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브레이브 하트’, ‘킹덤 오브 헤븐’ 등 평소 고대와 중세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대작들에 관심이 많아 지난 1월 13일 개봉한 영화 ‘시즌 오브 더 위치-마녀호송단’을 개봉 전부터 관심을 갖고 기다렸다. 액션 판타지라는 장르 속에 십자군, 흑사병, 마녀사냥 등의 역사적 배경 요소들을 어떻게 스토리로 담아낼지 궁금했다. ‘킹덤 오브 헤븐’의 역사적 액션 요소와 ‘반지의 제왕’의 철학적 판타지 요소가 결합된 대작을 기대해서 그런지 화려한 캐스팅과 긴장감 넘치는 장면 연출에 비해 전달력이 약한 스토리는 약간의 실망으로 다가왔다.
사회 혼란 속의 정치적 희생양 ‘마녀’
중세 서양의 정신적인 기둥은 크리스트교였다. 현재의 크리스트교는 남녀 모두 신의 창조물로 존중을 받지만 중세 서양의 크리스트교에서는 여성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왜곡되어 있었다. 하와(이브)의 원죄를 근거로 당시 교회와 남성들은 유혹을 일삼는 여성을 악한 존재로 여겨 지배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마녀’는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서 생겨난 비현실적인 희생양이다.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생겨난 마녀사냥은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더욱 확대된다. 전쟁의 실패로 인해 불만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권력을 가진 특권층은 사회적인 혼란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특히 노파나 혼자 사는 과부 등 힘없는 여성이 주로 희생양이 되었다.
영화 ‘시즌 오브 더 위치’는 십자군 시대의 치열했던 전투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전투에 참가해 이단자를 가혹하게 처단하는 기사 베이맨(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힘없는 부녀자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품고 전우 펠슨(론 펄먼 분)과 함께 탈영한다. 당시 이런 행동은 절대적 권력인 신에 대한 도전인 셈이었다. 한 달 동안의 유랑 끝에 돌아온 유럽의 마을은 흑사병이 창궐한 저주받은 곳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겐 신의 저주로만 생각되었던 흑사병. 종교지도자인 권력층은 어떻게든 흑사병이라는 재앙에 대한 책임을 떠맡을 희생양이 필요했다. 결국 한 소녀가 마녀로 지목되고, 체포된 베이맨과 펠슨은 탈영죄에 대해 유리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는 추기경의 제안에 따라 마녀를 수도원까지 호송하게 된다.
‘암흑의 세계’에서 ‘지혜의 세계’로
베이맨과 펠슨, 사제 데벨자크, 흑사병으로 가족을 잃은 기사 엑크하트, 길 안내를 맡은 사기꾼 하가마, 기사가 되기 위해 쫓아온 복사 출신 청년 케이 등 6명으로 구성된 마녀호송단의 여정은 잠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소녀에 대한 호송단 각자의 갈등 장면, 소녀의 탈출, 흔들리는 낡은 다리를 건너는 아슬아슬한 장면, 늑대의 공격을 받는 장면 등에서는 끊임없이 소녀가 과연 마녀인지 아닌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수도원은 이미 흑사병으로 초토화된 상태. 사제 데벨자크가 ‘솔로몬의 지혜’ 책자에 적힌 주문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소녀는 괴력을 발휘하며 악마로 변한다. 영화는 이 부분부터 본격적인 판타지의 세계로 접어든다. 치열한 싸움 끝에 악마는 몰아내지만 생존자는 젊은 케이와 악마가 빠져나간 소녀 뿐. 젊은 기사 케이는 ‘솔로몬의 지혜’를 가지고 소녀와 함께 흑사병과 마녀가 사라진 세상을 향해 떠난다.
서유럽의 중세는 ‘암흑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문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무지가 지배하던 세계였다. 당시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책을 필사하는 일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렵게 만들어진 책 속의 지혜가 일반 대중들에게 전달되지는 못했다. 당시는 이처럼 무지가 지배하는 세계였기에 힘없는 여성이나, 유태인 등 사회적인 약자를 마녀로 몰아가는 지배논리가 가능했을 것이다. 젊은 기사가 지니고 떠나는 ‘지혜의 책’은 아마도 세상을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혜의 상징은 아닐까?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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