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속초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검토해 해결하겠다. 기대해도 좋다.” “(원주-강릉간 복선전철은) 2018년 동계올림픽 이전에 완공되도록 추진하겠다.” “(평창동계올릭핌 유치와 관련) 세 번째 도전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1일 춘천을 방문한 자리에서 쏟아낸 말이다. 대통령이 지역숙원사업을 몽땅 해결해주겠다고 직접 나선 모양새다. 특정지역(강원)을 겨냥한 크리스마스 선물치곤 화려했다. 앞서 한나라당은 20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위를 구성했다.
여권이 강원민심 잡기에 나섰다. 여권이 특정지역을 겨냥한 정치행보에 나선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세종시 수정 논란으로 충청민심이 돌아선 것을 반면교사 삼았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사실 선물이 쏟아지기 전 강원민심은 심상치 않았다. 강원은 전통적인 여당 표밭으로 분류된다. 2007년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은 51.9%를 얻어 정동영 후보(18.8%)를 압도했다.
전국 평균을 훌쩍 앞서는 결과였다. 2002년 대선에서 패했던 이회창 후보도 강원에서만큼은 노무현 후보를 앞질렀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강원민심은 요동쳤다. 지난해 8월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에서 강력한 후보로 꼽혔던 원주가 탈락하고 대통령 출신 지역인 대구가 낙점을 받자 “정치논리가 작용했다”는 분노가 쏟아졌다.
이후 개각 과정에서 강원출신이 배제되면서 ‘무장관 무수석’ 상황이 초래되자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다. 특정 지역 출신 인사들의 약진 소식은 지역 소외감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민심 이반은 6월 지방선거에서 확인되기 시작했다. 여당의 압승이 예상됐지만 투표함을 열자 민주당 소속 도지사가 당선되고 야당 및 무소속 기초단체장이 8명이나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이 싹쓸이했다. 7월엔 국회의원 재보선이 치러진 3곳 가운데 2명을 민주당이 이겼다.
이 가운데 한나라당이 지난 8일 새해 예산안을 단독처리하면서 지역사업으로 약속했던 춘천-속초 고속철도 기본계획 용역비 30억 원이 누락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민심 이반은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 기세였다.
여권에선 “이대로 가면 강원도는 영원한 야도로 돌아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나왔다. 때마침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전 2년여 동안 춘천에 칩거한데 이어 대표 취임 뒤 첫 방문지로 평창을 택하면서 강원표심이 야당을 향할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한나라당 핵심관계자는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내년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재보선이나 2012년 총선, 대선에서 어려운 승부가 예상된다”고 토로했다. 현 민주당 이광재 지사의 정치자금법 위반혐의 재판은 대법원 판결만 앞두고 있다.
결국 이런 위기감이 여권의 강원도에 대한 ‘폭탄 구애’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춘천-속초 고속철 예비타당성 재검토 등은 철도 타당성 검토기준 자체의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는 의미도 있지만 강원민심을 돌려세우고자하는 정치적 판단이 함께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강원도에선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여권의 구애를 진심으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강원민심이 원하는 건 ‘특혜’가 아닌 정치 논리가 배제된 ‘균등한 지역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당장의 표를 의식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의 접근을 할 경우 자칫 더 큰 반발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 출신의 한 인사는 “강원은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대통령이) 자기 고향 챙기느라 강원이 사업과 인사에서 소외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며 “이런 때 정부가 민심을 껴안겠다는 진정성 없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으로 접근하면 또 한번 강원도민의 자존심을 건들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홍식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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