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작가 박완서를 기리며

이 세상 소풍을 마친 박완서님, 당신이 고맙습니다.

지역내일 2011-02-14 (수정 2011-02-14 오후 1:01:53)

지난 1월 22일 한국 문학계의 거목 박완서 작가가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리고 국내의 대표적인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박완서 작가를 기리는 추모전의 열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답게 그녀의 작품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한두 번쯤 제목을 들어봤거나, 교과서를 통해 접해본 것들이 많다. 인간과 자연, 세상을 대하는 특유의 서정적 시선이 빛났던 박완서님의 글. 때로는 위로가 되어주고, 때로는 희망이 되어주었던 박완서님의 대표작 몇 편을 추억해 본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의 유년기부터 결혼 전까지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그 삶 속에는 일제시대의 슬픔과 한국전쟁의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싱아’는 그녀가 가난했던 시절 어린 줄기를 날로 뜯어 먹던 신맛이 나는 풀로서, 이는 곧 유년의 기억들로 상징된다.
주인공인 그녀는 개성 부근의 박적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곱 살 무렵에 서울로 이사를 온다. 시궁창 물이 흥건했던 현저동에서 서울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일본 말로 공부하고 노래도 익히면서 초등학교 시절을 지낸다. 1950년,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하지만 그해에 6.25가 터지고 만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총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명석했던’ 오빠가 여덟달 만에 죽어 나가고, 1.4후퇴 후 생계를 위해 남을 속이는 등 척박했던 삶을 그녀는 나중에 글을 써서 증언하리라 결심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30년대 어린 시절부터 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맑게 그려냈다. 이 책을 대하니 어릴 적 어머니가 주신 마들렌느의 맛으로부터 기억을 찾아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소설이 생각난다. 그 후 작가는 배고팠던 시절에 미군 물자와 그 문화에 길들여져 가는 비굴한 자신의 모습을, 또 직장 동료였던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던 아름다운 시절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끝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1년 만에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했던 절절한 사연들은 그녀의 가슴 속에서 정화되고 또 정화되어 박완서 문학의 거대한 봉우리로 우뚝 섰다. ''싱아''로 상징되는 그리움의 대상들이 작가의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날 때 나 역시 아련한 내 유년의 바다를 항해하는 듯 했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는 분단과 이데올로기, 그 시대 민초들이 당해야 했던 고난 등을 통해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온 우리민족의 아픔과 역경을 더욱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위로가 되는 말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작가 박완서님의 등단 40년을 맞아 출간된 산문집으로 이제 그 분의 마지막 저서가 됐다. 박완서님의 삶은 늘 글이 되고 그 글은 잔잔히 감동도 주고 따듯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지난 해 여름, 삶이 벅차 감당하기 힘든 중년의 주부로 살아가면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책의 제목만 보고도 마음이 심란했다. 아, 저 분도 ‘못가본 길’에 대한 미련이 있구나. 그 한가지만으로도 위로가 됐고 박완서님과 동질감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저 분에게 못가본 길이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그 분의 부음을 듣고 난 후, 책을 읽고서야 풀렸다. 박완서님은 한국전쟁이 나던 해인 195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시대 형편상 6월에 입학식을 치르고 얼마 안 있어 전쟁이 난 것이다. 전쟁 통에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자신이 꿈꾸던 것을 시작도 못해보고 인생이 덧없이 흘러간 것이다. ?
그 분은 책에서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고 회고했다. 이 구절은 이상하리만큼 날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놓친 꿈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일도 있을 것이고 매일 매일 벌어지는 사소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못 가본 길에 미련을 두고 마음아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못가본 길은, 걷고 있는 길에 비해 언제나 아름다운 환상이 뒤따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
이 책을 박완서님의 사후에 읽어서 그런지, 책 구석구석에서 그 분이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글귀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책을 낼 수 있어 손자들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씀에는 자신의 수수한 삶에 대한 만족이 묻어있다. 그리고 ‘다만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으로 아무런 사심도 없이 이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했던 편안한 마음을 전해주고 가셨다.
이제 더 이상 그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내내 아쉬울 뿐이다. ? 
이희수 리포터 naheesoo@dreamwiz.com





가부장제 결혼제도의 유치하고 비열한 실상 고발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박완서 대표작 중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주인공 차문경이 싱글맘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90년 발간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싱글 여성의 양육권 투쟁과 이를 통한 자아 찾기를 심도 있게 다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대학 3학년 때였다. 아마도 도서관에서 취업 공부를 하다가 잠시 서가를 둘러보던 중 제목에 끌려 책을 펼쳤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당시 독신주의를 표방하던 나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다지게 한 역할을 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지긋지긋한 남아선호 사상’이 신물 났었고 제 편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남자 주인공 혁주의 태도도 무척 짜증이 난 나는 ‘역시 결혼은 할 필요가 없어’ 라고 결론내리며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여자 주인공 문경처럼 35세가 되면 난 뭘 하고 있을까 막연히 상상해 봤던 것 같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는 되지 말아야지 했던 것도 같은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것이 변했다. 난 당시의 결심과는 달리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 버렸고 글을 보는 시각도 예전의 ‘왜 이렇게 살까’라는 결사반대의?시각과는 거리가 먼 측은지심의 시각으로 문경에게 감정이입 되어버렸다. 이제는 허락 없이 나은 아이를 아버지 호적에 올리고 싶어 하는 문경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고, 문경이 임신으로 배가 불러 오면서 교장으로부터 교사직 사퇴를 강요받는 장면에서는 같이 맘이 아프기까지 했다.
번듯한 직장에서 쫓겨 난 문경이 아파트에서 놀이방을 하다가 ‘하나 아빠’와의 스캔들로 결국 이사까지 가게 되는 장면에서는 아줌마들 입소문의 중심에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이 떨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子) 인도 청구권 소송에서 이김으로써 아들을 지켜내는 문경을 보며 마치 내 일처럼 기쁘기도 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란 소설 제목은 당시 진보적인 여성들이 쉽게 꿈꾸는 ‘평등한’ 결혼이란 것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꿈과 같은 것인지, 또 관습과 인습이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이 발간된 지 30년,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만큼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지만 아직도 여성이 약자인 것은 별반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차문경의 승소가 하나하나 모여 10년 뒤 내 딸이 살 세상에서는 100% 평등한 결혼을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기정 리포터 kimkichoung@hanmail.net


인간은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 
『미망』

지난 1월 22일 박완서 작가가 타계했다. 법정스님 타계 때처럼 서점에는 박완서 작품집 코너가 따로 생겨나고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다시 꺼내들었다. 어떤 이는 그분을 인생의 멘토라 했다. 또 어떤 이는 그의 글을 체험과 치유의 글쓰기라 평했다.
지금으로부터 십 여 년 전, 나는 수없이 방황하고 헤매었었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생각은 점차 비관적으로 흘렀다. 그 어떤 희망도 기쁨도 발견하지 못하다보니 비관적인 내 생각들은 두더지가 파놓은 흙더미처럼 태산만큼 높아져만 갔다. 여기에 주변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까지 더해졌다. 그렇게 나는 시퍼렇게 날이 선 면도날처럼 나와 내 주변사람들을 가차 없이 베어내고 있었다.
그저 그런 고통의 시간 속에서 별 의미 없이 펼쳐든 책을 통해 나는 마치 마법처럼 치유의 힘을 얻게 되었다. 바로 작가가 예순을 넘긴 나이에 집필을 마친 『미망』이다. 1995년 한 공중파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이 작품은 개성지방 인삼거상 일가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부잣집 종손녀 태임이다. 태임은 겉으로 보기엔 뭣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실수와 그로 인해 태어난 남동생의 존재로 인해 크나큰 트라우마를 입는다. 여기에 그녀의 성장기는 격변기를 거치는 우리나라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더욱 거칠고 어려워진다. 그녀에게 모든 여건은 갈수록 불리해진다. 하지만 태임은 어린 시절 받았던 깊은 상처와 봉건주의시대에 맞닥트려진 여성이라는 한계를 모두 극복한다. 그리고 지우고만 싶었던 상처의 흔적과 남동생의 존재까지도 인정하고 화해한다.
이 책을 통해 거친 풍파와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는 시련의 시간만이 용서와 화해가 가능한 아름답고 성숙한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게 찾아온 시련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용기도 얻게 되었다.
박수진 리포터 icoco19@paran.com





내 마음 속 도둑을 발견하다 
『자전거 도둑』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의 필독 리스트에서 박완서님의 동화를 발견했다, 『자전거 도둑』. 세상을 보는 시선이 따뜻한 분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읽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잘 사는 삶을 꿈꾸었던 분이기에 아직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잘 다독이고자 이런 동화를 남기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도둑』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동화였다. 당장 주인의 돈을 지키기 위해 자전거를 들고 뛰어온 수남. 하지만 그런 수남을 꾸짖기는커녕 잘했다고 좋아하는 주인. 수남은 그런 주인과 도망가라고 부추긴 주위 어른들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
‘내가 한 짓은 옳은 짓일까? 옳을 것도 없지만 나쁠 것은 또 뭔가…. 그런데도 왜 무섭고 떨렸던가. 그 때의 내 꼴이 어땠으면 주인 영감님까지 “네 놈 꼴이 꼭 도둑놈 꼴이다”라고 하였을까. 그럼 내가 한 짓은 도둑질이었단 말인가?’
나도 무심결에 내 아이에게 수남이의 주인 같은 모습을 무척 많이 보여주고 산다. 길에서 돈 1000원이라도 주워오면 “운이 좋네”하고 좋아하고, 찍은 답안이 맞았으면 “찍는 것도 실력이야”하면서 별 의식 없이 지나친다. 횡단보도가 멀면 아이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감행하고, 인터넷에서 사진이나 기사를 별 의식 없이 퍼와 학교 제출용 자료를 만들면 숙제 잘 했다고 칭찬을 했다.
작은 일이라서 지나치는 일, 나쁠 것 없는 일이라 간과하고 도덕성을 일깨우지 않은 채 지나치는 일, 내게 이익이 되면 짐짓 모른 척 지나가는 일들이 내 아이의 도덕성을 어떻게 해칠 지는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 어쩌면 그래서 아이들이 점점 더 이익이나 결과에 집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 아닐까?
언제가 EBS 모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도덕성이 높은 아이들이 생활 만족도도 높고, 성취감도 높아 사회에 나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다. 아이가 잘 자라주길 기도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 속과 아이의 마음속에 자라는 자전거 도둑을 치우지 못했다.
수남에게 필요했던 건 꾸짖어줄 어른이었다. 내 아이가 자전거를 들고 뛰어온다면 난 아이를 나무랄 수 있을까? 박완서님이 또 한 번 그리워지는 이유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박완서 작가가 남편이 남기고 간 여덟 개의 모자로 그를 추억했듯,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기고 간 작품들로 그를 추억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용기를, 때로는 조용한 꾸짖음을 전해주던 박완서 작가. 그녀를 보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그의 작품 속에 고개를 파묻게 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