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비수기 극장가에 조용히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한국영화가 있다.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지난 14일 공식적인 집계로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고 한다. 유혈이 낭자하고, 폭력이 난무할 것 같은 이 영화를 벌써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보고 갔다고? 시몬이 어쩌고 하면서 일부러라도 고독을 즐겨야 할 것 같은 이 가을에 웬 액션영화바람인가 하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영화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극장을 찾았다.
탄탄한 스토리와 걸출한 연출력
역시 관객몰이에는 이유가 있었다. 잘 짜인 스토리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의 도시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정확했고, 비틀고 꼬집고 간간히 유머러스한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은 들고 들어간 팝콘마저 잊게 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류승범의 능글맞은 연기와 극중 배역과 분리가 안 될 정도로 몰입되어 있는 연기파 배우 황정민, 코믹했다 비열했다 하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유해진의 연기까지, 정상급 배우들의 연기는 2시간 러닝타임 내내 딴 생각이 안 들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의 느낌은 그리 개운치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결국은 부당거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최철기(황정민)의 모습이 나와 너무 닮아 있었고,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당거래를 감추기 위해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그의 모습 속에서 나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입맛이 썼다.
다 같이 얽히어 진흙탕을 굴렀는데도 결국 검사 주양(류승범)은 기득권층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것을 잃지 않는다. 이것 역시 너무나 현실적인지 않은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얘기일 텐데…. 결국 뭐라도 갖고 태어나지 못하면 영화 속 철기처럼 아등바등하다가 이해관계의 맨 아래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니 염세적이 되고, 내 현실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현실적인, 지독하게 현실적인 영화
영화 속의 가족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사랑으로 채워진 ‘우리 집’은 어디에도 없다. 검사(류승범)에게 아내는 힘 있는 장인을 가져다 준 여성일 뿐이고, 형사(황정민)에게 가족은 부담이고, 의무다. 힘겹게 미용실을 운영하는 동생이나, 형사인 매형 팔아 뒷돈을 챙기는 매제나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심지어 영화 후반부 가족은 형사의 발목을 잡는 짐스러운 존재까지 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형사(황정민)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생기지도 않은 가족이 짐스럽게 느껴졌거나 깨지지 않는 답답한 현실에 남의 집 귀한 딸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오랜 동료였던 대호(마동석)형사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결국 영화 후반부 철기는 대호형사 마저도 외면하며 자신의 출세욕을 불태우게 된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자랑스럽고, 돈 잘 버는 남편이 든든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가 의지가 되는 세상에 내세울 것 없는 가족은 그저 불편한 존재인 뿐인 걸까.
성공의 견장을 얻고도 오열할 수밖에 없는 철기(황정민)의 모습은 돈, 가족, 성적, 명예를 ?갖추어가는 우리들이 외로움과 마주할 때의 모습이다. 헛헛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현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자. 철기처럼 후회와 회환의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내 소중한 것들을 전혀 부당하지 않은 거래들로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영화 ‘부당거래’,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일수록 꼭 한번은 봐야할 영화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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