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옷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한 옷을 짓는 기쁨과 자부심이 큽니다. 지금이야 명절이나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나 한복을 입어서 수요가 많지 않지만 우리 전통을 이어간다는 생각에 옛 옷을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합니다.”
한복의 매력에 푹 빠져 40여년의 세월을 한복과 함께한 침선장 구혜자(69?성내동) 씨. 그는 우리의 전통 의상을 직접 손바느질로 지어내는 장인으로,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이다. 침선장은 우리 고유의 바느질 기법으로 옷 등을 짓는 장인을 뜻한다.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내 공방에서 만난 그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에서 단아하고 기품 있는 우리 옷의 맵시를 확인시켜줬다.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바느질
한복과의 질긴 인연은 1970년 결혼과 함께 시작됐다. 맏며느리로 시집온 그는 침선장이었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단지 가족들을 위해 옷 몇 점을 지을까 하는 생각에 바늘을 잡았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복을 만드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위질부터 서툴렀고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옷감이 귀한 시절이라서 가위질을 잘못해 혼쭐이 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친정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한테서 배우려니 얼마나 마음이 어렵고 힘들었겠어요. 여간해서는 장인급 솜씨를 가진 어머니 눈에 들기 어려웠죠. 꾸중 듣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이를 악물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죠.”
전통 바느질은 기법만 헤아려도 대강 17가지쯤 된다. 홈질, 박음질, 감침질 등은 기본 중의 기본. 상침뜨기 하나만으로도 한 땀, 두 땀, 세 땀 상침 식으로 섬세하게 나눠진다.
침선장의 필수 장비인 바늘도 크기가 제각각이다. 옷감의 재질이나 특성에 따라 바늘을 달리 고를 수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스스로 쥐기 편하고 익숙한 것’이다. 그가 즐겨 쓰는 것은 머리카락만큼 가늘고 짧은 바늘이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웬만한 겨울 옷감도 능숙하게 꿰맨다. 만들어진 옷만 봐서는 손바느질인지 재봉질 작품인지 쉬 구별하기도 어렵다.
옛날 모습 머릿속에 놓고 작품 활동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끈기를 갖고 옷 짓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손에서 나온 옷은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용이 많다. 때로는 영화의상 제작의뢰도 들어온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대상이나 그 당시 널리 쓰인 옷감, 옷을 입었을 때의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때문에 옛 문헌이나 책을 가까이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주로 옛날 출토복식을 만들기에 옷감 구하기가 힘들어요. 문양이나 옷의 질감 등을 머리에 두고 옷감을 찾아보는데 없어서 난감한 적이 많죠. 그러면 공장에 직접 옷감을 짜달라고 부탁해야하는데 대량 주문해야하기에 비용부담이 커서 고민하게 됩니다.”
생각했던 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같은 옷이라도 두 번 짓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바느질 한 땀마다 장인의 숨결과 실력이 함께 꿰매진다.
여자 치마, 저고리 한 벌을 만드는데 손바느질 보름이면 끝난다. 물론 왕실 등 상류사회 옷을 지을 때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는 “손바느질로 하면 정성과 노력이 담겼다는 가치도 있지만, 옷 태가 아주 부드럽게 나온다”고 했다.
실, 바늘과 평생을 씨름하다보니 직업병도 가졌다. 눈과 어깨의 피로다. “옛날에는 바닥에 앉아서 장시간 동안 작업했지만 요즘은 책상과 의자에 앉아서 하니까 환경이 나아진 편”이라고 한다.
배움의 길 무궁무진하다
구 여사는 일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도 후학들에게 침선을 전수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진행하고 있고 대학원 강의도 나간다. 방학인 요즘은 공방에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한다. ‘한복이야기’ 세 번째 시리즈 책 출간을 앞두고 마지막 교정 작업도 한창이다.
“대학원에서는 우리나라 시대적 복식사, 한복 구성 등을 가르치고 공예학교에서는 직접 옷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죠. 의상학과 학생들부터 전업주부까지 연령과 계층이 다양합니다.”
요즘 그는 손바느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손바느질의 이점이 있지만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단점이 있기에 적당히 절충하는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 맞게 융통성 있게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침선장이므로 제 손에서 나온 것은 모두 손바느질이겠거니 짐작하지만 작품전시용이 아니면 재봉질도 병행하게 됩니다.”
문화가 많이 변화됐지만 우리 것에 관심 갖는 젊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뿌듯함이 크다. 실과 바늘을 전혀 쥐어보지 않았던 젊은 주부가 찾아와서 취미를 붙이고 따라오는 모습을 볼 때면 누구에게나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아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점도 있고요. 앞으로 제가 지은 옷들을 한 자리에 펼쳐보여서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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