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붕괴후 새정부 수립 논의 가속도

미-러 각축전 속 파키스탄 일본도 입질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거의 확실

지역내일 2001-10-18 (수정 2001-10-18 오전 7:42:14)

‘포스트 탈레반’(탈레반 이후)에 대한 논의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번주에 탈레반을 대체할 새 정권 구성 및 재건 문제를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오는 20일에는 아프간 각 정파들이 모여 광범위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포스트 탈레반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유엔은 평화유지권 파병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두고 있다. 또한 무하마드 자헤르 샤 전 국왕과 랍바니 전 대통령은 서로간의 입장 차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러시아, 파키스탄 등 주변 이해국들도 탈레반 이후의 정권에 대해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저마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미, UN 탈레반 이후 평화유지군 파견 검토 = 아프간 수도 카불 및 주요 지역을 국제적 통제하의 비무장지대로 지정하고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방안이 미국와 유엔의 토의 과정에서 제기됐다고 16일 미국 정부 소식통들이 밝혔다.
이는 앞서 거론된 지역이 특정한 세력에 의해 통제될 경우 발생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 통제하에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과 유엔은 아프간의 새 정부가 각자가 통제하는 지역에서 자율권을 갖는 세력들의 연립정부로 돼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소식통들은 밝혔다. 그리고 만약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이 파견된다면 아프간 민간인들의 반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이슬람 국가 출신들로 군인들이 구성돼야 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6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및 그 보좌관들과 회동한 후 유엔이 장차 아프간에서 맡을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고 리처드 라이언 안보리 의장이 밝혔다. 그러나 그는 토의만 거쳤을 뿐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주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다면 유엔이 아프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아프간 전 국왕·전 대통령 ‘주도권 싸움’= 탈레반 이후 정권 수립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시나리오’구상이 한창인 가운데 아프간 전 국왕과 전 대통령간 주도권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북부동맹의 정치지도자 랍바니 전 대통령측은 최근 새정부 건설시 국정운영 방안 등에 무하마드 자헤르 샤 전 국왕측과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합의했었다. 그러나 최근 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져 벌써부터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두샨베 소재 아프간 대사관의 모하제딘 메흐디는 랍바니 전 대통령이 탈레반 전복 이후 정권을 직접 통치하기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전통적 족장회의인 ‘로야 지르가’의 구성을 지지하지만 지금 당장 소집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야 지르가’는 샤 전 국왕을 중심으로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아프간 최고 지도자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점쳐지는 족장회의를 말한다. 이 회의가 소집될 경우에는, 아프간 주민의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파슈툰족 지도자와 북부동맹 대표, 전 국왕 추종세력 그리고 탈레반 내 온건 세력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샤 전 국왕측의 제안은 다르다. 이들은 북부동맹 대표 50명, 자히르 샤 전 국왕측 대표 50명 그리고 양측이 서로 합의한 인사 20명으로 구성된 최고 평의회를 기대하고 있으며 이어 ‘로야 지르가’를 소집, 이 회의가 합법적 정부 수립시까지 과도정부 역할을 맡는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 방안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와 파키스탄 등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파키스탄 페르베즈 뮤샤라프 대통령은 17일 “북부동맹이 주도권을 쥐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는 인도와 러시아가 지원하고 있는 반파키스탄 성향의 북부동맹이 새 정권의 중심이 될 경우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 감소가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서방국가들로부터 여전히 아프간의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는 부르하누딘 랍바니 전 대통령은 지난 1996년 탈레반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됐으며, 자히르 샤 전 국왕은 지난 1973년 왕좌에서 축출돼 로마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 러시아 ‘포스트 탈레반 구상 중’= 러시아는 아프간 내 모든 민족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새 정부구성을 고려중이라고 16일 밝혔다. 지역 안보 상황과 아프간 문제 논의차 인도를 방문했던 클레바노프 부총리는 탈레반 정권 붕괴 뒤 새 정부를 구성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러시아는 아프간에서의 영향력 증가를 꾀하는 동시에 이슬람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며 차제에 탈레반 정권 붕괴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탈레반 집권 이후인 96년부터 북부동맹에 약 4500만 달러와 맞먹는 군수물자를 제공했고 아프간 전쟁 개전을 맞아 전투병력을 배치했었다.

이밖에도 미국와 일본은 포스트 탈레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17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특히 유엔의 ‘아프간 부흥회의(가칭)’를 도쿄에 유치하는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일부터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기간 동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포스트 탈레반은 지금 시기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숙현 기자 s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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