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6년째 무료점심 대접하는 김옥연 할머니

“배고픈 이에게 밥 한 끼 줄 수 있어 기뻐”

지역내일 2011-03-06 (수정 2011-03-06 오전 11:34:45)

  번잡한 천호역을 지나 천호공원에 다다르면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김옥연 할머니(88세)가 꾸리는 무료급식소 ‘식사하세요’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의 거처로 활용되는 천호공원 인근에 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식사하세요’라는 소박한 간판이 눈길을 잡는 이곳은 6년째 한 자리를 지킨 무료급식소다.
  이곳을 발견한 것은 사실 수년 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료급식소처럼 이곳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겠거니 짐작하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이곳을 개인이 운영한다는 얘기를 듣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더욱이 이곳을 진두지휘하는 이가 구순을 코앞에 둔 할머니였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김옥연 할머니와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지게 됐다. 



아들이 시작한 일에 힘 보태다
  이북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천호동에서 40년간 양장점을 운영했다. 49살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었고, 이승으로 가버린 남편 대신 혼자 힘으로 아들을 뒷바라지 했다. 갖은 고생하며 기른 아들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남 돕는 걸 좋아했다. 무료급식소와 할머니의 인연은 바로 이 아들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것도 우리 아들이 벌인 일을 내가 맡게 된 거야. 가게를 얻어서 무료급식소를 차린다는 것에 처음에는 반대 많이 했었어. 우리가 풍족하게 사는 형편이 아니라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 그렇게 크게 투자해서 남을 돕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
  당시, 김 할머니의 아들은 33살. 천호동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평소 눈여겨보던 천호공원 인근에 점포를 임대했다. 터전을 찾고 보니 다음 과제는 당장 식사 준비를 하고 뒷마무리를 할 사람이었다. 당장 봉사자를 구할 수 없어서 일하는 사람까지 채용해야했다. 김 할머니는 아들이 벌인 일에 관심 없는 척하면서 한 달쯤 지켜봤다. 그러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두 팔을 걷어 붙였다.
  “주방에 일하는 사람 2~3명을 월급 줘서 꾸린다고 생각해봐. 이러다 1년도 못가 문 닫겠다 싶었지. 이왕 내 아들이 좋아서 시작한 일에 기분 좋게 돕자고 마음 고쳐먹은 거야.”
  그 시점부터 김 할머니는 식단을 짜고, 급식소에서 사용될 쌀, 부식거리 주문 등을 책임졌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문을 여는 이곳에서 하루에 준비하는 양은 150인분. 여기서 식사하는 이들은 주변에서 어렵게 사는 노인,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노숙자들이다.


봉사자들 덕에 지금까지 왔지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니 세월이 흐르면서 동참하는 이들도 생겼다. 교회, 성당 등 종교단체에서 자처해 일을 거들어주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봉사자는 부족한 상황이다.
  무료급식하면서 만난 좋은 인연을 들려주라는 말에 할머니는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친목모임, 교회, 성당 등에서 봉사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고마운 이들이지. 팀을 짜서 7~8명씩 돌아가며 나오는데 여기서 앞치마 두른 사람 중에는 서울대 출신, 중견기업 간부 출신 등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 모두들 60~70세 된 사람들이라 힘이 달릴 텐데 도와주셔서 감사해.”
  급식소를 꾸리는 데는 임대료와 조리사 인건비, 공과금, 식비 등을 합쳐서 한 달 평균 4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은 모두 광진교 남단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 지갑에서 나온다. 요즘처럼 물가가 뛴 상황에서는 부담이 훨씬 커졌다. 김 할머니는 “작년까지 20kg에 1만5000원이면 살 수 있던 감자가 요즘은 3만5000원이고, 한 단에 1000원하던 대파가 3000원씩 줘야 살 수 있다”고 얘기를 보탰다.


거동 못할 때까지 책임져야지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할머니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위생’이다. 때문에 그날그날 조달한 재료를 손질해서 아침부터 준비하고, 혹시 남은 음식이 있으면 원하는 사람에게 싸준다.
  “좋은 의도로 식사 대접하는 건데 우리 밥 먹고 탈이 나거나 하면 큰일이잖아. 그래서 집에서 보다 훨씬 신경 써서 준비하게 돼. 저기 봐. 행주, 앞치마도 깨끗하지.”
  할머니가 가리킨 곳을 보자 새하얀 면행주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꼬질꼬질한 우리 집 행주가 머리를 스친다.
  반찬거리도 가능하면 좋은 것을 선택한다.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깨끗하고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서다. 그는 “세월이 갈수록 자꾸 몸이 아프니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다”면서 “맛있게 밥 먹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가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흡족하면서 아픈 곳도 잠시 잊게 된다”고 했다.
  “남에게 밥 주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긴 해. 그렇지만 사실 우리 아들이 걱정돼. 결혼도 안 해서 내 눈에는 제 앞가림도 못하는 것 같고, 요즘은 장사도 잘 안되거든. 지금 내 소원은 아들 하는 일이 잘되는 거야. 그래야 무료로 밥 주는 것도 계속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구에서 주방 책임자를 지원해준다면 부담이 덜 될 것 같아.”
  할머니와 만남을 접고 돌아서는 길, 젊은 사람들에게 대접받아야 할 나이에 본인 호주머니를 털어 분주하게 밥 준비를 하는 할머니와 노년의 봉사자들의 모습에서 젊은 세대로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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