골퍼 사이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 암 치료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과 암을 극복한 사람이 다르듯이, 알코올중독의 치료에 대하여 많이 아는 사람과 회복한 단주자는 무언가 달라도 다르다.
시건방지게 시시덕거리면서 라운드를 도는 프로 골퍼는 없다. 알코올중독 전문가들이 알코올의 위험에 대하여 큰소리를 낼지라도, 진정한 단주자는 우렁찬 목소리로 단주를 외치지 않는다.
꽤 오랜 단주에도 불구하고 늘 무언가에 빠지는 것은 매사를 오로지 지식으로 대처하려는 데에서 기인한다. 아는 것 이상을 깨쳐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리 일등을 해서 찬탄을 받을지라도 바로 단주생활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alj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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