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한창이던 3월의 끝자락, 김명용 이사장(56)을 만나기 위해 서초구 양재동 한국IT전문학교를 찾았다. 7층에 위치한 그의 집무실에 들어서니 따스한 봄 햇살이 대형 유리창을 통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앞에 보이는 것이 양재천 산책로이고, 저 뒤쪽은 우면산 자연생태공원입니다. 4월이면 꽃이 필거고, 여름이 되면 푸른 숲이 우거지겠지요. 아침마다 이곳을 바라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답니다." 주변 풍광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는 그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보였다.
차별화된 교육서비스 추진
수명이 길어지고 사회가 전문화되면서 학교에서 배운 이론만으로 평생의 직장을 영위한다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최신정보를 습득해야만 사회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최근 이론과 실전경험을 모두 제공하는 기능학교나 전문학교가 크게 각광받고 있다.
''다산인재개발원''이라는 명칭은 다소 낯설지만 부속기관인 한국IT전문학교나 서울문예전문학교, 다산인재개발센터의 이름은 한번쯤은 들어봄직하다. 초창기에 비해 학교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IT전문학교는 올해로 설립 13년째를 맞았다. 지난 1998년, 실업자 재취업기관으로 출범한 이 학교는 김 이사장이 취임한 이래 2002년부터 디자인계열, 정보화계열을 축으로 하는 IT관련 전문학교로 탈바꿈했다. 김 이사장은 "작년에는 법인명을 다산인재개발원으로 변경, 한국IT전문학교와 서울문예전문학교 두 기관으로 구분해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교육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우리 집안의 힐러리
충북 괴산이 고향인 김 이사장은 청주고를 거쳐 고려대 사회학과와 동 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원래 숫기가 없는 성격인데다 대학시절에는 항상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녔던 모범생이어서 변변한 연애 한 번 못 해봤다며 수줍게 웃는다. 그런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이재에 밝지 못해 그 흔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 열풍이 불 때에도 이를 외면하고 살았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서 홍보·마케팅·광고 업무를 담당했다. 1998년부터는 광고대행사인 KECC의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최고경영자 과정 4개를 수료하는 등 열정적 삶을 살았다. 잘 나가던 광고회사 대표로 활약하던 그가 교육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이끌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2001년, 지인들과 저녁모임을 끝내고 나오는 데 대학선배 한분이 그를 불러 세웠다. 한국IT전문학교의 전임 이사장이었던 그분은 "적자가 나고 있는 학교가 있는데 맡아서 해보라"고 권유했다. 막연히 꿈꾸어왔던 학교를 운영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설렘도 있었지만 경제적 여유도 없고 경험도 없어 망설였다. 신입생 부족으로 학교 문을 닫아야할 대학이 부지기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정부에서도 일반 대학을 비롯해 전문대, 산업대 등을 통폐합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던 때였다. 하지만 그의 심중을 알아차리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아내덕분에 용기를 내 학교를 인수할 수 있었다. 우선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아내의 명의로 돼있는 집과 아내의 퇴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연대 보증인으로 교육공무원인 아내를 내세웠다.
맞춤형 인재 양성에 큰 보람 느껴
형수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1985년에 결혼했다. 신혼 초에는 중·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아내와 몇 년간 주말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끝까지 믿고 따라준 집사람은 우리 집안의 힐러리와 같은 존재"라며 또 언제든지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는 대학원에 다니는 딸과 군복무중인 아들이 있어 많은 위로가 된다고 말하는 김 이사장.
그는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 뒤쪽에 있는 산에 오른다. 가볍게 아침운동을 하고 7시 반이면 집무실에 도착해 좋아하는 책도 읽고 명상도 한다. 특히, 음악과 시를 좋아해 그의 책장엔 여러 권의 시집이 꽂혀있다. 그는 "누군가 제게 잠자는 시간과 기상시간을 묻는다면 저는 ''농경사회에서 자라서 해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잔다''고 대답합니다. ''아침형 인간''이 인생을 두 배로 산다고 하니, 그만큼 부지런하게 살아야겠다는 뜻이지요."
위기의 순간에도 교육의 참된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김 이사장은 "기존의 교육시스템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소신을 펼치고 싶었다"며 졸업은 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 자신의 생활을 꾸려 갈 수 없거나, 또 취업은 했지만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결코 그것은 잘 된 교육이라 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또한 단순히 학교를 졸업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졸업 후 학생들이 행복한 삶을 펼칠 수 있도록 능력과 경쟁력을 갖춘 맞춤형 인재로 키우는 것이 궁극적인 교육목표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진 이운영 작가 (스튜디오 ZIP)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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