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리♪~ 띠리리♪~”
초겨울이 되면 대치동에 사는 주부 Y씨는 전화벨 소리에 민감해진다. 시어머니의 김장 호출이 언제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시~, “X월 X일에 김장할거니까 잊지 말고 김치통 들고 일찌감치 와라”라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니의 목소리, 매년 있는 일이지만 Y씨가 이처럼 긴장하는 이유는 ‘김장의 양’에 있다.
Y씨의 시어머니는 평소 아들과 출가한 두 딸의 김치를 도맡아 해주신다. 평소에는 미리 김치를 담가놓고 명절이나 기념일 등에 집에 들르면 한 통씩 주시지만, 김장을 할 때는 며느리와 두 딸을 호출한다. 이렇게 모여서 한꺼번에 네 집 김장을 하다 보니 그 양은 100포기에 달한다. 함께 한다고는 하지만 눈치껏 요령을 피울 수 없는 것이 며느리 입장이고 보니 Y씨는 시댁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김장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는 절인 배추를 사서 하니 그나마 손이 많이 줄었다.
올해도 11월 중순 경에 김장을 위해 온 가족이 뭉쳤다. 미리 걱정하는 아내가 안타까운지 평일인데도 Y씨의 남편이 휴가를 내 함께 갔다. 김치에 들어갈 여러 재료들은 시어머니께서 미리 손질해 준비해 두셨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김장의 절반은 해결한 것이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속을 버무리고, Y씨는 두 시누이와 열심히 배추 속을 넣었다. 배추 속을 넣으며 수다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깔끔한 시어머니가 “얘들아, 그만 좀 해라. 김치에 침 튄다. 내가 이웃 아줌마들 안 부르는 이유가 수다스러워서인데 너희가 더 한다”라고 한 말씀 하신다. 올해로 17년차 며느리다보니 Y씨는 시어머니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치 속 넣으며 수다 떠는 것이 김장의 재민데요”라고 말대답하는 배짱도 생겼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어느새 100포기 김장이 끝난다. 중간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점심으로 먹는 돼지보쌈과 소주 한잔도 김장 가족행사의 맛이다.
Y씨는 김장이 부담은 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김장을 통해 가족의 끈끈한 결속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으신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차 트렁크에 가득 실은 김치통 만큼이나 Y씨의 마음도 뿌듯하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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