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의 향기 속에서 찾은 보람과 행복
일요일 오전 암사동 선사유적지. 제법 추운 날인데도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을 비롯해 몽촌토성, 경복궁, 종묘, 서대문독립공원 등 서울시내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 역사해설전문 강사들이 어린이들에게 유적지와 관련된 역사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다 재미나고 실감나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체험 중심의 역사교육을 진행하는 전문 교육기관이 많아지면서 역사해설전문 강사들의 활약 또한 눈에 띄게 돋보이고 있다. 전업주부에서 역사해설전문 강사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희정강사(43세, 목동 거주)의 행복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결혼, 육아, 퇴직, 전업주부 그리고 재취업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신석기시대 유적지로, 당시 움집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여러 석기와 빗살무늬토기를 직접 보면서 선사시대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동갑내기 사회탐구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희정강사. 김강사는 역사해설전문 강사로, 또래 친구들끼리 팀을 만들어 수업을 요청하는 동갑내기 사회탐구팀 수업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현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함께 하는 휴일은 반납한 지 오래다.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는데 93년 결혼해 현재 중2 아들과 중1 딸을 두고 있는 주부 김희정이 아닌 역사해설전문 강사로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의류회사에 취업해, 재무팀에서 일을 했다는 김강사는 출산 후 아이를 키워주시겠다는 친정어머니 덕분에 무리 없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멀리 광주 친정까지 아이를 맡기고 2주에 한번 씩 찾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큰 아이 6살, 작은 아이 5살 때 고심 끝에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어요.” 해가 갈수록 아이들이 보고 싶고 헤어질 때의 안타까움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직장이었지만 과감하게 그만두었다고. 더군다나 10년 넘게 같은 직종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미련이 없기도 했단다.
퇴직 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지만 큰아이가 초등 2학년 무렵 서서히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한 학기를 다니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문화역사체험강사 양성과정 광고를 보게 되었다. “제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죠. 그땐 취업으로까지 이어질 지는 생각도 못했어요.” 여성인력개발센터 7개월 과정을 이수하던 중 센터에서 취업으로 연결되도록 다리를 놓아준 것이 계기가 되어 일을 갖게 되었다.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주말에 일을 하고 주중엔 자유 시간이라서 무리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물론 남편이 아이들을 잘 챙겨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4년 9월부터 3개월간 수습을 마치고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700원 기행이라고 해서 몽촌토성을 나가는 수업이 제 첫 수업이었는데 선배강사 두 분이 동행해주셨어요.” 첫 수업이라 긴장한 탓에 열심히 준비해간 만큼 설명을 다하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김희정강사.
말수 적고 내성적인 성격에서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제가 워낙 남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젠 남 앞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수업 준비에 열중하느라 첫 1년을 힘들게 보내고 난 후 그 후론 수업의 질을 높이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책임감이 강한 그녀는 일단 시작한 일이기에 제대로 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2시간 수업을 위해 일주일 이상 공부하고 준비했단다.
“예전엔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역사 강사로 2박3일 혹은 3박4일 일정을 함께 다니기도 했었어요. 가족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녀는 능력을 인정받아 현재 회사에서 신입강사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인력개발센터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또 최근엔 지중해 등 외국기행도 진행하기 때문에 그리스 터키 이집트의 역사 등 세계사까지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있다.
“처음엔 그저 배운 것을 활용하자는 의미로 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지만 이젠 일도 많아지고 사명감도 커요.” 특히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자신을 통해 역사를 배우기 때문에 책임감과 보람도 크단다. 또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제 아이들을 돌아볼 수 있더군요.” 한번 결성된 동갑내기팀은 2년 일정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기 때문에 아이들과 정도 많이 든다고. “무엇보다 일을 통해 저를 이해하고 제 잠재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적성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성도 좋아졌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는 연습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그녀.
“가장 도움을 많이 주고 격려해준 남편이 이 일을 하면서 제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좋아해요. 아이들 역시 엄마가 똑똑하다고 좋다네요. 아이들 질문에도 척척, TV퀴즈 문제도 척척 맞추는 엄마가 자랑스러운가 봐요.”
앞으로도 엄마 역할 잘하고 남편의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김강사.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지만 정신적인 가치와 보람이 크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진정한 ‘프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최수연리포터 somuz@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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