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이 털을 곧추세우고, 벌레가 몸의 색깔을 변화시키고, 새들이 여러 가지 소리를 내고, 식물들이 특이한 향을 내뿜는 것은 모두 소통 행위이다.
인간의 소통 방식은 훨씬 다차원적이다. 사람들은 말의 내용만이 아니라 목소리의 크기나 높낮이는 물론 눈초리, 표정, 태도, 제스처 등 여러 행동거지들을 총동원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소통하려고 애쓴다. 유독 이런 과업에서 동떨어져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알코올의존인 사람들이 그렇다.
알코올 의존인 경우 술기운이 없으면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술을 한 잔이라도 걸치지 않으면 극도로 말하기를 싫어한다. 실제로는 말 꺼내기를 너무 어려워하는 것이다. 알코올의존인 어떤 농사꾼은 하루 종일 꼭 세 마디 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들일을 나가서는 “점심 먹을까”, “참 줘”, “이만 들어가지.” 문제는 한 마디 불평 않고 같이 살아가던 부인도 어느덧 과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과음의 당사자와 가족들 사이에는 특히 소통의 문제가 많다. 가족들이 도와주려고 하건만,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과음하는 과묵한 사람들은 불쑥 무어라고 툭 내뱉기 일쑤인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다시 묻고 싶어도 한마디 잘못 건넸다가 혼쭐이 나므로 대충 짐작하고 넘어가버리는 식의 소통을 한다. 이런 것이 누적되다보면 점점 상대를 모르게 된다. 아무리 도와주려고 애를 써도 그 사람의 숨겨진 욕구인 진심을 모르는 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 또한 자신을 도와주려하는 배우자나 식구들에 대하여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상대의 의사를 독단적으로 판단하곤 혼자 기분 나빠하고 화내는 수가 많다. 이 모든 것이 불통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원인은 과음이다.
과음 문제가 있는 사람이 특히 가장이라면, 가족들 간에 격의 없는 소통이 더 어렵다. 이때 배우자가 본디 마음이 약해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 문제다. 건드리기를 겁내 단지 눈치로만 알아차려 적당히 순간만 넘기려 한다. 그러는 사이에 가장 보편적인 소통 수단인 말이 이 집안에서는 오로지 고함이나 욕설 아니면 비명이고,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 신랄한 지적과 비난뿐이다. 그래서 이 집안에서는 모두 가능한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러는 동안 자녀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일상사가 되어버린다는 점이 가장 슬픈 일이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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