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넘어 세상 품어 안는 마음으로 풍물 하는 엄마들
지난 해 12월,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 울려 퍼지던 흙마음 11주년 기념 공연을 기억한다. 고양문화재단의 지역문화예술활동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열린 공연이었다. 그들이 두드리는 악기 소리는 두근두근 심장 속까지 파고들었다. 전문 풍물패보다도 더 마음을 사로잡던 그들의 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물음을 안고 정발산동의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수요일은 풍물하는 날
처음에는 이름도 없었다. 1998년에 스무명 남짓한 회원들이 모여 만들었을 땐 그냥 ‘참교육학부모회 고양지회 풍물 소모임’이라 불렀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한 회원의 남편이 나무에 상모 돌리는 사람의 모습과 한자로 토심(土心)이라고 새긴 도장을 선물했다.
“토심이면 흙마음이네? 괜찮다! 이렇게 만들어 진 이름이었죠.”
창립 멤버 박이선 회원의 말이다.
흙마음은 매주 수요일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정기 연습을 갖는다. 회원은 20여명으로 가입한 햇수에 따라 1기, 2기, 3기로 나누어 연습한다. 꾸준히 모이니 회원들의 일상에 수요일은 ‘풍물하는 날’로 자리를 잡았다.
‘환갑 때 설장구 단독 공연을 하겠다’는 말을 둘레 사람들에게 해왔다는 박병희 회원에게 12년째 풍물을 하는 소감을 물었다.
“수요일은 비워 놔요. 그게 생활이지. 늘 하는 일이니까. 예술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풍물이 저한테는 평범한 일상이 돼 버렸어요.”
쉰 살에 가입해 5년째 활동 하고 있다는 김영주 회원은 “인생 후반기에 할 수 있는 것, 남 쫓아다니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 고민하다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타악기를 접하고 몸을 흔들어 표현하는 것에 거침이 없어지고 마음까지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몸을 풀고 나니 마음까지 유연해졌어요. 식구들하고 관계도 좋아졌죠.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어요.”
다른 회원들도 “수요일에 연습하러 안 오면 좀이 쑤신다”, “흙마음 활동을 하는 것 자체로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들은 흙마음의 또 다른 매력은 ‘맛있고 다양한 간식’이라며 웃었다.
5만원씩 모아 마련한 10주년 공연
모임을 꾸리고 나서 여기저기 공연도 많이 다녔다. 박이선 회원은 1999년 파주 출판단지 물류센터 기공식에서 공연 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1998년 고양시 어린이날 큰잔치 공연, 2003년 파주 책 한마당 공연에 참가했고 2005년에는 행주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해 장려상을 받았다. 2006년 담양대나무축제, 2009년 지구 환경의 날 공연을 비롯해 성당 체육대회, 초등학교 체육대회,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지난 2009년은 흙마음이 창립 10년을 맞는 해였다. 해마다 참교육학부모회 정기 총회에서 회원들과 가족들 앞에서 공연을 하기는 했다. 그래도 10년째는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10년이니까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20명 회원들이 매달 5만원씩 적금을 부었죠. 그렇게 2년 반을 모아 KT 강당에서 200여명 손님을 모시고 기념 공연을 했어요.”
지난해에는 고양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아람누리에서 11주년 공연을 가졌다. 2010년에는 하이서울페스티벌에 공연 팀으로 초대받기도 했다. 프랑스의 타악팀과 시민 풍물패들이 함께 하는 공연이었다. 회원들은 서양의 타악 연주에 결코 뒤지지 않는 풍물의 소리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풍물에 관심이 많았다는 조난주 회원은 “흙마음 덕분에 뻑뻑하던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장미현 회원은 “처음에는 내가 좋아서 했는데 아이들이 우리엄마는 조금 남다른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경희 회원도 “한 번씩 공연을 하면서 내가 예술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화합, 배려심에 훈훈하고 기량도 수준급
가랑비에 옷 젖듯 그저 매주 한번 씩 모여 풍물을 해 왔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직접 확인한 그들의 실력은 분명 전문패 못지않았다.
“정기 공연을 스스로 하는 그룹이 많지 않죠. 흙마음은 애호가 차원에서 보면 높은 수준이에요. 작품 하나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서너 개를 할 수 있으니 기량이 상급에 해당된다 할 수 있죠.”
초창기부터 흙마음을 지도하고 있는 장이헌 씨의 말이다. 그는 대구 비산농악 날뫼북춤 서울지부인 사물놀이패 울력의 고문으로 전남 무형문화재 18호 김동언 설장구와 우도 농악 이수자다. 인간문화재로 가는 바로 전 단계가 이수자라고 하니 보통 실력은 아닐텐데 그는 오히려 “흙마음을 지도하며 배운 것이 많다”고 말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분들이에요. 어느 모임이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툼이 있는데 이 분들은 관계를 맺는 기법이 달라요. 화합, 집중력, 결집력이 대단해요.”
회원들 역시 흙마음이 조금 남다른 모임이라고 자랑했다.
흙마음을 이끌고 있는 장은정 대표는 “풍물만을 목표로 해서 모인 집단에 비해 참교육학부모회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만났기 때문에 회원들 사이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으로 인한 이합집산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또 “함께 하는 모임이 좋아서 참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풍물 자체의 기량을 향상 시키는데 관심이 집중되지는 않는 것은 한계”라고 짚었다. 그러나
“기량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으면 서로 경쟁하고 좌절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 같다”면서 흙마음의 한계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모임이 이어져가길 바란다면서 “몰랐던 자신의 열정이나 끼를 발견하실 분,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수단을 발견하실 분, 치매를 예방할 창조적 방법을 찾으시는 분, 좋은 친구와 동지를 만날 분들이 계속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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