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할 수 있어 오히려 제가 더 고맙고 행복하죠.”
구봉신협 정재홍(67) 이사장은 10여 년 전 부터 일본어 무료 강의를 하고 있다. 그를 거쳐 간 제자만도 1500여명에 이른다. 대전시청을 비롯해 도서관, 교육청, 금융기관, 초등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일본어를 가르쳤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던 사람들이 “재미있다” “쉽다”며 그의 명강의에 찬사를 보냈다.
지난해 강의를 들었던 주부 금기연씨는 “쉰이 넘은 나이지만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듣고 읽고 문장을 해석할 수 있을 만큼 일본어 실력이 늘었다”고 말했다.
최용규씨는 “규칙 없이 변하는 불규칙동사를 ‘개판동사’로 표현하는 등 수업이 재미있어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면서 “늘 기다려지는 수업”이라고 말했다.
또 올해는 우연히 라디오방송을 통해 정 이사장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전라도 광주에서 1주일에 2번씩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제자도 있다.
한번 수업을 들으면 마법 같이 빠져드는 일본어 강의는 어떻게 시작한 걸까.
그는 일본어를 배우게 된 동기부터 설명했다.
해태제과 입사 후 음료개발에 참여 했던 그는 한 달간 일본 오사카 동양제관 부설 단기대학 연수를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게 됐다. 일본어 기초만 겨우 뗄 정도의 초보 수준이었지만 일본어를 아는 직원이 없어 그가 연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몸짓 발짓을 동원해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와 공부를 하고, 공부한 내용을 실전에서 바로 응용하면서 일본어 실력이 일취월장됐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이 단시간에 정복되지는 않는 법. 그는 부족한 실력을 채워나가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해가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듣고 읽고 해석하고 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터득했다. 또 잦은 일본 출장도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보탬이 됐다.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면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일본어 교실을 열었다. 실용 일본어에 현지 상황을 적절히 비유하며 진행하는 강의에 직원들의 반응도 꽤 좋았다.
인생 2막, 봉사하며 살 수 있어 행복해
그런 그도 퇴직은 피해갈 수 없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회사를 퇴직하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재능과 경험을 살려 외국어 학원을 열었다. 그러나 치열한 학원간의 경쟁,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1년여 만에 학원 문을 닫아야 했다.
학원 문을 닫은 후, 직장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던 경험을 살려 ‘봉사하면서 여생을 보내자’는 생각을 했다.
2000년 초, 결심을 굳히고 처음 찾아간 곳은 대전시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강의를 하고 싶다며 이력서를 내밀었지만, 자격증과 강의 경험이 거의 없는 그에게 쉽게 강의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시청 직원들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키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2000년 4월부터 강의를 시작했고, 그 후로 가수원도서관, 서부교육청, 서대전세무서, 남대전농협, 혜천대학(사회복지학과), 한밭대평생교육원, 대전원앙초등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정 이사장은 “인생 2막을 봉사하며 살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구봉아카데미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 언제든 찾아 달라”고 말했다.
문의 : 545-2020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구봉신협 정재홍(67) 이사장은 10여 년 전 부터 일본어 무료 강의를 하고 있다. 그를 거쳐 간 제자만도 1500여명에 이른다. 대전시청을 비롯해 도서관, 교육청, 금융기관, 초등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일본어를 가르쳤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던 사람들이 “재미있다” “쉽다”며 그의 명강의에 찬사를 보냈다.
지난해 강의를 들었던 주부 금기연씨는 “쉰이 넘은 나이지만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듣고 읽고 문장을 해석할 수 있을 만큼 일본어 실력이 늘었다”고 말했다.
최용규씨는 “규칙 없이 변하는 불규칙동사를 ‘개판동사’로 표현하는 등 수업이 재미있어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면서 “늘 기다려지는 수업”이라고 말했다.
또 올해는 우연히 라디오방송을 통해 정 이사장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전라도 광주에서 1주일에 2번씩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제자도 있다.
한번 수업을 들으면 마법 같이 빠져드는 일본어 강의는 어떻게 시작한 걸까.
그는 일본어를 배우게 된 동기부터 설명했다.
해태제과 입사 후 음료개발에 참여 했던 그는 한 달간 일본 오사카 동양제관 부설 단기대학 연수를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게 됐다. 일본어 기초만 겨우 뗄 정도의 초보 수준이었지만 일본어를 아는 직원이 없어 그가 연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몸짓 발짓을 동원해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와 공부를 하고, 공부한 내용을 실전에서 바로 응용하면서 일본어 실력이 일취월장됐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이 단시간에 정복되지는 않는 법. 그는 부족한 실력을 채워나가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해가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듣고 읽고 해석하고 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터득했다. 또 잦은 일본 출장도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보탬이 됐다.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면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일본어 교실을 열었다. 실용 일본어에 현지 상황을 적절히 비유하며 진행하는 강의에 직원들의 반응도 꽤 좋았다.
인생 2막, 봉사하며 살 수 있어 행복해
그런 그도 퇴직은 피해갈 수 없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회사를 퇴직하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재능과 경험을 살려 외국어 학원을 열었다. 그러나 치열한 학원간의 경쟁,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1년여 만에 학원 문을 닫아야 했다.
학원 문을 닫은 후, 직장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던 경험을 살려 ‘봉사하면서 여생을 보내자’는 생각을 했다.
2000년 초, 결심을 굳히고 처음 찾아간 곳은 대전시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강의를 하고 싶다며 이력서를 내밀었지만, 자격증과 강의 경험이 거의 없는 그에게 쉽게 강의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시청 직원들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키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2000년 4월부터 강의를 시작했고, 그 후로 가수원도서관, 서부교육청, 서대전세무서, 남대전농협, 혜천대학(사회복지학과), 한밭대평생교육원, 대전원앙초등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정 이사장은 “인생 2막을 봉사하며 살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구봉아카데미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 언제든 찾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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