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한모(46·잠실동)씨는 큰 아이 민재(중학교 1년) 초등학교 동기 때문에 속병이 났다. 항상 큰 아이보다 영어 학원 레벨 1~2단계 아래에서 공부하던 그 친구가 정작 내 아이는 들어가지 못한 레벨에 ‘떡~하니’ 붙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민재의 뛰어난 영어실력 덕분에 뭇 엄마들의 학원멘토를 자처하고 있었던 한씨에게는 자존심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아이의 학원레벨은 엄마들의 서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사실. 하지만 “학원레벨은 아이들의 성적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수준별 학습을 위한 구분선으로, 저마다의 커리큘럼으로 진행되는 학원에서 그 레벨이 항상 같은 순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아이의 레벨에 울고 웃는 엄마들, 엄마의 기분에 우월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들. 우리 이웃들의 레벨테스트 경험담을 소개한다.
내 아이 실력보다 낮게 평가되는 레벨
‘왜 학원 레벨은 내 아이의 실력보다 낮게 나오는 것처럼 느껴질까’ 많은 엄마들이 동감하는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학원의 커리큘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림피아드학원 박성정 교수실장은 “학교에서는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시험이 이뤄지지만 학원의 레벨 테스트는 배운 내용과 실력진단을 위한 심화 및 선행학습내용이 포함되기 때문에 학원에서 꾸준히 커리큘럼에 맞게 공부한 학생들이 상위레벨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딸아이의 영어 학원을 선택하기 위해 여러 학원 레벨 테스트를 본 최혜윤(방이동·39)씨는 “비슷하게 레벨이 나오지만 특히 낮은 반에 배정되는 학원도 있다”며 “낮게 나온 곳은 내 아이의 진정한 실력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의 성적이 아이의 진짜 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웃었다.
학원마다 커리큘럼이 달라 레벨 테스트 또한 영역별로 그 특징이 있는 데에 기인한 결과다.
우리 아이에 맞는 레벨이 없어요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편모(명일동·41)주부는 “지난 겨울방학 때야 비로소 내 아이의 진정한 수학실력을 알았다”고 털어놓는다. 레벨 테스트를 보러 간 이름난 학원마다 ‘중3은 심화는 어디까지 됐죠?’ ‘10가, 10나 어디까지 선행이 됐나요?’라는 질문부터 떨어졌다. ‘한 학기 미리 훑어본 정도’라는 말에 ‘일단 중3 선행 정도의 레벨테스트’를 보자는 말이 나왔다고. 편씨는 “정식으로 공부하지도 않은 내용을 그것도 심화문제까지 포함된 시험을 봤는데 결과는 처참했다”며 “결국 집 근처 학원에서 3~4명 소수 수업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은 둔 김모(가락동·38)주부도 마찬가지. 이제까지 집에서 수학을 직접 가르친 터라 아이 실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있었지만, 학원 레벨 테스트 자체가 선행 단계에 따라 실시되어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김씨는 “학원에서는 아이의 수준보다 높은 레벨에서 그냥 따라가기를 권했지만, 가장 낮은 반이라도 내 아이의 실력에 맞는 레벨이 있는 다른 학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리부터 같은 학원을 꾸준히 다니며 고학년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높은 레벨에 합류한 경우도 있다. 올해 과학기술원 대학에 입학한 이모군. 자신이 중학교 때 학원 최고반인 과고반에 들어가 공부하게 된 계기에 대해 “초등학교 4학년, 학원의 가장 낮은 학년 때부터 같은 학원을 꾸준히 다녔더니 어느 샌가 최상위반이 되어 있더라”고 말했다.
같은 학원 오래? vs 여러 학원 경험?
백모(상일동·43) 주부의 아들은 6개월에 걸쳐 한 분기로 진행되는 영어학원에서 레벨업을 못했다. 같은 레벨을 여섯 달이나 다시 듣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깝다고 생각한 백씨는 다른 학원을 수소문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1년 후 똑같은 이유로 다른 학원을 전전, 2년 반반에 원래 학원으로 되돌아온 아이의 레벨은 아이가 학원을 그만 두기 전 레벨에서 겨우 한 단계 위. 학원 관계자에게 확인과 불만을 토로한 박씨에게 돌아온 말은 “다른 학원을 전전하다 다시 본 학원으로 돌아온 경우 레벨이 크게 올라가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3년 가까이 허송세월을 한 것 같다”며 “한 학원에서 꾸준히 공부하며 최상위 레벨의 맛을 보는 게 더 나을 뻔했다”고 말했다.
박성정 교수실장은 “아이들이 학원의 환경이나 커리큘럼, 숙제 등에 적응하는 기간이 3개월 정도 걸리며, 성적 향상 또한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며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적응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는 것보다는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선택, 체계적으로 꾸준히 학습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또 “현재의 레벨에 너무 연연해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성향과 학습방향이 맞는 학원을 잘 선택하는 것이 아이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