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인터뷰/ 여류조각가이자 석주문화재단의 윤영자(85) 이사장

사랑을 통한 억새의 인생이야기

석주문화재단 설립 후 후배 양성에 매진

지역내일 2010-12-26
미술평론가인 오광수 선생은 ‘윤영자의 예술’이라는 칼럼에서 그녀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태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부단한 각고와 주변의 아낌없는 성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예술가들이 주변의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보다는 자신의 절대적인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조각과 같은 일반적인 이해나 관심이 거의 없는 영역에 있어선 이 같은 상황은 더욱 심한 편이다. 따라서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나라 조각계에 과감히 뛰어든 여류조각가 윤영자의 평가는 일차적으로 이 같은 선구자적인 위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 조각예술의 출범
반포동 윤영자 이사장의 아파트는 마치 조각공원을 연상케 한다. 들어서는 입구의 작은 안마당에는 그의 조각?작품들이 군데군데 서있고, 문을 여는 순간에는 흡사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는 듯 착각에 빠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에 가는 수고를 들여야 만날 수 있는 그의 작품을 이렇게 한꺼번에, 그것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갑자기 묘한 감흥에 휩싸인다.?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나 예술가의 작품을 운 좋게 무료로 관람하게 되었을 때 뜻밖의 행운에 기쁘면서도 그러기에 더욱 경외감에 젖는 문화적 충만감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윤 이사장의 빨간 재킷이 너무나 곱다. “요즘 내년 4월에 출간할 회고록을 준비하느라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하루에 서너 시간씩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고 있답니다. 책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영원한 억새가 되리라>로 정해보았지요.” 그는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7년부터 윤효중 선생에게 사사했으며, 1949년 홍익대학교에 조소과가 창설되던 해에 입학한 미술 정규교육 1세대이다. 50년대 초 우리나라의 조각은 해방 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서 수학한 몇몇 조각가들이 들여온?로댕 이후의 근대조각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여인상과 모자상을 통한 사랑 만들기
그 당시, 서울에 몇몇 미술대학이 설립되고 조각을 전공하겠다는 학생들이 입학하면서 비로소 조각예술은 새로운 출범의 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화분야나 응용미술분야에 비해 조각 지망생의 수는 극히 적었다. 특히, 한국인에게 근대적 양식의 조각은 여전히 생소한 영역으로 인식돼 있었고, 더욱이 조각 지망생 가운데 여성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윤 이사장은 “회화 등에 비해 제작여건이 불리했던 조각분야를 여성이 시도했다는 것은 그 시대에는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조각예술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국전(1949~1981)에 출품하기 시작했고, 초지일관 국전을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끝에 특선 4회와 추천작가 추대 및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는 서라벌예대, 대전 목원대학교에서 수많은 후진들을 양성했으며 목원대학교 미술학부를 창설하여 궤도에 올려놓는 등 교육자로서의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주로 여인상과 모자상을 주제로 여성적인 볼륨과 리듬감을 살린 부드러운 형태의 조각을 고집했다. 남녀 간의 애정,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등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사랑이란 주제는 그의 전체적인 연대기 속에 가장 빈번히 등장한다.

여성 미술인의 힘, 석주미술상
그는 1989년에 정년퇴임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전액 희사하여 석주문화재단을 설립, 여성 미술인의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써오고 있다. 매년 회화, 입체, 공예, 평론 등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해온 여성 미술인을 선정해 석주미술상을 시상한다. 가족에 대해 물으니 일간지 기자였던 남편과의 짧은 결혼생활은 너무나 아득한 기억이어서 빛바랜 사진과 같다고 전한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을 원망할 새도 없이 생활을 책임지고 두 아이들을 키우느라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았다고. 

“제가 워낙 바빠서 아이들을 잘 보살피지 못했는데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주어 고맙지요. 아들은 이탈리아에서 결혼해 건축가로 일하고, 딸아이는 파리에서 공부했는데 그곳에서 결혼해 잘 살고 있다”면서 일 년이면 두세 번 모이고 손자들과 전화통화는 수시로 한다고 말했다. 우리 조각계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좋은 작가이자 동시에 좋은 교육자로 살았던 석주 윤영자 선생. 

“시간이 날 때면 용인에 있는 작업장에도 자주 들fms다”며 최근에 제작한 작품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진지함이 묻어났다. 윤 이사장과의 만남은 조각에 대한 집념과 사랑, 그리고 독창적인 그의 예술세계를 재삼 확인하는 귀한 자리였다.


사진 이창화 (스튜디오 ZIP)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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