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예대전에서 대상 수상한 김영찬씨

지역내일 2010-11-25

묵향의 침잠에서 얻은 고요한 휴식

지난 10월 광주에서 열린 전국서예대전에서 한문 서예부문 대상을 차지한 김영찬(66·김량장동)씨.
공무원으로 퇴직하기 전까지 서예와는 인연이 없었다던 김 씨. 다만 아버지가 명필로 유명세를 탈만큼 주변에 인정을 받아왔던 터. 그렇게 글 솜씨를 어느 정도 물려받았나 싶은 게 전부인 그가 묵향을 맡기 시작한지 5년 만에 얻은 보배와 같은 결과다.
그러나 작업실 한편에 켜켜이 쌓인 서체 연습 종이와 5년간 써왔다던 28권의 한자 노트를 통해 단순히 아버지의 영향만이 아닌 부단히 정진한 노력의 열매임을 엿볼 수 있었다.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가 퇴직 후 용인으로 올라와 서예에 꽂히기까지 그의 인생 파노라마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퇴직 후 무료함 달래기 위해 서예를 배우다
“예전엔 동네마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였어요. 요즘처럼 컴퓨터가 있길 하나, 공무원 세계에 흔히 있는 이·취임사나 상장 등을 직접 써야 했으니 글씨만 잘 써도 굉장한 대우를 받았지요.”
하지만 정작 그의 공무원 생활은 남들 잘 쓴 글씨를 오래도록 보려고 오려 두거나, 부러워했던 것이 전부.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오전엔 같이 놀아주고 오후 시간엔 뭔가를 배워야 할 것 같아 그때부터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서예공부가 정확히 2006년, 부산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오면서 본격적인 배움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자식들 가까이로 올라오게 된 것. 그 뒤로 서예를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일과의 전부를 차지할 만큼 오래도록 혼자만의 시간이 이어졌다.
“수지에 있는 서예학원에 등록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도시락 싸가지고 하루도 빠짐없이 2년을 다녔어요. 꼬박 하루 6시간을 서예에 몰입했던 시간이었죠.”
남들은 10년 넘게 걸릴 만한 배움을 2년 만에 해 낼 수 있었던 것도 밥 먹는 시간, 왔다 갔다 뭘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그렇게 무섭게 몰입한 결과였던 것.

‘진실불허’로 서예대상을 얻다
“우연히 서예대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6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광주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다른 대회와 달리 출품료가 따로 없더라고요. 작품 2점을 보내 보았죠.”
대수롭지 않게 응모한 대회는 총 출품작만 1736작, 한문 서예 부분에만 천 여 작품이 출품될 만큼 상당한 규모의 전국 대회. 특히나 날고 긴다는 전국의 문인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올해 8회 차를 맡는 공신력 있는 대회였던 것. 문인들 누구나 한 번 쯤 꿈꿔봤을 대상의 영예가 그에게 돌아온 순간의 소감을 묻자, 너무 놀라 뒤로 넘어갈 정도였다고.
“보통은 운영위원이나 심사위원들이 운영하는 학원이나 인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특히나 상금이 걸려있는 대회에선 그 상금이 멀리가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무 연고도 인맥도 없는 나에게 그런 큰 영예가 오게 된 걸 보면 어느 정도 대회의 공정성이 확보된 것 같아요. 하하하”
그가 대상을 받은 작품은 한문 서예 부문으로 반야심경의 한 부분, 진실된 것은 헛되지 않다는 뜻의 ‘진실불허’ 송곳 끝처럼 그의 가슴에 다가왔던 어구다.
“감히 설명할 도리조차 없는 깊은 뜻이 담긴 반야심경의 어구를 온 정과 성을 다해 옮겨 적고 끝에 낙관 자리까지 여백을 남긴 것이 점수를 받지 않았나 싶어요.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서체의 흐름을 보면 분위기나 느낌이 오죠. 그림을 못 그려도 미술관의 그림을 감상 할 수 있는 것 처럼요.”

서예는 고도의 정신활동, 마음 수련과도 같다
그렇게 대상을 받은 이후에도 김 씨는 서예 공부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는 서예공부에 매진하고 오후 5시부터는 테니스를 치러 나가는 일과를 반복하고 있다.
“너무 정적인 활동만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30년을 익혀온 테니스로 신체 단련도 부지런히 하고 있어요.”
테니스라면 전국대회에 나갈 만한 실력으로 몇 번의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던 친구 같은 스포츠다.
정(靜)과 동(動)이 어우러진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서체를 익히기 위해 책도 보고 다른 이의 잘 쓴 글은 따라서 써보기도 하고 집안 경조사에 글을 써서 보내는 등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요즘은 노인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저렴하게 서예를 배울 수 있어서 노인들 정서 함양에 굉장히 일조하고 있어요. 그렇게 배운 사람들의 실력이 해가 갈수록 높아짐을 저도 느낍니다.”
그는 현재 새로운 가정을 꾸려 편안하고 안정된 가운데서 서예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서예라는 것이 고도의 정신 활동입니다. 집안이 복잡하면 집중하기 어렵죠. 가족들이 마음 편하게 도와줘 제가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많이 고맙죠.”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그이의 작업실에서는 오래도록 은은한 묵향이 퍼져 나왔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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