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구의 우리 음식이야기③] 설날, 떡국 먹는 이유는?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전라도의 닭장 떡국서 유래
설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멥쌀과 소금으로 만든 소박하기 그지없는 가래떡이다. 우리는 이 떡을 섣달 그믐날 ‘세신(歲神)’에게 올렸다가 설날 아침 떡국으로 끓여 조상에게 바치고, 가족 모두 음복을 해야 비로소 한 해가 시작된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이 떡을 ‘첨세병(添歲餠)’이라 하여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설음식 떡국도 지역마다 맛과 모양이 가지각색이며 각 지역 특산물이 더해져 지방색이 뚜렷하다. 황해도 함경도에서는 큼직한 만두가 가득한 만둣국을, 경기도 강원도 지방에서는 떡만둣국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남부 지방에서는 떡만 넣은 떡국을 먹었다. 팔도 떡국은 맛도 모양도 조리법도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기원의 의미는 한가지인 각도(各道)의 떡국을 소개한다.
만두피도 없이 만든 만두로 끓인 국으로, 다진 돼지고기, 숙주나물, 두부, 밀가루에 갖은 양념을 넣고 골고루 섞어 완자 모양으로 빚어서 밀가루에 여러 번 굴린 뒤 끓는 물에 삶고, 밀가루를 묻히고 삶는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 뒤 쇠고기 육수에 담아내는 평안도식 굴린 만두국.
소금에 절인 배추와 볏짚을 독에 켜켜이 쌓아 담근 강짠지가 들어간 황해도의 강짠지만두국은 아삭하게 씹히는 느낌이 좋다. 황해도 만두에는 ‘강짠지’가 들어가지만 요즘 사람들 입맛에는 강짠지가 너무 짜서 절인 배추로 대신한다.
예부터 함경도에서는 만주에서 날아온 북꿩을 잡아 다양하게 요리해 먹었는데 그중 하나가 꿩만두국이다. 꿩고기를 곱게 다져 숙주, 두부, 다진 마늘, 파와 섞은 뒤 볶아서 만두소를 만든다. 어른 주먹만하게 만두를 빚어 꿩뼈, 무, 대파를 푹 곤 육수를 넣고 끓이는 중간에 다진 꿩고기를 양념해 넣는 것이 함경도식 꿩만두국이다.
경기도 지역의 대표 음식은 개성의 조랭이떡만두국이다. 조랭이떡은 가늘게 뽑은 멥쌀 가래떡을 굳기 전에 작게 토막 내 나무칼로 비벼서 조롱박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개성 사람들이 원한을 풀고자 목을 비틀어 만들기 시작한 것이 조랭이떡의 시초라고 전해진다.
강릉하면 지금도 직접 초당두부를 만들어 먹는다. 이 두부를 만두소 재료로 쓰는 것은 기본이고, 끓는 떡만두국에 더 넉넉하도록 어른 손가락 길이로 썰어 넣고 먹기 전에 달걀을 풀어 넣어 부드러운 맛을 더하는 것이 강원도 강릉의 두부떡만두국이다.
충청도에서는 가래떡 대신 수제비처럼 멥쌀가루 반죽을 그대로 육수에 넣기 때문에 날떡국 혹은 생떡국이라고도 불린다.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가래떡 모양으로 길게 늘인 다음 동그랗게 썰어 생떡을 만들기 때문에 일반 떡국보다 쫄깃쫄깃 한 맛은 덜하다. 쇠고기, 닭고기, 조개 육수를 쓰며 충청북도 일부 지역에서는 다슬기를 넣고 끓이기도 한다.
전라도에서는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고 조선간장에 닭고기를 졸여 ‘닭장’을 만들어 이틀 정도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국물 재료로 쓴다. 단순히 닭 육수에 끓인 떡국이 아니다. 꿩고기를 구하기 어려웠던 서민들이 대신 닭고기로 떡국을 끓여 먹었다. 전라도의 닭장 떡국 때문에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남해안의 거제, 남해, 통영에서는 멸치와 다시마를 우린 국물에 가래떡을 넣고 끓어오르면 굴을 넣은 굴떡국을 즐겨 먹는다.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미역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마늘은 국의 향을 죽이기 때문에 넣지 않는다. 굴떡국과 물메기떡국은 경상도의 겨울철 향토 음식으로 깊고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어느 지역이나 떡국에는 백김치와 나박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아직 낯설은 날’이라는 뜻의 ‘설’에는 ‘세찬(歲饌)’이라 하여 떡국과 같은 새해 음식과 덕담을 나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슬슬 “부자 되세요, 로또 되세요, 돈 많이 버세요”로 바뀌는 세태가 아쉽다.
글 구미 S-코드스쿨 원장
사진 전득렬 팀장 papercu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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