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향토 사학자 한동억씨

지역내일 2011-03-21 (수정 2011-03-21 오후 6:40:14)
“역사에 묻혔던 지명 스토리, 많이 발굴해 들려줘야죠”



판교 신도시 마을 이름을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한동억(66ㆍ이매동)씨는 성남의 향토 사학자다.
다른 한편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소장이자 성남문화원 이사, 성남 향토문화연구소에서는 부소장을 맡고 있는 등 직함만도 다수. 하지만 그는 향토 사학자로 불러질 때 가장 빛이 난다.  집성촌이었던 율동에서 조상 대대로 산지 530년,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한자와 역사를 익혔다. 독립 운동가였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친구들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는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체득한 역사의식 속에서 구전돼 내려오던 전설과 지명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 어떤 소설책보다 흥미로웠고 그를 향토 사학자로 회귀하게 했다.

마을 이름 찾기는 지역의 정체성 찾기
“서울에서 살다가 92년에 율동으로 돌아왔더니 동네 이름부터 역 이름까지 모두 엉망이었어요. 일제 때 쓰던 지명 표기를 그대로 마을과 지하철 역 이름에 붙여 놓았더라고요. 이름에서부터 고장의 정체성이 모두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마을이름 되찾기 활동. 국립지리원에 청원해 분당의 진산인 ‘영장산’ 이름을 되찾고 광주군과 경기도 지명위원회에 건의해 2001년 분당의 13개 동 이름의 개명을 이뤄냈다.   
“초림역은 풀‘초’와 수풀‘림’자를 써서 만든 역 이름이죠. 잡초가 무성해 진다는 의미로 성명학에서도 잘 쓰지 않는 이름입니다. 백궁역은 백현동과 궁내동의 앞 글자만 따와서 만든 이름이고요. 일제가 우리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쓰던 대표적 지명의 특징입니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알고 있던 한동억 씨의 노력으로 초림역은 수내역으로 백궁역은 정자역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 듣고만 있어도 가슴이 울컥해진다.
이쯤 되니 옛날이야기만큼 재미가 새록새록,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더 들어보았다.
“분당이라는 지명도 따져보면 분점리의 ‘분’자와 당우리의 ‘당’자를 따다가 만든 이름입니다. 사실 바뀌어야 하는데 워낙 굳어진 이름이 됐고요. 1914년에 일제가 조선의 행정구역 지명을 싹 바꿔버립니다. 그때 성남에 없어진 마을이름이 40여개가 되는데 너무 안타깝지요. 그대로 묻어 버리고 지나가면 후대에 면(面)이 서지 않을 것 같아 옛 문헌, 고서, 역사책들을 외우다 싶을 정도로 펼쳐봤습니다.”
어른들의 문집, 문중들의 족보를 들여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지명을 아직도 발견하게 된다는 그. 가장 안타까운 지명은 지금의 창곡동으로 불리는 ‘태자동’. 백제의 세자가 기거하던 세자궁(태자궁)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백제 역사의 중심에 있던 곳이 바로 우리네가 살아온 고장이라는 것.

우리고장의 지명과 전설 이야기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부르던 지명 하나에도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음을 절절히 느끼게 되는 대목. 비로소 뿌리의 소중함이 전해오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지명에 얽힌 재미난 설화들도 많다.
여수동에 전해오는 쌀 바위는 바위에서 쌀이 조금씩 나왔다 해서 붙여진 이름, 동원동의 쌀나무도 가지에서 쌀이 나와서 붙은 이름이란다. 구미동에는 병자호란 때 전쟁을 하려고 만든 전망대와 탄광이 있었다는 사실. 금토동은 금이 넘쳐날 정도로 많았고 율동은 삼족오가 살았던 곳으로 예부터 전쟁이나 화를 피해가던 곳이라 전해진다. 이런 지명에 얽힌 유래와 역사적 문헌들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그는 아름다운 판교 지명을 붙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판교는 ''널다리'' 라는 말에서 나온 지명으로 관을 짤 수 있을 정도의 널따란 나무로 만든 아치형 다리를 뜻한단다.
판교의 대표적인 마을 이름인 산운마을, 판교원 마을, 봇들 마을도 모두 예부터 불러오던 이름을 복원한 것. ‘봇들마을’은 신라 진흥왕이 이쪽을 차지하고 보를 막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이처럼 지명에 얽힌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옛 고서와 역사 기록을 통해 정보로 수집한 한동억씨. 지명복원에 대한 노력이 알려져 지난 2009년에는 ‘성남시 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옛 지명에 얽힌 설화와 전설, 스토리로 복원해야
 성남이 역사의 베일 속에 가려져 조명이 안 되었다 뿐, 장구한 세월 백제 문화가 꽃피던 역사와 문화와 고장이라는 것. 그것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한다는 사명감으로 그는 나이 먹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성남의 빛나는 역사는 수 백 가지가 넘지만 그 중 대표되는 10가지만 복원해 보여줄 수 있으면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성남시민들에게 우리 고장에 대한 자긍심이 저절로 생길 겁니다.”
성남 지명 총람을 만드는 일과 지역 곳곳에 묻힌 지명 스토리를 복원하는 일, 그가 요즘 두 팔 걷고 매달리는 활동이다. 
가실고개의 서낭당, 고인돌과 선돌, 봉화터, 대야원의 원터, 성남의 서당, 글 읽은 마을인 독정 등은 그가 복원하고 싶은 성남의 이야기다.
“전설의 고향이 단지 전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눈으로 직접 보고 옛 선조들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생생히 느껴볼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지역의 역사를 소설책보다 재미나게 읽을 수 있도록 역사에 묻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많은 스토리를 발굴해 들려줘야죠. 하하하”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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