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오를 듯한 처마와 그 끝에 달린 풍경의 은은한 울림이 차의 향기를 더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모방해 보고 싶은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다.
한옥이 다시 우리 생활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직접 생활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옥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옥을 찾아 발품을 판다. 아름다운 우리 한옥을 찾아 전통의 멋을 느껴보면 어떨까.
다시 주목받고 있는 한옥
한옥은 자연의 섭리를 꿰뚫은 조상들이 돌과 나무와 흙의 자연 재료로 하늘(태양), 땅(바람과 비), 사람을 조화시킨 위대한 걸작이자 집을 비례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고귀한 유산이다.(‘한옥을 말한다’ 중에서. 박광수 저. 일진사)
한옥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친화적이란 점이다. 하지만 입식생활과 서구식 목욕탕 문화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 불편한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 실외 화장실과 부엌이 그렇다. 그래서 요즘의 한옥은 불편했던 화장실과 부엌을 서양식으로 들여놓은 경우가 많다. 또 해마다 손을 보아야 했던 창호지 대신 유리를 끼워 편리성과 보온성도 더했다.
하지만 한옥에 산다는 것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래서 잠시나마 한옥의 정취에 빠져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한옥을 찾아 이리저리 발길을 돌려본다. 그래서일까. 아이들과 함께 알음알음 고택체험을 찾아다니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거리다. 전국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한옥들 중 70%가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서울시내에 있는 북촌도 함께 가야할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쉽게 나서지지 않는다.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택 필경재
서울에서 쉽게 구경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한옥은 없을까? 송파 지역은 조선시대 성 밖의 소외된 벌판이었다가 1970년대부터 대단위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개발된 곳이기 때문에 잘 지어진 유서 깊은 한옥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가깝다고 여겨지는 곳으로는, 잠깐이지만 세종대왕의 능이 있었던 인연 덕분인지, 수서동에서 오랫동안 잘 보존된 한옥을 한 채 볼 수 있다.
삐죽삐죽 높이 솟은 건물 사이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고택 필경재(必敬齋)가 바로 그곳이다. 필경재는 조선조 9대 임금인 성종 때 지어져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가옥으로 1987년에는 문공부에 의해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됐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후손들이 살아온 종가집이다. 집 뒤편으로는 광평대군을 비롯하여 태조의 7남인 무안대군 등 여러 왕손들이 묻혀있는 궁촌 별묘와 연결되어 있어 도심 속에서의 색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우리의 멋과 맛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기 위해 1999년부터 궁중음식 전문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둘러보거나 식사를 하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문의 (02)445-2115
한채당과 선정릉, 헌인릉의 재실
운치 있는 음식점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한옥을 짓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 한채당(韓彩堂)이 그렇다. 하남시 망월동에 위치한 한채당은 잠실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구리 방향으로 20분가량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한정식 식당으로, 건물 안쪽의 넓은 잔디밭과 자연의 재료를 이용한 환경과의 조화를 자랑한다. 미사리 가는 길에 구경삼아 들러 사진만 찍어도 좋고 시간이 된다면 깔끔한 한정식으로 한 끼 채우기에도 괜찮은 곳이다. 문의 (031)792-8880
이 외에도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의 여러 전각들과 선릉?정릉, 서초구에 위치한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 묘역(청권사), 헌릉과 인릉 등에서 우리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손민희 리포터 s-min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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