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친구가 되어주세요.”
똘망똘망한 눈, 짤막한 단발머리, 캐주얼한 후드 티 차림의 소녀. “안녕하세요.~” 약간 수줍은 듯 인사하며 들어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보통의 10대 여고생이다. 이 평범해 보이는 여학생, 이혜연 학생(세원고)이 지난 고양시 자원봉사대회에서 도교육청장(개인)을 수상한 장본인이다. 대게 학생 신분이라면 봉사활동을 팀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게 일반적인데, 개인 부분을 수상할 정도라면 그 뭔가 특별함이 있을 것 같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 여고생이 전한 ‘봉사’이야기는 소박했다. 그리고 진솔함이 담겨 있었다.
장애우 학생들과 함께한 연극, 또 하나의 배움터
중학생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틈틈이 해 왔지만 진정 마음을 다해 봉사를 시작하게 된 때는 지난해 부터였다고 한다. 주위 분의 추천으로 극단 작은 세상의 천사반 장애우 학생들을 만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이 곳 친구들과 연극 작품을 연습하고 공연 무대를 갖게 됐어요. 대사 전달이나 동작이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고,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죠. 아, 이 친구들도 충분히 뭔가를 할 수 있는, 우리와 똑같다는 걸요.”
어려움도 많았다. 작품 연습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을 때도 많았다. “공동 작업이라 한 사람이 빠지면 힘들잖아요. 연습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잠깐 학교 자습 쉬는 시간을 이용해 연습을 갖다 오는 날이면,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그럴 때면 선생님 눈치도 봐야 되고, 체력적으로도 힘이 부쳤어요.”
하지만 지난해 11월 번듯한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렸을 때의 감동을 생각하면 그 힘들었던 시간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 천사반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수기로 작성했더니 봉사대회 수상도 하게 됐다. 그래도 친구들과 수다 떨 때가 한창 좋을 나이.
“친구들과 놀러가기로 약속한 날과 봉사 날이 겹칠 때는 솔직히 가기 싫은 날도 있어요. 하하.” 라며 웃는 혜연학생. 그 솔직함이 더욱 좋다.
늘 사람을 그리워하는 아이들
혜연 학생은 천사반 친구들을 평생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소중한 인연들이라고 소개한다.
“정신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지만 너무나 순수한 친구들이예요. 어떤 친구는 표현이 어눌하고 서툴지만 저보다도 생각이 깊고요. 특히 은미라는 아이는 저를 너무 따라요. 제가 가는 날만 기다리는 친구예요.” 이 친구들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기에 만나기로 한 날은 꼭 지킬 수밖에 없다고 한다.
봉사 활동을 해오면서 많은 아쉬움과 희망사항이 동시에 생겨나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봉사활동을 와서는 자료를 남기기 위해 사진 찍기에 바빠요. 거동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포즈를 잡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심지어는 밥을 먹여주는 자세를 취할 때는, 먹는 시늉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해야 하니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면 혜연 학생에게 봉사란 무엇일까.
“봉사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청소를 하는 봉사도, 음식을 만들어 주는 봉사도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 진심으로 그들의 말동무,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주위에는 늘 사람을 그리워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안부 인사 한 마디만이라도 걸어주길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고 해연학생은 전한다.
가족의 지지가 큰 힘
그간 가족의 이해와 도움도 무지 컸다. 남들 다 다니는 학원은 가지 않으면서, 남들 안 하는 봉사는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딸을 이해해 주고 격려해준 부모님이 늘 고맙다고 혜연학생은 전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힘이 됐던 자신의 반쪽이 있다. 바로 쌍둥이 자매 지연 학생이다. 쌍둥이여서 그런지 관심 가는 쪽도 비슷했다. 인터뷰에 동행했던 지연학생은 “혜연이가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걸 보면서, 저도 연극 활동에 동참하게 됐어요. 하지만 혜연이를 따라가지는 못해요. (웃음) 몸이 죽도록 아플 때면 쉴 법도 한데 아무리 말려도 꼭 가야 된다면서 일어나더라고요.” 라며 혜연학생을 대단하다 칭찬한다.
“공연 날은 다가오는데 다리를 다쳐 연습에 못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럴 때면 지연이가 다녀와서 꼭 알아야 할 부분이나 연습했던 내용을 다시 가르쳐 줬어요. 너무 고마웠죠. 물론 자주 싸우기도 하죠. 헤헤” (혜연)
이제 고3이 되는 터라 지금처럼 시간을 내기는 힘들겠지만, 대학생이 되도 지금의 친구들을 잊지 않고 찾을 계획이라는 혜연학생. 더불어 영원한 인생의 벗이 되어줄 지연 학생.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지금의 소중한 인연과 경험이 수학공식, 영어 단어보다 더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라고 지금 두 소녀는 믿고 있다.
남지연 연리포터 laman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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