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상속 부모부양에 대한 속마음을 말하다

왜 내가 부모님을 모셔? 부모 빚 갚는 것도 벅찬데…

지역내일 2011-01-22
 민족 최대의 명절 설. 전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살가운 정을 나눈다. 오랜만에 얼굴을 대하는 부모·형제자매들과 바쁜 일상으로 미루어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옛날 추억에 젖기도 한다.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따스한 정을 나누고 위안을 얻는다. 명절은 이처럼 ‘가족애’를 느끼고 확인하는 자리다.
그러나 재산 상속이나 부모 모시기 등의 얘기가 대화의 주제로 등장하면 명절이 가족의 울타리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원수로 만들기도 한다.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속사정을 들어보면 재산상속이나 부모부양 문제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간에 갈등을 빚는 일이 적지 않다. 우리 삶속에서 재산상속과 부모부양 문제, 가족 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사례를 통해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인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1 대신 갚는 빚도 모자라 부모님까지 모시라고?
서 모씨는 명절이 다가오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생각만 해도 머리 복잡한 시댁 문제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시아버지가 경운기를 몰다 시아버지가 초등학생을 친 사고가 발생했다. 다리를 다친 아이의 부모는 치료비와 별도로 3000만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요구했고, 경제능력이 없는 시부모는 자식들에게 손을 벌렸다. 1000만원은 두 아들이 부모님을 위해 모아 둔 예비비로 마련했지만, 나머지 2000만원은 각 집 당 1000여 만원씩 따로 부담을 해야 했다. 서씨는 남편의 빠듯한 월급으론 일시금을 마련할 수 없어 은행 대출을 받았고, 현재 월 30여 만원씩 이자와 함께 갚아 나가고 있다. 이뿐 아니라 매월 30만원씩 생활비도 몇 년째 보내고 있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 경제능력도 없고 두 분 다 병원에 자주 입원할 정도로 병치레를 하신다. 그 비용 역시 자식들 몫이다.
매달 시댁과 관련해 지출하는 돈이 60여 만원, 아이들 학비, 생활비 등을 제하면 적금불입은 꿈도 못 꾼다. 신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형님이 좀 더 부담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말도 못꺼낸다. 금전적 부담보다 더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다.
인간의 도리나 정을 생각하면 옆에서 보살펴 드려야 하지만 같이 살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난 둘째 며느리 아닌가. 그런데 서씨가 걱정하는 문제는 시어머니와 형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거다. 형님은 명절에도 아프다거나 아이들 공부를 핑계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러니 시어머니는 물론 나하고도 데면데면하다. 시어머님은 가끔 우리 집에 오시거나 명절에 내려가면 ‘난 둘째 니가 더 편하다’라는 말을 하는데 같이 살자고 할까봐 정말 겁난다. 남편은 연로하시고 자주 병치레를 하는 시부모님을 내가 모셨으면 하는 눈치다. 서씨는 “맏며느리도 안하는 데 내가 왜 해? 절대 모실 수 없다”면서 차라리 요양원에 모시자고 했다. 서씨는 “이번 설엔 부모님 모시는 문제를 상의 할 텐데 예전보다 더 마음 불편한 명절이 될 것 같다”며 한숨을 내 쉰다.


#2 차라리 못된 며느리로 남고 싶어
박 모씨는 10년 넘게 시댁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명절날 시댁에 들어서자마자 ‘언제 집에 가나’ 라는 생각뿐이다.
팔십이 넘어서도 마냥 공주처럼 사는 홀시어머니, 시동생과 얽힌 금전적 문제, 맏며느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형님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풍족하게 생활했던 어머니는 지금도 공주처럼 생활하기를 원한다. 좋은 옷과 먹거리, 게다가 기능성 화장품까지 원하지만 문제는 스스로 경제적 해결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평생 편안하게 지낼 유산이 있었지만 자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국 실패 했고 큰 빚만 남겼다. 남은 건 어머님 명의로 된 집 한 채. 처분해 빚을 갚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 돈으로 빚을 다 갚을 수도 없고, ‘누가 어머니를 모실거냐’라는 말에 결국 빚을 세형제가 나눠 갚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자식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생활을 한다.
박 씨가 힘든 건 경제적인 부담보다도 어머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남편의 반응이다. 시동생은 사업을 시작할 때 박씨의 남편이 보증을 서서 억대의 사업자금 대출을 받았다. 시동생은 다행히 사업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시동생이 이핑계 저핑계로 돈을 갚지 않는 것이다. 박씨 부부의 통장은 시어머니 빚과 시동생의 빚을 갚느라 늘 마이너스다.
돈 문제 때문에 관계가 틀어져 남편과 시동생은 얼굴을 보지 않고 지낸다.
그런데 자식들의 문제를 중재해야 할 시어머니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암묵적으로 시동생편을 들고 있다.
더 기가 막힌 건 셋 중 가장 부모님께 잘하는 남편이 박씨에게 어머니를 모시자고 하는 것이다. 형님은 시집 올 때부터 며느리로 마땅치 않아 했던 시어머니의 구박을 참아가며 20여년간 모셨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손을 들고 분가 해 버렸다. 그 후론 명절 때도 찾아오지 않는다. 시동생은 어머니가 물심양면으로 가장 많이 도와줬지만 어머님 모시는 문제에는 ‘막내인 내가 왜?’라는 반응을 보인다. 박씨는 차라리 형님처럼 못된 며느리로 남고 싶지만 효자 남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3 아버지 명의로 된 아파트… 형제간 불화의 불씨
삼형제중 막내인 이 모(남)씨는 이번 명절에 형제들과 홀로 생활하는 아버지(90)와 재산에 대해 상의할 생각이다. 재산과 아버지 모시는 문제가 불거진 건 1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부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며칠 후에 맞은 추석날, 둘째 형이 아버지 모시는 문제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어떻게 할거냐는 말을 꺼냈다. 이씨는 깜짝 놀랐다. 사실 그 아파트는 부모님 명의만 빌렸을 뿐 이씨 소유였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 앞에서 이씨의 소유임을 확인시켰지만 둘째 형은 아버지가 이씨 입장을 생각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를 모실 테니 각 집에서 30만원씩 보내라던 둘째 형은 동생과는 인연을 끊겠다며 그 이후로 전화도 받지 않는다. 물론 아버지도 모셔가지 않았다. 첫째 형도 아파트 건에 대해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100% 믿어주는 눈치는 아니다. 세금 문제 때문에 아버지의 명의를 빌린 일이 형제의 인연을 끊는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서울에서 건물임대사업을 하는 첫째 형 역시 아버지 모시기를 거절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에서 생활한 탓에 정이 없는 데다 형수가 몸이 아파 모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이씨 부부가 1주일에 몇 번씩 아버지 집을 드나들며 돌봐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 달 전 아버지가 폐렴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대·소변을 스스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첫째 형과 상의 끝에 요양원에 보내자고 결론을 내렸다. 비용은 아버지 통장에서 인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요양원을 결정하는데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씨는 그동안 20년 가까이 아버지를 곁에서 돌봤으니 요양원은 서울로 정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형은 서울과 대전의 중간지점인 천안으로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형의 이기적인 태도에 할 말을 잃고 대전의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입원시켰다. 아버지 모시는 문제는 이씨의 양보로 일단락 됐지만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는 아파트가 문제로 남아있다. 명의를 변경하려면 첫째형과 둘째형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번 명절에 만나 얘기를 꺼낼 생각이지만 의심을 풀지 않은 첫째형, 연락조차 되지 않는 둘째형과 이야기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 할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 많다.

#4 아들만 자식이야? 딸도 자식이라고요
한 모씨는 1남 3녀중 막내딸이다. 설을 지내고 나면 항상 한씨의 친정집에 가족이 모두 모인다. 겉으로는 웃고 떠들지만 마음속은 재산 상속문제로 ‘속앓이’를 한다.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해 몇십억대에 달하는 재산을 오빠에게만 나눠주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실제로 생전에 재산의 일부를 아들과 손자들에게까지 상속했다. 딸들에게는 정말 한 푼도 주지 않으셨다. 나머지는 친정엄마 몫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큰 딸이 ‘재산 문제로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해 아직은 재산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씨를 포함한 세 딸은 평소에 아들보다 더 자주 부모님을 찾았고 병원에 입원하면 교대로 간호를 할 정도로 효심도 지극하다.
한씨는 홀로 생활하는 친정엄마의 마음이 다칠까 싶어 참고 있지만 ‘딸도 자식인데. 또 아들 못지않게 부모님에게 정성을 다했는데’ 라는 생각에 아버지의 결정이 너무 서운하다.
언니는 재산 문제로 싸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한씨와 둘째 언니의 생각은 다르다. 법적으로도 딸들에게도 상속 권한이 있으니 나중에라도 자신의 몫은 찾겠다는 것이다. 한씨는 이번 명절엔 재산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친정엄마와 오빠에게도 넌지시 이야기를 던져볼 생각이다.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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