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성장 발달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전은 충족과 좌절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욕구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시기에는 즉각적인 욕구 충족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 영아기의 어머니는 전심전력으로 아기를 살펴 가능한 가장 빨리 아기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한 인간이 타인을 위하여 이만큼 헌신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이 즉각적인 만족은 아기가 자라남에 따라 조금씩 지연되어야 하는 것이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불안정한 어머니는 아기가 퍽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먼저 불안하여 지나치게 즉각적 충족만 계속하려 한다. 반대로 아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부터 욕구를 자꾸 좌절시키는 것도 문제다. 아기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과 좌절시키는 것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이 균형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갖춰 적절하게 돌보기 위하여서는 어머니가 먼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알코올의존인 사람들에게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 행동 특성 중 하나는 조급증이다. 이는 술에 취했을 때 보다 단주를 시작하고 나서 술기운 없을 때 더 두드러지는 수가 흔하다. 너무 빨리 일에 대들어 너무 빨리 성과를 내려고 무리를 하다가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재발로 다시 미끄러지는 수가 흔하다.
이러한 조급증의 뿌리는 충족 연기 능력이 부족한 것과 연관이 있다. 성장기 동안 충족 연기를 적절하게 훈련받지 못한 때문이다. 과잉 충족에만 길들여졌거나, 지나치게 좌절만 시켜 욕구 충족에 대한 갈망이 압도한 때문이리라. 원가족 관계에서 균형적이지 않은 양육 경험을 한 때문이기 쉽다. 그래서 알코올의존인 사람들은 참고 기다리다 보면 인생의 웬만한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수도 있다는 삶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중독의 특성 중 하나는 즉각성 또는 즉시성이다. 이 세상의 모든 중독성 물질은 그 효과가 즉각적인 것이 특징이다. 담배를 피우면 불과 몇 초 사이에, 음주는 불과 몇 분 안에 긍정적인 정신적인 효과를 느낀다. 만약 술을 마시고나서 하루쯤 지난 다음날에야 기분 좋아졌다고 느낀다면 아무도 알코올에 중독될 리가 없다.
한두 달 술을 끊은 것과 이미 10년째 끊고 있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단주 자체는 하루하루 끊는 것에 불과하지만, 단주하는 동안 삶의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한두 달 만에 이룬 변화보다는 10년씩 충족 연기하며 몸에 밴 변화가 분명 더 단단할 것이 아니겠는가?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w.alja.or.kr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