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법원 판사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어떤 판사님이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와 보니 자신의 책상 서랍에 있던 현금이 없어졌다. 그 분은 분명히 자신의 사무실 문을 걸고 식사를 하러 나갔기 때문에 사무실을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사무실 열쇠를 보관하고 있는 여직원 밖에 없다고 하면서 여직원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평소 여직원의 행실이나 태도로 보아 도저히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도둑이 문을 따고 들어와서 훔쳐간 것일지 모르니 함부로 남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하였다. 점심 때 직원들이 모두 식사하러 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외부인의 소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건은 그냥 넘어가고 사무실 열쇠를 2중으로 설치하는 것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면 안 된다. 아무런 혐의도 없는 사람을 단순히 의심이 간다는 이유로 구속하거나 압수, 수색을 할 수 있을까?
수사에는 강제수사와 임의수사가 있다.
판사의 압수, 수색 영장을 받으려면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 소명자료를 제출하여야 하기 때문에 아무런 이유 없이 압수·수색을 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관련 증거를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과학적 수사에 의하여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자료를 확보하고 피의자가 도망가거나 증거를 인멸한 우려가 있는 경우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
이러한 영장을 발부받지 못하면 임의수사를 해야 한다. 임의수사는 피의자가 자발적으로 수사에 협조하여 수사기관에 가서 조사를 받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는 임의동행의 형식으로 피의자를 수사기관에 데리고 가서 조사를 한다. 누가 수사기관에 기분 좋게 동행하여 따라갈 수 있을까? 형식은 피의자의 동의를 받을지 몰라도 피의자가 마음이 내켜서 따라가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임의 동행을 거절하면 체포영장을 받게 될 것이고 괘씸죄에 해당되어 수사에 불리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따라가는 것이다.
임의동행의 형식을 빈 조사는 임의수사이다. 이는 자발적인 것이므로 언제든지 조사를 원치 않으면 그만 두고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언론에서 ‘모 재벌그룹 회장을 소환했는데 귀가시키지 않고 밤샘 조사를 하고 있다’라고 보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임의수사의 기본을 망각한 이야기다. 귀가시키는 것은 수사기관의 권한이 아니라 피의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이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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