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달맞이 언덕길 갤러리 투어

작품 속으로 풍덩, 가을 낭만에 한껏 취하다

지역내일 2010-11-19 (수정 2010-11-19 오전 8:45:26)


맥화랑 전시


가을은 뭘 해도 낭만이 그려지는 계절이다. 뜨거웠던 여름을 돌이켜보면 폼만 좀 잡고자 해도 이내 땀이 주르륵, 우아함은 오간데 없이 냉수와 그늘을 찾게 되지 않던가. 봄이 오면 몸도 마음도 그저 붕 떠서 야외로 놀러갈 궁리다. 겨울은 괜스레 처량해 보인다. 고독을 씹어도, 쓸쓸히 코트 자락 날려도 그 모습 그대로 멋있어 보이는 계절은 역시 가을이다.
낙엽 흩날리는 만추, 여럿이서 나누는 수다도 좋지만 철저히 고독을 즐겨주리라 마음먹었다. 맛난 음식점과 근사한 커피숍이 즐비한 달맞이 언덕길 군데군데 갤러리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그래서 늦가을에 어울리는 혼자놀기로 갤러리 투어에 도전했다.


K갤러리 전시 작품-김병종 ‘모로코 기행’


좋은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보는 눈도 높아져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부산시청 홈페이지에도 소개된 ‘갤러리 몽마르트’. 마침 ‘배꽃 시리즈’로 이름난 황순칠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림에 문외한인 리포터가 보기에도 화사한 색감이 순박한 배꽃에 물들어있어 감미롭게 느껴졌다.
갤러리 입구에 전시된 멋진 조각품은 얼마 전 초읍어린이대공원에 설치된 ‘확장하는 꿈’이라는 제목의 거대한 조형물로 유명한 권달술 작가의 작품이라 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다음번 대공원에 갔을 때 마주칠 조형물은 분명 가깝게 느껴질 테다.
몽마르트에서 나와 가까운 ‘갤러리 이배’로 향했다. 보통 갤러리 휴관일이 일·월요일이라고 들었는데 문이 잠겨 있어 잠깐 당황했다. 다행히 내부에 담당자가 있었고 일요일에 전시를 끝낸 뒤 다음 전시를 위해 준비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혼자 하는 투어에 갤러리촌 지도를 비롯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생각지 못한 친절에 기분도 발걸음도 마냥 신이 났더랬다.


갤러리 몽마르트 황순칠 작가 전시


이해 안 되는 작품은 가볍게 통과, 내가 보고 좋은 그림이면 족해

빨간색 간판이 돋보인 ‘맥화랑’. 화랑 한 편에서는 서양 미술사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화랑의 장영호 대표는 “4~5년 전만 해도 전시 관람은 일반분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어요. 그런데 부산도 몇 년 전부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아무래도 매스컴에 소개도 많이 되다 보니 요즘은 가족 단위로 달맞이 길에 놀러 왔다가 들르는 경우도 많아요”라며 적극적인 관람객이 느는 추세라 했다.
“그림을 보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어요. 추상화는 경음악으로 구상화는 가사가 있는 가요를 떠올리시면 되요. 미술이 어렵다고 지레 벽을 쌓고 경직돼 버리는데 굳이 이해할 필요가 있나요. 어려우면 그냥 그 작품은 통과해 버리세요. 내가 보기에 좋고 위안이 되는 작품이면 그걸로 족합니다.” 장 대표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가끔 우리는 마음에 와 닿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작품을 두고 단지 유명한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이해하려들지는 않았는지. 그런 경직된 사고가 그림에 대해 거리감과 어려움을 가지게 하는 건 아닌지. 위대한 작가의 훌륭한 작품도 내가 별로면 내게는 안 맞는 작품일 뿐이다 생각하니 왠지 전시 관람이 만만해지면서 덩달아 기분까지 좋아졌다.


권달술 작가 작품


작가와의 우연한 만남, 짧지만 소중한 시간

‘갤러리 화인‘에 들어서자 천에 수묵을 입힌 그림들이 눈에 확 들어 왔다. 화려한 색을 내내 접하다가 갑자기 수묵담채화를 보자 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담담하게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배의 모습. 항구는 만남과 떠남이 교차하는 장소라 더욱 애틋한 느낌이다.
혼자만의 감상을 즐기고 있는데 관계자인 듯 보이는 두 명이 들어왔고 바로 “작가님이세요”라는 큐레이터의 말을 들었다. 운 좋게도 작가를 만나게 됐다. 웅장한 그림을 보면서 당연히 나이가 좀 있는 작가려니 했는데 앳되고 여린 아가씨(?)같은 모습이라 신선했다. 역시 어설픈 추측은 나쁜 습관이다.
남주미 작가는 “항구를 소재로 삼은 건 아무래도 부산이기 때문이죠. 전시 제목 ‘休’에서 보듯이 배가 정박해 쉬고 있는 모습에서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쉬러 가는 모습을 담아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추상화가 아니어서 반가웠다는 말에 “현대 미술이 다소 난해하긴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작품을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작품과 처음 만났을 때 받은 그 느낌이 중요합니다”라며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친절한 답이 돌아왔다.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작가님.


남주미 작가 작품


작품 감상하며 느긋한 한 때를 보내다

유명한 ‘채스갤러리’를 거쳐 소담스레 예쁘게 꾸며진 화단 속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원래 카페를 하던 자리에 ‘K갤러리’가 보였다.
문을 열자마자 화려한 색에 눈이 즐거워졌다. 좋아해마지않는 파랑부터 앙증맞은 노랑, 빨강에 이르기까지 설레게 만드는 색상들. 제목도 작품도 어렵지 않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나홀로 즐긴 갤러리투어는 달맞이길의 이국적인 풍경과 맞물려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작품 보고 밥 먹고 차 마시며 느긋한 일상을 누리는 건 내게 주는 작은 사치였다. 어떤 이는 너무 행복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 가을, 가슴 속에 스며드는 작품을 보며 행복감을 맛보고 싶었다. 그 행복감을 쓸쓸한 겨울을 따스하게 날 수 있는 자양분으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작품과의 소중한 만남은 예상대로 행복했다. 가을이 겨울을 마중하고 있다.


화단 속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K갤러리




갤러리 이배 전시-변대용 ‘아이스크림먹는 백곰3’


갤러리 투어 tip
갤러리 구석구석을 잘 둘러보고 싶다면 정확한 위치와 휴관일을 알고 가는 것이 좋다. 보통 두세 개의 화랑이 다정스레 이웃하며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갤러리도 있어 도보만으로는 힘에 부칠 수가 있으니 참고하자.  




이수정 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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