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연말마다 돈다발 남겨둬
전북 전주시 덕진구 노송동. 전주시청사 인근이지만 구시가지로 개발과는 적잖이 거리가 있는 곳이다. 전주시내에서 기초생활보장 가구(626가구)가 세번째로 많은 곳이다. 지난 2000년 4월 초등학생 손에 58만402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맡겨 주민센터에 기부한 후 11년째 연말만 되면 수천만원을 기부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기부금액만 1억9720만원에 이른다. 노송동 차상위 계층까지 1401가구에 연말에 10~30만원씩 지원하는 기금이 됐다. 수화기 너머로 돈을 놓은 장소만 알려주고 끊는 바람에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른다. 그저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로 불린다.
그가 올해도 다녀갔다. 28일 오전 11시55분 쯤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가 걸려왔다. 올해 공무원이 된 주민등록 담당 심야은(9급·27)씨가 받았다. "해마다 성의표시를 하는 게 있는데 주민센터 건너편 미용실 옆 골목 화단에 A4용지 박스가 있으니 확인해보라"는 말만 남기고 끊었다. 심씨는 "미용실 이야기를 하길래 길을 물어보는 전화인 줄 알았는데 A4 박스 이야기를 듣고 그분 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해에도 같은 날·같은 시에 A4 박스에 8000여만원을 놓고 사라져 주민센터 직원들은 ''전화=A4 박스=천사''라고 직감한다.
서둘러 달려간 직원들이 들고 온 박스안에는 지폐와 동전 3584만9000원이 들어 있었다. 한일수 노송동장은 "시민들을 대신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소중하게 사용하겠다"라고 말했다.
전주시는 지난해 노송동 주민센터 앞 도로를 ''얼굴 없는 천사의 길''로 이름 짓고 올 1월엔 주민센터 화단에 기념비를 세웠다. 천사의 얼굴을 찾는 대신 고귀한 정신과 마음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담은 글도 세겨 넣었다.
전주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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