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인터뷰/ 실버모델 이동찬씨

은발의 열정으로 모델에 도전하다

60세에 시작한 새로운 분야, 적성에도 맞고 보람도 느껴

지역내일 2010-12-13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모습의 이웃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로 원가경쟁력을 갖춰야하는 기업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스타 모델료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소비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일반인 모델을 선호하는 추세다. 게다가 일반인들은 스타들이 전하지 못하는 현실감을 전달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퇴직 후, 실버모델로 활동하면서 활기찬 제 2의 삶을 살고 있는 이동찬(67)씨를 만나 그의 잔잔한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실버모델 콘테스트로 달라진 인생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작은 돈이지만 제힘으로 벌어서 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반백의 은빛머리에 체크무늬 재킷을 입은 멋쟁이 노신사 이동찬씨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문을 연다. 그가 실버모델 일을 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씨는 젊은 시절, 연예계 쪽으로 특별한 재능이나 끼가 있진 않았지만 훤칠한 키와 잘생긴 이목구비 덕분에 주변에서 여러 번 권유를 받곤 했다고 회상한다. 

충청도 보령이 고향인 그는 30년 전 서울로 올라와 평범한 소시민으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며 살았다. 60세가 되던 해에 사업체를 정리하게 되었고, 무엇을 하며 노후를 보낼까 생각하던 차에 우연한 기회로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던 실버모델 콘테스트에 응모하게 되었다. 그는 “별 준비도 없었는데 운 좋게 발탁이 되어 얼떨결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면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강한 조명과 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고, 하다 보니 적성에도 맞아 지금까지 소신껏 달려왔다고 말한다.

편안한 노년의 이미지로 인기
목/ 모델로서 막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 모델 에이전시에 직접 또는 우편으로 접수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모델 카페나 홈페이지 등에 사진을 올려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초창기에는 경기도 좋았고 그나마 지금보다는 젊었기에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서 TV광고는 물론 홈쇼핑이나 지면광고 등에도 자주 출연해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으며 수입 또한 짭짤했다고 한다. 

서초구 잠원동의 ‘란피플 엔터테인먼트’ 김기현 팀장은 “무조건 신체조건이나 외모가 뛰어나다고 모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실버모델의 경우에는 우선 작품의 콘셉트에 맞아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노년의 이미지가 중요하다”며 이동찬님은 그런 면에서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한창 의욕적으로 일하던 중 그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다. 서로 의지하면서 오순도순 살았던 아내에게 몹쓸 병마가 들이닥친 것이다.

좋아하는 일은 나이도 잊게 한다
발병한 지 올해로 4년째, 모델로서의 그의 일도 거의 4년째 휴직상태에 들어갔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누군가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철저한 간병인이 돼야 해요. 그래서 제가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아내를 살리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그는 환자에게 맞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요리학원에 다니는 등 아내의 손발이 되어 극진히 간호했다. 아내를 데리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고 종교에도 심취해 심적인 갈등과 고통을 다스렸다. 그런 세월 뒤에 거의 절망적이던 아내의 병세가 기적같이 호전돼 지금은 같이 교회에도 나갈 정도가 되었다고. 

“이제부터는 차츰 모델일도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두 딸과 손자들이 제가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항상 용기를 북돋워 주곤 하지요.” 결혼 후 미국에 살고 있는 큰딸과 반포동 같은 동네에 사는 작은 딸은 아빠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내기를 고대하고 있단다. 요즘에는 사진동아리에 합류해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는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활기찬 노후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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