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지만의 무한한 매력 닥종이 인형으로 세계에 알리고 싶어
과학의 발달로 늘어난 노년, 하지만 준비하지 않은 노년은 정말 힘든 시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열심히 일만 해온 우리의 가장들 중에는 문득 찾아온 정년에 이어진 준비 없는 노년을 맞아 힘들어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정년퇴직 이후 어느 누구보다 즐겁고 활기찬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보내고 있는 박창우 (61,화곡동) 닥종이 공예가, 양천구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박선생이 우연찮게 접한 닥종이 인형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목1동으로 출장을 나갔다가 닥종이 인형 강좌 선생님께서 인형 만드시는 걸 보았는데 너무 좋아 보였어요”라는 박창우 선생은 고향 같은 편안한 느낌의 한지와의 인연은 2004년 시작 되어 이제 8년, 각종 닥종이 공모전에서 대상 특상 등 이름 있는 큰상을 수상하며 인정받는 닥종이 공예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이 가고 할수록 재밌던 닥종이 공예
“정말 칭찬의 힘은 대단한 거 같아요. 그때 강경자 선생님께서 너무 잘 만들었다고 깜짝 놀라시며 칭찬이 이어졌는데 그때의 칭찬이 제가 닥종이 공예가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거죠”라는 박창우 닥종이 공예가는 목1동에서 처음 본 닥종이 인형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인사동에서 재료를 사다가 강선생이 설명해준 데로 만들며 독학으로 열심히 닥종이 인형을 만들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했던가, 닥종이 공예에 대한 박선생의 특별한 사랑을 알았는지 다음 발령지는 바로 목1동, 그간 혼자 만든 최초의 작품을 본 강선생의 칭찬과 격려는 그가 닥종이 공예가의 길을 가는데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얇은 한지를 한 겹 한 겹 붙이고 말리는 정성스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탄생되는 닥종이 인형, 한겹한겹 작가의 정성스런 손길이 담겨서인지 보면 볼수록 정겨움이 묻어나는 닥종이 공예에 매료 된 박선생은 닥종이 작품을 두달 만에 혼자서 만들었다. 한지가 주는 순순하고 어머니 품속 같은 포근함이 좋았던 박선생은 칭찬의 힘으로 자신감이 생겼고 그 후 더 열심히 닥종이 인형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신정1동에서 닥종이 공예 강사인 이경자 선생이하 그녀의 수강생들을 만나며 좀 더 본격적인 닥종이 공예가로서의 활동이 이어졌다. 직장생활을 하던 박선생은 이선생의 강의에 참가 할 수는 없었지만 가끔 이지만 이들과 교류하며 첫 공모전에도 출품하게 된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많이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회화를 전공하신 이선생님께는 작품의 구도를 잡는 법을 확실히 배웠고 회원들의 조언은 저희 작품이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라는 박선생은 이시기에 한지공예대전에 참가하기 시작하는데, 그의 닥종이 공예가로서의 타고난 재질은 이때부터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닥종이 공예가로서의 제2의 삶, 도전과 행복
2006년 9월 대한민국한지대전에 박선생의 ‘씨름’ 작품의 입선을 시작으로 제1회 크라운 해태제과 닥종이 인형공모전입선(2006년), 제12회 전국한지공예대전 입선?제7회 대한민국한지대전 입선(2007년)등 계속 일년에 4,5개의 상을 수상하여 지금껏 모두 20개의 상을 수상하였다.
“처음 대회에 나갔을 때 상을 타긴 했지만 그 대회에 나온 전문가들의 다양한 닥종이 인형들은 저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고 캄캄한 세상에서 빛을 본 것 같은 기분 이었어요”라는 박선생은 상을 탔다는 자신감보다는 자신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
2008년 6월 그의 공직생활은 끝이 났고, 정년퇴직과 함께 닥종이 공예가로서의 전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목동 월촌 초등학교 건너편에 창우& 닥종이란 공방을 마련하고 집중적으로 닥종이 공예에 몰입한 박선생은 수원화성 종이공예공모전에서 대상(2008,9)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박선생은 보다 큰 비전을 위해 새롭게 닥종이 공예 기초부터 다시배우기로 결심하고 강남 문화원에서 강의하는 닥종이 전문가인 박순애 선생을 찾아간다. 이때 박작가는 다시한번 닥종이 인형의 참 맛을 절실하게 느끼고 배우는 값진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제가 만든 작품에 자긍심을 가졌었는데 그 자긍심은 순간 창피함으로 느껴졌습니”라고 그때의 기분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박선생은 기초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이곳 스승인 박선생은 처음 만났던 강선생처럼 ‘참 빨리 받아 들인다’고 격려를 해주었고, 박선생은 목동에서 강남까지 닥종이 공예를 배우며 힘든줄도 모르고 밤늦도록 공방에서 배운 것을 열심히 익혔다.
제2의 인생 열어준 한지에 감사, 남은 시간 더 열심히
작품에 필요한 다양한 색감을 얻기 위해 직접 닥종이 물을 들이고, 작품에 필요한 소품을 직접 고증하며 정성껏 만든 그의 노력은 각종대회에서 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2009년 제10회 대한민국한지대전 특선2점과 특별상 2010.11 제 5회 크라운?해태 닥종이 공모전 은상, 특선 등을 수상하였다. 특히 우리 한복의 아름다운과 우리 춤을 소재로 한 ‘살풀이’는 일본에 미노시 한지테마파크에 초청 전시중이며, 작품 ‘삶’은 제주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박선생의 대회 출품작들을 본 동료작가들은 ‘출품할 때마다 작품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는 칭찬이 이어지는데, 물론 박선생의 노력이 제일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농촌에서 자라며 겪은 다양한 체험도 한몫을 하고 있단다.
“작품에는 농기구나 옛날 소품들도 등장하는데 시골에서 자라서 각종 소품들을 직접보고 써 보았기 때문에 소품들을 더 리얼하게 만들 수 있고, 옛 추억의 정서를 다양한 소품들로 더 잘 표현 할 수 있는 거죠”라는 박선생은 “우리 한지는 우리 한국을 나타내는데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게는 우리 한지가 가진 무한한 매력을 닥종인 인형으로 세계에 알리고 싶고, 올해는 환갑 기념으로 개인전을 열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지금도 야생의 꽃이나 풀들을 따와 한지 물을 들이며 자연스런 한지색을 만드는 등 진짜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려는 노력을 항상 진행 중인 박창우 닥종이 공예가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열심히 그리고 즐거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희경 리포터 yihk60@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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