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산은 전주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야트막하게 누워있는 야산이다. 사실 그 높이가 너무 낮아 산이라 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리포터같이 산을 잘 타지 못하는 사람에겐 제격이다. 이곳은 아침, 낮, 저녁 할 것 없이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운동을 위한 등산코스로도 손색이 없으며 중간 중간 다양한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그 인기를 더하고 있다.
건지산 산책 코스는 수십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내가 올라간 곳은 호성동 동물원 담길을 따라 승마장 뒷길로 올라 도천봉 정상을 향했다. 도천봉에서 조경단 주차장으로 내려와 최명희 혼불 문학공원을 거쳐 건지산 정상에 오른 뒤 소리문화의 전당 뒷길을 돌아 다시 대지마을 거쳐 호성동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대단히 오래 걸은 듯이 말하지만 사실 어느 길로 올라가던 건지산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남짓 걸리는 거리라 남녀노소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건지산이 전북대학교의 학술림이란 느낌을 확연히 받을 수 있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서 있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소나무 등은 도시인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그리고 산책 중에 계절마다 이름 모를 들꽃들로 눈요기도 할 수 있으며 건지산 여기저기 한 모퉁이씩을 차지한 과수원의 배꽃과 복숭아꽃은 봄이면 <고향의 봄> 노래에 나오는 과수원 길을 떠올리게 한다. 또 가을이 오면 정읍의 내장산 부럽지 않을 정도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아기 단풍들과 어른 단풍군락도 건지산의 큰 자랑이다.
아침 일찍 건지산에 오르는 시민 몇 명을 만나보았다.
“몇 년 전 허리가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선생님께서 좀 걸어보라고 해 산행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한 3개월 정도 걷고 나니 허리 아픈게 말끔히 사라지더라구요.”(자영업 41세)
“평소에 저질체력(?)이라 돈 안 들이고 제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산을 찾았어요. 건지산에 오르면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있어 운동부족으로 둔해진 제 몸에 기름을 팍팍 칠 할 수 있어 좋아요.”(주부 36세)
건지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들 입을 모아 건지산 자랑과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토해내기 바빴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건지산의 명소, 열린 숲길과 오송제를 찾아보았다.
건지산에는 몇 해 전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열린 숲길''이 조성되어 장애인들도 숲길을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 길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별로 없었다. 늘 정상을 행해 오르기만 했지 낮은 곳을 거닐어 보진 않았기 때문이다.
폭이 2미터 정도 되는 나무 데크(턱이 없는 보도 시설물)를 거닐어 보았다. 그 길은 여름의 뜨거운 햇살도 피해갈 수 있을만한 넉넉한 그늘 길로 장애인들이 안내인과 함께 산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핸드레일과 유도블록, 점자안내판 등의 편의시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또 숲길 내에는 평상형으로 생긴 앉음벽과 야외탁자 등을 갖춘 쉼터가 조성되어 있으며 휠체어가 피해갈수 있도록 배려한 한쪽에 불룩 튀어나온 배려공간도 있었다
“한 오년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개 되었는데 1년 중 비오는 날만 빼고 여기를 매일 찾아요. 그리고 여름엔 암환자들이 이곳에 점심을 싸 와서 하루 종일 쉬었다 가기도 하는데 건지산에 이런 곳이 있어 정말 좋아요”라며 앞서가던 몸이 불편한 한 시민이 벤취에 앉으며 말씀하셨다.
그동안 건지산에 여러 번 오르면서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관심을 둔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내가 가는 길만 길이지 남이 가는 길에는 눈길 한번도 두지 않았었다. 이것이 도시인의 삶인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도 피해받기 싫어 옷깃이 스치는 것마저도 피해가고 싶은 마음. 산을 내려오며 내 마음을 달래본다.
건지산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건지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생태연못 오송제이다. 2년여 전부터 사업이 시작되어 이젠 제법 생태호수공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곳에는 조류 관찰데크가 있으며 웰빙 탐방로가 저수지를 빙 둘러싸고 있다. 저수지 주변 습지에는 희귀멸종위기식물인 ''낙지다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 다양한 수생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유난히 봄이 더디어 아직 봄기운을 만끽하긴 어렵지만 건지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건지산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