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을 전공하고 24년간 다양한 환자를 치료한 의사로서 의학이 과학인지에 대하여 회의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정확히 판단한 결과를 가감 없이 환자에게 전달할 때 비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의사 면허증을 취득하고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응급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환자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사망진단을 하고 영안실로 옮긴지 한 시간 여가 지났을 무렵, 젊은 여자 분이 응급실도 다급히 들어와서 사망한 분의 이름을 대고 어디 있냐고 물었다. 아무 생각도 경험도 없었던 의사는 간단하게 ''영안실로 가보세요''라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영화에서 본 장면이 그대로 연출 되어 있었다. 조금 전 그 젊은 여성이 기절하여 응급실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은 23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머리에 남아 있다. 이 사건은 자연과학만 생각하던 젊은 의사가 의료에 인간과 희로애락이 들어 있는 인문과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시술 후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료하게 되었다. 시술 부작용은 한두 달이면 호전되겠지만, 문제는 그냥 원래 있었던 것이 좀 더 잘 보이는 것이어서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다는 점이다. 결코 부작용으로 보이지 않는데 환자는 부작용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떻게 설명을 해드려야 환자 분이 이해하실 수 있을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인 상태로 대화가 끝나고 말았다.
과학이 직관과 다를 수 있고 일반 환자 분들은 직관에 의존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과학에 바탕을 둔 의학을 설명할 때 항상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충돌하게 된다. 자연과학자들이 항상 외골수만은 아니지만 정확한 설명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의료 소비자들은 직관에 맞는 편안한 설명을 선호한다는 것은 때로 정말 유능한 의사에게는 환자가 없다는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환자는 의사가 자연과학도라는 것을 이해하고 의사는 환자를 감정이 있는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하여 상호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면 더 좋은 의료서비스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이엠피부과의원
고우석 원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