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운 음악이 은은히 들려오는 이곳은 서초구 노인복지관 강당. 아홉 명의 어르신들이 악기 연주에 열중하고 있다. 바로 어르신들로 구성된 서초구 시니어 실내악단의 모습이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모여 연습하고 서초지역 어린이집과 요양원, 경로당, 치매센터 등을 방문해 연주봉사활동을 펼친다.
기쁨과 희망의 소리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한다는 취지아래 출범한 시니어 실내악단은 지난해 1월 양재노인종합복지관이 주최한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단원들로 구성됐다. 이는 어르신들의 건전한 여가활용은 물론 은퇴노인들이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노년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서초구 시니어 실내악단에서 지휘를 맡고 있는 이종구(65) 단장을 만났다.
음악인의 열정은 끝이 없다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실기시험을 앞둔 학생들처럼 너무나 진지해 제가 오히려 긴장이 됩니다.”
역삼동 자택에서 만난 이종구 단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 단장의 서재에 들어서니 그동안의 연륜과 세월을 말해주듯 악보 꾸러미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악보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악보들은 제겐 매우 귀중한 보물입니다.”
악보를 펼쳐 보여주는 그에게서 오직 한길만을 묵묵히 걸어온 음악인의 열정적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시니어 실내악단에 관여하게 된 것은 작년 2월부터다. 그동안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 트롬본을 연주하곤 했는데 아예 단장 겸 지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
공개오디션을 통과해 당당히 시니어 실내악단에 합류하게 된 단원들은 “은퇴 후 보람 있는 제2의 인생을 살고자 손에 악기를 다시 들었다”며 입을 모은다. 이들은 대학에서 악기를 전공한 어르신을 비롯해 전직 음악교사, 성가대 연주자, 지역 오케스트라 단원, 취미로 악기를 배운 어르신 등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평균연령은 62세. 4개월간의 맹렬한 연습기간을 거쳐 작년 5월부터는 한 달에 두 번 요양원이나 복지관,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왕년의 화려한 이력으로 뭉치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송 모(71) 어르신은 대학에서 작곡과를 전공했고 대학시절 오케스트라 활동을 해온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그는 “바이올린을 잡아본지 50여년이 지났어요. 다시 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연주하면서 봉사까지 할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합니다”라면서 최근엔 연습용 바이올린까지 구입해 틈틈이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현재는 클라리넷, 플루트, 피아노, 바이올린 등 9명의 어르신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점차 인원을 늘려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1946년생인 이종구 단장은 서울음대에서 트롬본을 전공했다. 그 후 1973년에 은광여고 음악교사로 부임해 국내최초로 금관, 목관, 타악기로 구성된 취주악단을 만들었다. 그 팀을 이끌고 ‘전국 남녀 초·중·고등 취주악 경연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했고, 또 국가 및 체육단체 행사 등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학교 이름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 이 단장은 “그 덕분에 많은 제자들이 각 학교 음악대학에 무난히 합격했고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미8군 군악대와 협연하는 등 기억에 남는 행사들이 많았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1983년에는 보성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교내 ‘잔디밭 음악회’를 시작했다. 봄·가을의 점심시간이면 학교 교정에서 잔디밭 음악회가 열렸고, 학생들이 잔디밭에 모여 음악회를 감상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단장은 “이 후 다른 단체에서도 점심시간을 이용한 음악회가 많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1984년에는 서울에 있는 음악교사들을 모집해 ‘서울시 음악교사교향취주악단’을 결성했으며 지금도 퇴직교사로서 고문을 맡고 있다고 한다. 또 2001년에는 ‘All Friends Wind Ensemble’을 창단해 단장 겸 지휘자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 앙상블은 해마다 여러 지방축제에 초청돼 연주하고,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시민을 위한 야외 연주회’도 개최하고 있다고. 또한 그는 수도여사대(현 세종대학), 관동대학, 강원대학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후진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결혼에 대한 질문에는 “제대 후 2학년에 복학했을 때 이태원의 한 공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 때 같이 봉사하던 여대생이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그는 남매를 두었다. 모두 집근처에 살고 있는데다 맞벌이 부부여서 손녀를 돌보는 일도 가끔은 그의 차지다. 손녀에게 악기도 가르치고 공부도 돌봐준다는 이 단장은 “음악은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고 마음의 아픈 곳을 치유해주는 마법과 같은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들은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갈 각오가 돼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촬영을 위해 연미복을 차려입은 그의 모습이 저녁햇살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빛났다.
사진 임민철 작가 (스튜디오 ZIP)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기쁨과 희망의 소리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한다는 취지아래 출범한 시니어 실내악단은 지난해 1월 양재노인종합복지관이 주최한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단원들로 구성됐다. 이는 어르신들의 건전한 여가활용은 물론 은퇴노인들이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노년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서초구 시니어 실내악단에서 지휘를 맡고 있는 이종구(65) 단장을 만났다.
음악인의 열정은 끝이 없다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실기시험을 앞둔 학생들처럼 너무나 진지해 제가 오히려 긴장이 됩니다.”
역삼동 자택에서 만난 이종구 단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 단장의 서재에 들어서니 그동안의 연륜과 세월을 말해주듯 악보 꾸러미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악보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악보들은 제겐 매우 귀중한 보물입니다.”
악보를 펼쳐 보여주는 그에게서 오직 한길만을 묵묵히 걸어온 음악인의 열정적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시니어 실내악단에 관여하게 된 것은 작년 2월부터다. 그동안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 트롬본을 연주하곤 했는데 아예 단장 겸 지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
공개오디션을 통과해 당당히 시니어 실내악단에 합류하게 된 단원들은 “은퇴 후 보람 있는 제2의 인생을 살고자 손에 악기를 다시 들었다”며 입을 모은다. 이들은 대학에서 악기를 전공한 어르신을 비롯해 전직 음악교사, 성가대 연주자, 지역 오케스트라 단원, 취미로 악기를 배운 어르신 등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평균연령은 62세. 4개월간의 맹렬한 연습기간을 거쳐 작년 5월부터는 한 달에 두 번 요양원이나 복지관,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왕년의 화려한 이력으로 뭉치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송 모(71) 어르신은 대학에서 작곡과를 전공했고 대학시절 오케스트라 활동을 해온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그는 “바이올린을 잡아본지 50여년이 지났어요. 다시 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연주하면서 봉사까지 할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합니다”라면서 최근엔 연습용 바이올린까지 구입해 틈틈이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현재는 클라리넷, 플루트, 피아노, 바이올린 등 9명의 어르신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점차 인원을 늘려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1946년생인 이종구 단장은 서울음대에서 트롬본을 전공했다. 그 후 1973년에 은광여고 음악교사로 부임해 국내최초로 금관, 목관, 타악기로 구성된 취주악단을 만들었다. 그 팀을 이끌고 ‘전국 남녀 초·중·고등 취주악 경연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했고, 또 국가 및 체육단체 행사 등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학교 이름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 이 단장은 “그 덕분에 많은 제자들이 각 학교 음악대학에 무난히 합격했고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미8군 군악대와 협연하는 등 기억에 남는 행사들이 많았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1983년에는 보성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교내 ‘잔디밭 음악회’를 시작했다. 봄·가을의 점심시간이면 학교 교정에서 잔디밭 음악회가 열렸고, 학생들이 잔디밭에 모여 음악회를 감상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단장은 “이 후 다른 단체에서도 점심시간을 이용한 음악회가 많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1984년에는 서울에 있는 음악교사들을 모집해 ‘서울시 음악교사교향취주악단’을 결성했으며 지금도 퇴직교사로서 고문을 맡고 있다고 한다. 또 2001년에는 ‘All Friends Wind Ensemble’을 창단해 단장 겸 지휘자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 앙상블은 해마다 여러 지방축제에 초청돼 연주하고,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시민을 위한 야외 연주회’도 개최하고 있다고. 또한 그는 수도여사대(현 세종대학), 관동대학, 강원대학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후진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결혼에 대한 질문에는 “제대 후 2학년에 복학했을 때 이태원의 한 공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 때 같이 봉사하던 여대생이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그는 남매를 두었다. 모두 집근처에 살고 있는데다 맞벌이 부부여서 손녀를 돌보는 일도 가끔은 그의 차지다. 손녀에게 악기도 가르치고 공부도 돌봐준다는 이 단장은 “음악은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고 마음의 아픈 곳을 치유해주는 마법과 같은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들은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갈 각오가 돼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촬영을 위해 연미복을 차려입은 그의 모습이 저녁햇살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빛났다.
사진 임민철 작가 (스튜디오 ZIP)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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