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국민은행연구소 연구위원
언젠가 영국에서 약 2000만원 정도의 빚에 시달리다 못해 집 마당에 굴을 파고 1년 동안이나 숨어 지낸 사람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은둔생활을 하게 된 이유를'빚 독촉'의 고통 때문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오죽하면 매일 채권자들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심장이 멎는 듯 했다는 것이다.
채권자들을 피하려고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할 만큼 빚 독촉이 무서웠던 탓이다.'빚진 죄인'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요즘 우리사회에서 빚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지난해 말 현재'가계부채'는 8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연평균 약12%씩 증가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가계부채가 줄어든 다른 나라들과는 퍽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 마디로 가계가 금융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씀씀이'와'빚 덩이'를 키웠다는 얘기다.
우리가 빚을 부추기는'빚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이 온통 돈을 빌려 쓰라는 유혹으로 넘실거린다. '돈 장사'를 하는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심지어 언론에서도 빚낸 돈으로 수익을 내는'지렛대 효과'를 운운하며 빚을 부추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아무 거리낌없이 빚을 받아들인다. 대출받아 집을 사고 신용이나 마이너스통장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예컨대, 코스피지수 2000시대가 열리자마자 한동안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외상으로 주식을 사는'신용융자잔고'금액이 급증했다. 주가의 추가상승을 기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빚을 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재테크'로 돈을 불릴 궁리만 하지 빚을 관리하는'빚테크'에는 무심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테크보다 빚테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테크에 실패하면'부자의 꿈'에서 멀어지는 것뿐이지만 빚테크에 실패하면 삶 자체를 꾸려나가기가 힘들어진다. 누구에게나 삶은 힘겹지만 빚진 사람의 삶은 더욱 고달프다. 빚이 있으면 심리적으로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이자부담에'빚쟁이'들은 숨이 턱턱 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빚테크가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부채 대중화 시대'에 꼭 필요한 빚테크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나도 모르는'숨은 빚'부터 찾아내야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보유한 부채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 갚아야 할 부채가 얼마인지, 매달 이자로 얼마나 나가는 지를 물었을 때"잘 모른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숨어있는 소소한 빚도 모으면 꽤 큰 금액이 되므로 부채현황을 남김없이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주택담보대출, 마이너스 통장이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보험약관대출, 친구·친지 등 주변에 빌린 돈 등 빚을 종류별로 빠짐없이 나열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월 상환액, 금리와 만기 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여 부채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가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매달 부채상환 총액을 순소득으로 나눈 소득대비 부채비율이 20~30%를 넘어섰다면 일단 위험수준으로 볼 수 있다.
부채현황을 파악했다면 다음은 부채상환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자부담을 감안하면 보통은 금리가 가장 높은 대출, (또 같은 금리라면) 금액이 가장 적은 대출, 만기가 가장 빠른 대출 순으로 갚아나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연체일수가 오래된 대출' 등 신용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악성부채는 금리와 관계없이 먼저 정리하여 추가적인 신용하락을 막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붓고 있는 예금이나 적금을 깨서라도 빚부터 갚는 게 유리하다.
빚테크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빚을 갚는 데 쓰기 위해 예금이나 적금을 드는 일이다. 말하자면 대출과 저축을 병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의 주수익원은'예대마진'이다. 예금금리보다는 대출금리를 높게 매겨서 이익을 남긴다. 그러니 은행이 손해 볼 작정이 아닌 다음에야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가 높을 리 만무하다.
또 금리가 같아도 세금 등을 떼고 나면 대출금리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저축을 해서 대출을 갚는 것은'밑지는 장사'다. 저축을 병행하기 보다는 빚 갚는데 매진하는 게 현명하다는 얘기다.
어쩌면 빚은 우리에게'숙명'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살다 보면 한 푼의 대출도 없이'내 돈'만으로 무엇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과감히 빚을 내는 모험도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빚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빚은'내 돈'이 아니라 때가 되면 갚아야 할'남의 돈'이기 때문이다.
빚은 또 다른 빚을 부르고 결국 빚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빚더미의'수레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빚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남의 돈 무섭고, 내 돈 귀하다."는 옛날 어른들의 말씀이야 말로'빚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로 새길'삶의 경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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