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사무소에 찾아왔던 두 부부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두 부부는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의 윗집 아랫집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양쪽 다 아이가 둘씩 있어 네 명의 애들은 윗집 아랫집을 오가면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친형제처럼 지냈다고 했다. 모든 일은 그 중 한 집 안주인이 가까운 친지의 교통사고 사망소식을 접하면서 시작됐다. 그 분은 “우리 부부가 교통사고로 함께 죽으면 우리 애들은 누가 돌봐주지?” 하며 고민에 빠졌고 그와 같은 고민을 이웃집 안주인과 나누었다. 그리고 두 집의 안주인은 그 문제를 남편들에게 상의하였고 결국 네 명 모두 같은 문제로 고민하게 됐다. 네 명은 함께 만나 의논한 끝에 서로 다른 집 부부에게 사고가 생기면 그 집 아이들을 데려다가 성년이 될 때까지 키워주기로 약속했다.
그들 두 부부가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자 우리 사무소는 갑자기 엄청 북적대는 사무소가 돼 버렸다. 한 쪽에서는 애가 울기 시작하고 다른 쪽에서는 다른 아이가 뛰어다녔다. 몇 분 동안 정신없는 상태가 지속됐지만 두 부부가 능숙하게 애들을 다루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그들 두 부부가 내게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됐는데, 만일의 불행한 사태가 생겼을 때 서로 다른 쪽 부부의 애들을 위해 후견인이 되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미성년의 아이들이 부모를 모두 잃고 나면 그들의 양육을 담당하고 재산을 관리하는 일은 후견인의 몫이 된다. 그 두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아이를 돌봐주기로 약속했다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준비를 해두지 않는다면 약속은 약속일 뿐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과 재산관리권은 별도의 후견인에게 맡겨지게 된다. 민법에 의하면 아이들의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중 가장 연장자가 자동적으로 후견인을 맡게 된다. 보통 조부모가 후견인이 되는 게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아주 연로한 조부모가 후견인을 맡게 되면 아이들의 양육이나 재산에 관한 것들이 삼촌, 고모 등에 의해 실질적으로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부모가 정말로 신뢰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예전에 맡았던 소송사건을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 아빠가 먼저 사망하고 엄마가 홀로 남아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은 외조부모나 이모들과 유대감을 형성하였다. 당시 친가 쪽에서는 엄마와 아이들을 외면했고 도와주기는커녕 전혀 만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마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그로 인한 억대의 보상금이 나오게 되자 애들의 고모는 연로한 친조모가 연장자로서 후견인이 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친조모를 대동하여 보험회사에서 보상금을 수령해 가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별 일이 많다. 친척이라고 다 믿기도 어려운 세상이지만 남이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경우도 있다. 혹시라도 언제 생길지도 모르는 사고를 대비하여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아이들을 의탁하고자 한다면 앞의 두 부부처럼 공증사무소에 가서 유언으로 후견인 지정을 해야 한다. 후견인은 중요한 사항에 관해 친족회의 감독을 받게 되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지정한 후견인을 잘 감독할 만한 친족회원도 유언으로 미리 선정해 놔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만이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증인 한정화 사무소
(02)477-0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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