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제작비로 중무장한 채 구성이면 구성, 영상이면 영상 손색없는 엔터테인먼트의 진수를 선보이는 뛰어난 영화들이 한주가 멀다하고 개봉되고, 크리스마스를 맞은 거리에는 루미나리에의 빛나는 아름다움이 넘쳐나고 있다. 이처럼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저렴한 비용으로 멋들어진 공연과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요즘, 나는 ‘올해를 넘기기 전엔 꼭 보리라’ 결심하며 오랫동안 생각만 해왔던 서커스공연을 보러 집을 나섰다. 날이 갈수록 빠르고 그리고 화려하게 변해가는 이 시대에 지금으로부터 85년 전 창단된 동춘서커스를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최초의 서커스단, 동춘
사실 1970년대 텔레비전 보급이 이뤄지기 전까지 동춘서커스는 우리나라 대중예술을 이끈 선구자였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신기에 가까운 무대를 선보이는 그들의 공연을 보기위해 여기저기에서 찾아온 관객들로 공연장은 미어터졌었다. 변변한 대중문화가 없었던 시절, 노래를 부르던 만담을 나누던 간에 연예인들이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찾아간 곳이 있었으니 바로 동춘서커스단이었다.
실제로 이제는 고인이 된 배삼룡, 서영춘, 이봉조, 이주일 등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인사들은 모두 동춘서커스를 거쳐 텔레비전으로 진출했으니 교두보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담당한 셈이다. 그렇게 잘나가다 보니, 그 시절에는 동춘말고도 여러 개의 서커스단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대중화되면서 엔터테인먼트 역시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성장을 거듭했지만 서커스만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했고 결국 대중들로부터 잊혀져간 존재가 되었다. 아직도 전국순회공연을 할 때면 대여한 장소가 가득 메워질 정도로 호응이 높긴 하지만 과천 경마공원 한편에서 펼쳐지는 상설공연은 관객이 없어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다행히 이날 공연은 단체관람이 예약되어서 객석이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하의 추위를 천막 하나로 막을 수 없었고 난로를 켜고 온풍기를 돌려보지만 역부족, 차가운 바닥에서 전해오는 냉기 때문에 공연에 몰입하기 보단 ‘언제 끝나나’하고 시계에 더 눈이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춘서커스는 경마공원에서 경기를 보고 난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따뜻하게 서커스를 볼 수 있는 4월부터 9월까지가 가장 인기가 높단다.
중국 남녀 곡예단이 선보이는 뛰어난 곡예
적어도 관객이 10명 이상은 모여야 공연이 이뤄지고 단체관람처럼 많은 이들이 찾아올 때 는 서너 가지 묘기를 더 보여준다. 주로 남자 중국곡예단들이 능숙한 솜씨로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 층을 쌓기도 하고 천막 천정에 닿을 만큼 긴 막대로 균형을 잡고 마치 평지 위를 걷듯 외줄을 오가는 곡예를 선보인다. 놀라운 곡예를 마치고 자부심이 가득한 미소를 담은 표정으로 객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또한, 예닐곱 명의 여자 곡예단도 수많은 연습을 거듭해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묘기를 일상생활처럼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런데 화장을 진하게 했지만 이들의 나이는 많아야 십대 후반 정도로 밖에 안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곡예단원들의 나이는 십대 초중반, 서커스의 특성상 유소년시절부터 배우지 않으면 익힐 수 없기 때문이란다.
기라성처럼 우뚝 서있는 수많은 입시학원을 오가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삶과 추운 겨울에도 얇은 서커스복 하나만 걸쳐 입고 피아노줄 하나에 온몸을 의지한 채 공중을 날고 접시를 돌리며 관객들의 박수에 감사하는 이들의 삶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세상이 서커스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박수진 리포터 icoco1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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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서커스단, 동춘
사실 1970년대 텔레비전 보급이 이뤄지기 전까지 동춘서커스는 우리나라 대중예술을 이끈 선구자였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신기에 가까운 무대를 선보이는 그들의 공연을 보기위해 여기저기에서 찾아온 관객들로 공연장은 미어터졌었다. 변변한 대중문화가 없었던 시절, 노래를 부르던 만담을 나누던 간에 연예인들이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찾아간 곳이 있었으니 바로 동춘서커스단이었다.
실제로 이제는 고인이 된 배삼룡, 서영춘, 이봉조, 이주일 등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인사들은 모두 동춘서커스를 거쳐 텔레비전으로 진출했으니 교두보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담당한 셈이다. 그렇게 잘나가다 보니, 그 시절에는 동춘말고도 여러 개의 서커스단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대중화되면서 엔터테인먼트 역시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성장을 거듭했지만 서커스만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했고 결국 대중들로부터 잊혀져간 존재가 되었다. 아직도 전국순회공연을 할 때면 대여한 장소가 가득 메워질 정도로 호응이 높긴 하지만 과천 경마공원 한편에서 펼쳐지는 상설공연은 관객이 없어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다행히 이날 공연은 단체관람이 예약되어서 객석이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하의 추위를 천막 하나로 막을 수 없었고 난로를 켜고 온풍기를 돌려보지만 역부족, 차가운 바닥에서 전해오는 냉기 때문에 공연에 몰입하기 보단 ‘언제 끝나나’하고 시계에 더 눈이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춘서커스는 경마공원에서 경기를 보고 난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따뜻하게 서커스를 볼 수 있는 4월부터 9월까지가 가장 인기가 높단다.
중국 남녀 곡예단이 선보이는 뛰어난 곡예
적어도 관객이 10명 이상은 모여야 공연이 이뤄지고 단체관람처럼 많은 이들이 찾아올 때 는 서너 가지 묘기를 더 보여준다. 주로 남자 중국곡예단들이 능숙한 솜씨로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 층을 쌓기도 하고 천막 천정에 닿을 만큼 긴 막대로 균형을 잡고 마치 평지 위를 걷듯 외줄을 오가는 곡예를 선보인다. 놀라운 곡예를 마치고 자부심이 가득한 미소를 담은 표정으로 객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또한, 예닐곱 명의 여자 곡예단도 수많은 연습을 거듭해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묘기를 일상생활처럼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런데 화장을 진하게 했지만 이들의 나이는 많아야 십대 후반 정도로 밖에 안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곡예단원들의 나이는 십대 초중반, 서커스의 특성상 유소년시절부터 배우지 않으면 익힐 수 없기 때문이란다.
기라성처럼 우뚝 서있는 수많은 입시학원을 오가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삶과 추운 겨울에도 얇은 서커스복 하나만 걸쳐 입고 피아노줄 하나에 온몸을 의지한 채 공중을 날고 접시를 돌리며 관객들의 박수에 감사하는 이들의 삶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세상이 서커스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박수진 리포터 icoco1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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