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인터뷰/ 실버축구단 서울대표팀 허윤정 단장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서울시 실버축구단'', 전 국가대표와 실업팀 출신으로 무장

지역내일 2011-01-31

구황제 마라도나 이후 최고의 스타였던 브라질 축구선수 호나우두는 “내 장점은 드리블이나 스피드가 아닌 축구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시는 허윤정, 김정남, 이회택 등 전 축구 국가대표와 축구 관계인 등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 실버축구단''을 창단했다. 이러한 결실을 맺기 위해 오랜 세월 호나우두 못지않은 열정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이가 있다. 오로지 축구에 대한 사랑으로 한평생을 보냈다는 허윤정(77) 단장이 바로 그 주인공. “저는 축구를 너무나 사랑합니다”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그의 얼굴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행복해 보였다.

전 국가대표 선수 등 28명의 호화군단
허윤정 단장은 “실버축구단을 통해 ‘허약하다''는 노인의 이미지를 벗고 활기차고 건강한 실버축구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출범한 서울시 실버축구단은 ‘서울시 고령사회 마스터플랜’의 하나로 노인의 건강관리와 여가문화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전 국가대표 선수였던 허 단장이 서울시와 논의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전 국가대표와 실업팀 멤버로 구성된 실버축구단을 만들기 위해 오래 전부터 구상해 왔고, 2009년도에 본격적인 물밑작업을 시작했다”면서 이는 노년층의 건강과 축구 동호인들의 저변확대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강조했다. 사비를 털어가며 일일이 사람들을 만나 의사를 타진했고, 그 과정에서 옛 동료들을 만나니 더없이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함께 100세까지…슛~골!’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김정남, 김호, 이회택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호화군단 28명으로 짜인 서울대표팀을 출범시켰다. 축구팀의 평균 연령은 68.5세. 또 자치구마다 한 팀씩 총 25개 ''자치구 실버축구팀''까지 창단해 서울대표팀과 함께 ''서울시 실버축구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허 단장은 “실버축구단의 운영은 대한노인회서울시연합회(회장 황인한)에서 맡고, 서울시와 자치구를 합해 600여명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사를 꿈꾸며 공군사관학교 진학
서울대표팀은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한 허 단장을 중심으로 자치구를 월 1회 이상 순회하며 기술과 노하우 등을 알려준다. 또 유소년팀에 대해서도 시니어전문자원봉사단의 일원으로 축구교육 등 자원봉사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허 단장은 “시니어전문자원봉사단은 작년 2월 발대식을 갖고 보건의료, 문화예술, 체육지도 등 12개 분야별로 1,000여명이 활동 중이며, 실버축구단 서울대표팀도 이에 합류했다”며 작년 노인의 날에는 ‘서울시장배 실버축구대회''에도 참가했다고 전했다. 

전남 진도가 고향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체력이 좋아 모든 운동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축구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진도중학교를 거쳐 목포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결원이 생긴 축구팀에서 선배들에게 이끌려 대타선수로 뛰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그의 가능성을 발견한 축구부 주장이 여러 차례 찾아와 종용했지만 그의 꿈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다름 아닌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 멋진 조종사가 되는 것. 

1956년 진해 공군사관학교에 무난히 합격한 그는 멋진 제복과 함께 그의 꿈을 향해 활기찬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3군 사관학교(육사, 공사, 해사)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1,2차에 걸친 신체검사가 아주 까다로웠지요.”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축구의 장인
허 단장은 신입생 시절, 로마올림픽에 출전할 후보 선수를 뽑는 선발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해 거뜬히 발탁되었다. 하지만 조종사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공사를 졸업하고 공군대학교 교관과정에 들어갔다. 그러다 그의 소질을 못내 아쉬워하던 사관학교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축구선수의 길로 급선회하게 된다. 본격적인 합숙훈련을 시작으로 허 단장의 축구인생이 펼쳐졌고, 그 후 그는 국내외 많은 경기에서 국가대표 선수로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또 국내의 막강한 실업팀 주장을 역임하면서 축구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축구와 동고동락하며 15년을 보내다 지난 1974년에 일선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조기축구회를 비롯해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축구에 관한 일이라면 열일을 마다않고 달려가는 축구계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허 단장은 1966년 국가대표 시절, 선배의 소개로 만난 여섯 살 연하인 아내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 

“해외원정 경기가 많아 아내와 아이들을 많이 외롭게 했지요. 심지어는 출·입국할 때 아내가 공항으로 애들을 데리고 나와 겨우 만나기도 했답니다.” 생각만큼 자상한 아빠가 아니어서 지금도 딸들에게 미안하다는 그는 “오는 5월 가정의 달에는 여성팀, 노숙인팀, 장애인팀 등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며 축구에 대한 못 말리는 열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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