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잠실중 3학년이었던 민경현양은 대원외고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영어는 자신 있었지만 문제는 국어와 사회. 학교성적이 전교권에 들만큼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다. “중3 국사 선생님이 독특한 분이셨어요. 국사와 세계사를 연결해서 수업을 하셨죠.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방대한 수업을 도통 따라갈 수 없었어요. 고심하다 EBS 강의에 눈을 돌렸죠. 이때부터 EBS가 제 절친이 되었어요.” 사교육 없이 한번 외고에 붙어보자고 스스로 독하게 마음먹고 공부를 팠다. 전교 1등을 하던 친구는 떨어졌고 경현양은 붙었다. “하면 되는 구나! 그때 깨달았어요. 죽을 만큼 열심히 하니 운도 따라준 것 같구요.” 외고를 혼자 힘으로 붙은 그때의 경험은 그에게 합격의 기쁨 외에 자신감을 덤으로 주었다.
사교육 NO, ‘스스로 학습법’으로 공부의 맛 터득
공교육보다 더 힘이 세진 사교육. 어떤 연유로 경현양이 학원과 담을 쌓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사립인 리라초등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경현양은 교육열이 남달랐던 극성스러운 엄마 덕분에 영어, 수학은 물론 피아노, 바이올린은 기본이고 첼로, 스케이트까지 사교육 기관을 두루 섭렵했다. 하지만 2년 뒤 갑작스럽게 귀국해 롤러코스터 같은 가정사를 겪으면서 경현양은 근검절약과 자립심을 몸으로 배웠다. “어린 마음에 이젠 학원 다니지 말고 나 혼자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초등 6학년 무렵이었어요. 사교육을 받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전혀 아니지만 어릴 때 내 자신과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어요.”
대원외고에서 경현양의 전공은 프랑스어. 이 역시 독학으로 공부한다. “학교 수업 외에 따로 학원 다니며 공부하는 동급생과 경쟁하려다 보니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불어인증 시험인 DELF 성적 때문에 좌절의 연속이었죠.”하지만 경현양 특유의 승부근성이 발동했다. 혼자서 끙끙대다 규칙적으로 일기를 써서 회화 선생님께 틀린 부분을 하나하나 교정 받았다. 하루에 4장을 써간 적도 있다. 2년 가까이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불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오전 8시쯤 등교에서 밤 10시에 하교할 때까지 수업시간과 자율학습에 최대한 몰입해 공부하는 것이 그만의 공부 전략이다. EBS 수학 강의 역시 매일 끼고 산다. “요즘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질문을 거의 안 해요. 하지만 경현이는 모르는 부분은 이해될 때까지 묻고 또 물어보지요. 적극성이 돋보여요. 공부 뿐 아니라 궂은 일, 어려운 일도 도맡아서 하는 성품이 반듯한 아이예요. 당당하게 자가 성장을 해나가는 멋진 녀석입니다.” 3년째 민 양을 지도하고 있는 대원외고 김미 교사의 귀띔이다.
‘부딪쳐 보자’ 승부욕과 끈기로 똘똘 뭉쳐
교내외 활동도 적극적이다. 세계 각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며 우리나라에 대해 잘못 소개한 부분을 찾아내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하는 고교 연합 동아리 HIFCO(historical fallacy correcting organization)에서 홍보 부장을 맡고 있다. 우리 문화재 소개, 독도 문제 등 사회적 이슈를 담은 브로셔를 만들기 위해 꼬박 1년간 매달렸다. 공부 시간 쪼개 가며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기사 써서 영어로 번역을 했고 협찬 스폰서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코엑스에서 열린 청소년 동아리 엑스포에 참여해 다양한 홍보활동을 전개해 EBS 등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동화책 읽어주기 봉사하다 영문학에 매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줄곧 도서부 활동을 해온 민양은 고교 입학 후 집 근처 송파어린이도서관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외국어 실력을 살려 토요일마다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영어와 불어로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다. 경현 양을 오랫동안 지켜본 조금주 사서는 “도서관에 일찍 나와 불어사전 찾아가며 열심히 수업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진정성이 엿보였고 우리 도서관 최다 시간 봉사자 중 하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서관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경현 양이 진로를 결정짓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동화책을 읽어주기 전에 미리 억양이나 표정연기를 준비해요. 그래야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며 집중해서 들어요.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는 영어책만 보면 질색하고 도망쳤어요. 꾸준히 1:1로 끼고 앉아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니 아이 스스로 파닉스도 터득하고 영어와 친해졌어요. 이런 경험이 하나 둘 쌓이면서 내가 가르치는 걸 좋아하며 소질도 있다는 걸 발견했죠. 영문과 교수가 제 꿈이에요.” 고교 1학년 때 푹 빠진 소설 <오만과 편견>이 영문학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3이 주는 중압감은 가끔씩 스케이트로 날려 보낸다. “어릴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무척 좋아했어요. 집 근처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장 강사들과도 꽤 친하죠. 밤 11시쯤 그곳에 가서 얼음 위를 달려보거나 점프나 회전 동작도 연습하면 마음이 진정되죠.”
스스로 부딪혀 자신의 숨은 재능을 찾아내고 더디지만 성실과 끈기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민경현 양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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