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박경리 선생의 타계를 슬퍼하며 “당신은 나의 친정어머니였다”고 오열하던 소설가 박완서 씨가 지난 1월 22일 새벽 향년 8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박경리문학공원에서는 누구보다 생전의 박경리 선생과 각별했던 박완서 작가의 명복을 빌면서「박경리문학의집」입구에 추모현수막을 걸고 고인을 잃은 슬픔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얼룩진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써내려갔던 박완서 선생과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정을 나눈 세월은 세상에 알려진 그 이상이다. 박완서 선생은 소설 ‘토지’가 쓰여지고 완성된 원주 단구동 옛집의 단골손님이었으며, 이후 박경리 선생이 흥업 토지문화관으로 이사 한 이후에도 자주 들르며 돈독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단구동 옛집은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가 죽을 것만큼 괴로웠다고 고백하던 그 시절 (88년 남편과 아들을 잇달아 여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 때), ‘박경리 선생님이 손수 해준 따슨 밥과 직접 텃밭에서 키운 배추로 끓인 배추속댓국이 가장 위로가 되었다’고 기억하던 한과 통곡과 치유의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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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공원에서는 누구보다 생전의 박경리 선생과 각별했던 박완서 작가의 명복을 빌면서「박경리문학의집」입구에 추모현수막을 걸고 고인을 잃은 슬픔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얼룩진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써내려갔던 박완서 선생과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정을 나눈 세월은 세상에 알려진 그 이상이다. 박완서 선생은 소설 ‘토지’가 쓰여지고 완성된 원주 단구동 옛집의 단골손님이었으며, 이후 박경리 선생이 흥업 토지문화관으로 이사 한 이후에도 자주 들르며 돈독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단구동 옛집은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가 죽을 것만큼 괴로웠다고 고백하던 그 시절 (88년 남편과 아들을 잇달아 여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 때), ‘박경리 선생님이 손수 해준 따슨 밥과 직접 텃밭에서 키운 배추로 끓인 배추속댓국이 가장 위로가 되었다’고 기억하던 한과 통곡과 치유의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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