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광한루원, 전주 한옥마을 1박 2일

다섯 아줌마가 떴다!

지역내일 2011-02-25 (수정 2011-02-25 오전 9:06:20)


실상사의 석등


구정 때였다. 뜬금없이 셋째형님이 “올해 일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며 “2월 중순에 전주 쪽으로 놀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해왔다. 여행이야 워낙 즐기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특히 여자들끼리만 가는 여행이라는 말에 두말도 없이 가겠노라 했다. 19일 아침, “재밌게 놀다오세요”라는 아이의 말을 뒤로하고 셋째형님과 그의 친구, 사촌형님과 그의 친구, 리포터 이렇게 다섯 명의 1박2일을 시작했다.


광한루원의 설경


문화재와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진 지리산 실상사

셋째형님의 친구는 나 홀로 여행을 하면서 실상사에서 하룻밤 묵는다고 했기에 합류장소를 실상사로 정했다. 그리 바쁠 것도 없어 쉬엄쉬엄 가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 안한 불찰로 무려 4시간을 달려 지리산에 도착했다.
실상사에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중요문화재들이 있다는 말에 입장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 봤다. 불상이며 탑, 석등 등을 직접 보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증샷도 찍었다. 특히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철제여래좌불상의 손을 만지면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말에 조심스럽게 잡고 어루만지며 건강하게 해주십사 소원을 빌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실상사 맞은편 ‘소풍’이라는 예쁜 전통찻집에서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빛깔 좋은 오미자차도 새콤쌉쌀하니 맛났고 무엇보다 배고프다는 우리끼리의 말을 들은 주인이 손수 내준 강정이 고마웠다.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전경




전동성당 전경



춘향이와 이몽룡이 함께 놀던 남원 광한루원

전주로 들어가기 전에 남원 구경을 하기로 했다. 딱 한 곳 정도 들를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른 곳은 ‘광한루원’. 입장하기 전 남원에서 가장 맛있다는 중국집을 허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고 대신 광한루원 바로 옆에 있는 중국집을 택했다. 자장면 값이 2000원이라 맛없어도 본전이라 생각하고 들어간 집이 의외로 괜찮아 다들 재수~했다.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으로 이후 세종 26년(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광한’은 ‘달나라 궁전’이라는 뜻으로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봄이나 가을에 왔으면 더욱 아름다웠을 광한루원은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풍경을 둘러보기에 참 좋았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해 날씨 운도 좋다며 다들 들떠했다. 남원을 떠나 임실에 잠시 들러 치즈를 조금 샀다. 체험 시간이 끝난 늦은 오후라 별다르게 둘러볼 일도 없어 서둘러 길을 떠났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

저녁 무렵 전주에 도착했다. 원래는 한옥체험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원했던 한옥에 예약을 못하기도 했고, 다섯 명은 차라리 펜션이 낫다는 친절한 설명에 ‘청와’라는 한옥펜션에서 묵기로 되어 있었다.
미술을 전공했다는 주인이 직접 꾸며놓은 펜션은 아기자기 탐나게 꾸며져 있었다. 건물 밖은 지나가다가 한번쯤 서서 돌아볼 만큼 옥빛에 가까운 연한 하늘색이 예뻤다. 마천에서 장만해온 지리산흑돼지에 미역국, 각종 찬을 더해 배불리 먹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편히 누워 풀어내는 수다는 유쾌했다.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은 뒤 한옥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오목대’에 올랐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이라 금방 도착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마을을 카메라에 담았다. 채 눈이 녹지 않아 바닥은 군데군데 질척거렸지만 날은 곧 봄이 온다는 걸 아는지 따뜻해서 다니기에 딱 좋았다. 한옥마을은 느린 걸음으로 구석구석 둘러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주말에는 차라리 차 없는 거리로 만들면 더욱 편하게 오갈 수 있어 보여 아쉬웠다.
마을 내에는 전주 출신의 작가 ‘최명희문학관’이 있었다. ‘혼불’이라는 한 작품에 17년을 오롯이 바친 열정과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갑니다’라는 유언이 오버랩되면서 마음이 조금 아렸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영정)을 모신 ‘경기전’에 들른 뒤 마주한 전동성당으로 향했다. 전주에 가면 전동성당은 꼭 보고오라는 조언이 많았다. 성당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멋진 건물이었다. 마침 미사도 끝난 시간이라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도 차분하니 예뻤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조용히 앉아서 짧은 기도를 했다.
교동한식에서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눈도장을 찍어뒀던 세련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짧지만 알찼던 1박2일을 반추했다.


전동성당 내부



동서와 시누이지간, 그리고 그의 친구들. 주위에서는 여행가는 조합으로 다소 의아하다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여행은 장소 못지않게 함께 가는 동행도 중요하다. 다섯 아줌마들은 헤어지기 전 다음 여행을 기약할 만큼 마음이 잘 맞았다.
아이 없는 여행은 누구를 챙길 필요가 없어 가뿐했다. 모처럼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에도 남편아이 없이 여행가자고 하면 흔쾌히 따라나설 게다. 그래도 집에 들어서자마자 해맑게 웃는 아이와 남편을 꼬옥 안았다. 잠시 못 봤을 뿐인데 더욱 애틋하고 소중해진 모양이다. 3월이 저만치서 성큼성큼 오고 있다.




이수정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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