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발생한 원자력연구원의 방사능 유출 사고에 대한 관계기관들의 안일한 대응이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시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관계기관들이 기본 대응 매뉴얼도 지키지 않은데다, 관계 기관 간 협력시스템도 엉터리였던 것으로 드러나서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안전을 위협받는 주민들에게는 사고 소식도 제 때 전달되지 않았고 사고 시 행동요령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 이렇게 허술할 수가 = 실제 23일 오후 원자력연에서 열린 원자력안전시민협의회 회의에서는 이 같은 허술한 대응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원자력연구원에서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20일 오후 1시 8분. 하지만 백색비상 발령은 사고 발생 1시간 24분 뒤인 2시 32분에서야 이뤄졌다.
관련 지침에는 방사선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상황이 15분 이상 지속되면 비상이 발령토록 규정돼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이 규정을 위반한 채 경보 발령을 자의적으로 늦춘 셈이다. 방사능방재지휘센터에도 ‘자체 판단이 어려워 보고 과정을 거치면서 발령이 지체됐다’고 보고했다.
박종진 방재지휘센터 방재관은 “보고와 판단보다는 경보 발령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재난상황을 총괄하는 대전시에는 오후 4시 30분쯤에야 통보됐다는 것. 이 때문에 대전시는 사고 발생 3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야 지역 주민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특히 원자력 관련 용어 등에 익숙하지 않아 사고 내용에 대해서 정확한 파악을 하지 못한 탓에 단순히 사고 내용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 더 큰 사고 나야 정신 차리나 = 원자력연구원의 잦은 사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 지난 2007년 8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 대상인 농축우라늄 0.2g을 분실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으며, 2006년 11월에는 연구원과 용역업체 직원이 하나로 원자로 부근에서 작업 중 방사능이 높은 시설물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는 바람에 5분가량 방사선이 피폭됐다. 이 밖에도 2006년부터 최근까지 해마다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안전관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유병연 국장은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원자력연구원이 이해할 수 없는 대처를 했다”며 “해마다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인 원자력연구원의 심각한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근본대책 마련 절실 = 23일 열인 원자력안전시민협의회에서 위원들은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대전방재지휘센터의 역할이 전혀 없었고, 교육과학기술부 소관인 방재지휘센터의 기능이 뭔지 궁금하다”면서 역할 정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원자력연구원이 원자력발전소에 비해 늘 새로운 실험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새로운 위험 노출에 대한 적절한 매뉴얼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자력 안전사고와 관련한 주민 행동요령에 대한 전파 및 훈련 등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번 사고에서도 백색비상이 발령됐지만 주민들은 물론 대전시청 등 행정기관 관계자들조차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판단이 안 된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대처에 혼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원자력연구원 내부에서는 주기적으로 사고 발생시의 행동요령에 대한 훈련을 하지만 실제 주민들의 경우 그렇지 못해 심각한 수준의 비상이 발령된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사고 발생시 원자력연구원이 행정기관과 정보를 공유해 공무원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매뉴얼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기관간의 상호협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 사고 경위 = 한편 이번 백색비상 발령 사고는 20일 오후 1시 8분 하나로에서 실리콘 덩어리에 중성자를 쬐어 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인 웨이퍼(Wafer)를 만드는 작업 도중 실리콘 덩어리를 담은 알루미늄 통(200×349㎜)이 수조 위로 떠올라 사고 시설 내 방사선 준위가 기준치인 250μGy(마이크로 그레이)/hr를 초과한 데 따른 것이다.
문제의 알루미늄 통은 그 자체로 방사성 물질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중성자를 쬐면서 방사성 물질화했으며 수조 위로 떠오르면 시설 내 방사선량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원자력연은 앞서 알루미늄 통이 떠오른 뒤 수조 상부 지역감시기가 경보를 울리자 곧바로 시설 내에서 근무 중이던 직원 3명을 대피시켰으며 하나로의 가동은 자동 정지됐다. 이후 1시간 24분 후인 오후 2시 32분 백색비상 발령이 내려졌다. 백색비상은 방사선 3단계 비상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로, 원자력 시설의 안전운영을 저해할 정도의 이상이 시설 내부에 국한돼 발생했을 때 발령된다.
원자력연의 비상발령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 주민들이 방사선 유출 여부를 묻는 전화가 언론사 등에 빗발쳤다. 그러나 원자력연은 경계지점에서의 방사선 준위 측정 결과 다행히 정상치를 유지했다. 더 큰 사고로 확산되지는 않은 것이다.
원자력연은 사고발생 직후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사고수습과 함께 알루미늄 통 고정장치가 풀린 원인 규명에 나서는 한편 물 위로 떠오른 알루미늄 통을 제 위치로 가라앉히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사고발생 8시간, 비상발령 6시간 30여분만인 오후 9시 5분쯤 문제가 된 알루미늄 통을 수조 아래로 가라앉히는 데 성공, 방사선 준위가 정상을 회복함에 따라 백색비상을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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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허술할 수가 = 실제 23일 오후 원자력연에서 열린 원자력안전시민협의회 회의에서는 이 같은 허술한 대응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원자력연구원에서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20일 오후 1시 8분. 하지만 백색비상 발령은 사고 발생 1시간 24분 뒤인 2시 32분에서야 이뤄졌다.
관련 지침에는 방사선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상황이 15분 이상 지속되면 비상이 발령토록 규정돼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이 규정을 위반한 채 경보 발령을 자의적으로 늦춘 셈이다. 방사능방재지휘센터에도 ‘자체 판단이 어려워 보고 과정을 거치면서 발령이 지체됐다’고 보고했다.
박종진 방재지휘센터 방재관은 “보고와 판단보다는 경보 발령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재난상황을 총괄하는 대전시에는 오후 4시 30분쯤에야 통보됐다는 것. 이 때문에 대전시는 사고 발생 3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야 지역 주민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특히 원자력 관련 용어 등에 익숙하지 않아 사고 내용에 대해서 정확한 파악을 하지 못한 탓에 단순히 사고 내용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 더 큰 사고 나야 정신 차리나 = 원자력연구원의 잦은 사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 지난 2007년 8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 대상인 농축우라늄 0.2g을 분실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으며, 2006년 11월에는 연구원과 용역업체 직원이 하나로 원자로 부근에서 작업 중 방사능이 높은 시설물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는 바람에 5분가량 방사선이 피폭됐다. 이 밖에도 2006년부터 최근까지 해마다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안전관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유병연 국장은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원자력연구원이 이해할 수 없는 대처를 했다”며 “해마다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인 원자력연구원의 심각한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근본대책 마련 절실 = 23일 열인 원자력안전시민협의회에서 위원들은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대전방재지휘센터의 역할이 전혀 없었고, 교육과학기술부 소관인 방재지휘센터의 기능이 뭔지 궁금하다”면서 역할 정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원자력연구원이 원자력발전소에 비해 늘 새로운 실험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새로운 위험 노출에 대한 적절한 매뉴얼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자력 안전사고와 관련한 주민 행동요령에 대한 전파 및 훈련 등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번 사고에서도 백색비상이 발령됐지만 주민들은 물론 대전시청 등 행정기관 관계자들조차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판단이 안 된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대처에 혼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원자력연구원 내부에서는 주기적으로 사고 발생시의 행동요령에 대한 훈련을 하지만 실제 주민들의 경우 그렇지 못해 심각한 수준의 비상이 발령된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사고 발생시 원자력연구원이 행정기관과 정보를 공유해 공무원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매뉴얼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기관간의 상호협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 사고 경위 = 한편 이번 백색비상 발령 사고는 20일 오후 1시 8분 하나로에서 실리콘 덩어리에 중성자를 쬐어 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인 웨이퍼(Wafer)를 만드는 작업 도중 실리콘 덩어리를 담은 알루미늄 통(200×349㎜)이 수조 위로 떠올라 사고 시설 내 방사선 준위가 기준치인 250μGy(마이크로 그레이)/hr를 초과한 데 따른 것이다.
문제의 알루미늄 통은 그 자체로 방사성 물질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중성자를 쬐면서 방사성 물질화했으며 수조 위로 떠오르면 시설 내 방사선량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원자력연은 앞서 알루미늄 통이 떠오른 뒤 수조 상부 지역감시기가 경보를 울리자 곧바로 시설 내에서 근무 중이던 직원 3명을 대피시켰으며 하나로의 가동은 자동 정지됐다. 이후 1시간 24분 후인 오후 2시 32분 백색비상 발령이 내려졌다. 백색비상은 방사선 3단계 비상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로, 원자력 시설의 안전운영을 저해할 정도의 이상이 시설 내부에 국한돼 발생했을 때 발령된다.
원자력연의 비상발령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 주민들이 방사선 유출 여부를 묻는 전화가 언론사 등에 빗발쳤다. 그러나 원자력연은 경계지점에서의 방사선 준위 측정 결과 다행히 정상치를 유지했다. 더 큰 사고로 확산되지는 않은 것이다.
원자력연은 사고발생 직후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사고수습과 함께 알루미늄 통 고정장치가 풀린 원인 규명에 나서는 한편 물 위로 떠오른 알루미늄 통을 제 위치로 가라앉히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사고발생 8시간, 비상발령 6시간 30여분만인 오후 9시 5분쯤 문제가 된 알루미늄 통을 수조 아래로 가라앉히는 데 성공, 방사선 준위가 정상을 회복함에 따라 백색비상을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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