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존댓말 쓰지 말래요”

반말은 평등 언어다?

지역내일 2011-01-27
7~8년 전 일부 대학가에서 선후배 간 평등 관계 유지 명목으로 ‘반말 쓰기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때를 같이해 일부 시민 단체도 직급과 상관없이 반말을 쓰기도 했다. 이들의 반말 쓰기 출발은 예의 바른 사람보다는 개성이 중요하고, 권위보다는 평등이 우선이라는 목적이 강했기 때문. 공동육아에서 반말 사용도 이와 같은 맥락. 꿀벌어린이집 조용순 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선생님을 까마귀, 나비, 호랑이로 불러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까마귀야, 이 책 좀 읽어줄래?’라고 반말을 사용하죠.”
공동육아에서 반말 사용은 일반적이라고. 어른과 아이가 평등한 관계에 놓일 때 자신의 생각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조 원장의 주장이다. 단 ‘야’ ‘너’와 같이 보통 아랫사람에게 하는 반말 사용은 절대 금물. 동등한 관계에서 편하게 주고받는 반말 사용이 원칙이라고.
“주변에서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요. 하지만 6~7세가 되면 어른에게 깍듯하게 예를 갖추죠. 어릴 때부터 평등한 관계에서 자란 아이가 권위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독립적으로 자랄 수 있거든요.”
조 원장은 사회규범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말의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가르치는 것이 무조건 존댓말을 강요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부러 존댓말 사용을 금지하는 가정도 있다. 박준범(37·서울 송파구 삼전동)씨는 아들(9)에게 반말을 권하는 케이스.
“아이가 평소에는 편하게 반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잘못한 일만 생기면 존댓말을 써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머뭇거리면서 무조건 죄송하다는 겁니다.”
박씨는 일관성 없는 존댓말 사용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반말 사용이 평등한 언어라는 생각에 한 표를 던진다.

그래도 존댓말의 힘은 크다!
문제는 아이가 가정을 떠난 장소에서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과 맞닥뜨렸을 때다. 최지수(39·서울 강동구 성내동)씨는 “아이가 집에서 하던 대로 다른 어른에게 반말을 사용해 당황한 적이 많다”고 전한다. “아저씨, 이거 먹어요. 나 이거 보여줘요” 등이 그것. 반말과 존댓말의 어설픈 조합이 낳은 결과. 다급한 마음에 존댓말을 가르쳐보지만, 반말이 몸에 밴 아이는 쉽게 바꾸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존댓말 교육이 어른의 입장에서 쓰는 권위적인 어법이라고 생각한 것을 후회한단다.
이에 대해 중앙대 유아교육과 이원영 명예교수는 “존댓말에 대한 정의와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댓말이 수직 관계에서 사용하는 권위적인 어법이 아닌, 상대방을 높임으로써 나를 높이는 경어”라는 것. ‘지하철 반말녀’의 언행은 반말 그 자체가 아닌, 태도와 행동에서 문제점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성품이 반말로 표출됐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 이 교수는 존댓말이냐 반말이냐 하는 이분법적 접근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한다.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수평적 관계며, 상대를 존중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각에서는 존댓말을 수직적 언어라 치부하는데, 이는 존댓말을 일방에게만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수평적 관계라도 존댓말의 힘은 커요. 단 상호 사용이 원칙이죠. 특히 어른이 아이에게 존댓말을 사용할 때 아이들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존대 받고 자란 아이들은 성장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남을 존중하는 아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반말은 아무래도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소지가 높은 데 반해, 존댓말은 감정의 거름 장치를 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 존댓말 자체가 상대를 배려하는 말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존댓말을 사용했다면 지하철 반말녀의 무례함도 없었을 것이라고. 실제로 존댓말의 장점을 교육 현장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신당초등학교와 장월초등학교 등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학교 폭력이나 왕따 등의 사례가 현저히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

존댓말 교육, 이미 늦었다?
쌍방 존댓말 사용이 포인트
결론적으로 존댓말의 힘은 실로 크다. 불같은 부부 싸움도 존댓말이라면 미지근하게 끝낼 수 있고, 자녀에게 던진 촌철살인의 야단도 객관적 지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평생 써온 말버릇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
“가장 좋은 방법은 부부가 존댓말을 쓰는 것이죠. 그 사이에서 자란 아이는 교육이 필요 없고요.” 이 교수는 지레 어렵다고 표기할 필요가 없다고 전한다. 자녀가 몇 살이든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된다고.
“극존칭을 쓸 필요 없어요. 남편에게 ‘자기야, 밥 먹어’라고 했다면 ‘여보, 식사하세요’라고 말하고, ‘이것 좀 도와줘’라고 했다면 ‘도와주세요’라고 바꾸면 그만이죠.”
유아에서 초등 저학년이라면 그때그때 바로잡아주는 방법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할머니 이거 줘”라고 말했다면 “주세요”라고 바로잡는 것. 초등 고학년 이상이라면 존댓말의 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스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도움말 이원영 명예교수(중앙대 유아교육과)
·조용순 원장(꿀벌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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