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7월 ‘TBC 제3회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5인조 대학생 혼성 록그룹 ‘로커스트’는 ‘하늘색 꿈’으로 대상은 물론 가창상까지 휩쓸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 인기의 한 가운데에 당시로는 흔치 않은 여성보컬이었던 김태민씨가 있었다. 그녀의 순수하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이 단번에 젊은 층의 높은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7080세대들의 기억 속에 가창력 뛰어난 여성보컬로 여전히 남아있는 김태민씨가 1981년 로커스트 1집 이후 29년 만에 첫 독집 앨범을 냈다. 스무 살 리드보컬에서 원숙미 넘치는 중년으로 다시 우리 앞에 다가온 그녀를 만나 추억여행을 떠나 보았다.
20여 년 간 전업주부로 음악을 잊고 살아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 로커스트는 상업적인 활동보다 대학축제 무대나 영 일레븐, 젊음의 행진 등의 방송무대에 출연해 신선한 매력을 발산했다. 하지만 멤버들이 하나둘씩 유학을 가거나 입대를 하면서 팀을 해체하기 전에 기념음반을 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1981년에 나온 로커스트 1집 앨범이다. ‘내가 말했잖아''와 ‘바람'', ‘밤길'' 등 10여곡의 창작곡을 담은 이 앨범이 로커스트의 처음이자 마지막 독집 음반으로 남게 된 것이다.
밴드가 해체된 후 김태민씨는 음악활동을 접고 평범한 대학생으로 돌아갔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음악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전업주부로 2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작은 아이가 고3이었던 2004년 4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추억의 빅 콘서트 7080'' 공연 출연 제의가 들어 왔다. 그동안 TV 무대에 출연할 기회조차 사양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캠퍼스밴드 중 유일한 여성보컬이었던 그녀를 찾는 다른 밴드들의 요청을 마냥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딱 한 번만 나가보자는 마음을 먹고 무대에 오른 것이 23년 만이었다.
그녀는 “사실 예전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20여년 이상 가수로서의 자리를 비워 두었는데도 많은 분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반겨줘 너무 고마웠다"고 당시의 느낌을 말했다.
7080세대들과 노래로 언제나 함께할 터
세종문화회관 공연이 전석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 올림픽 체조경기장 공연에 이어 전국 투어 콘서트를 계속하게 됐다. 공연을 함께 하면서 1년 정도 고민을 하던 김태민씨는 결국 힘든 시대를 거친 7080세대들에게 노래로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자신의 가치라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해외공연에서 느낀 보람은 그녀가 음악을 끝까지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됐다. “해외교포 7080세대들에게 젊은 시절의 음악을 다시 들려주는 것은 ‘추억의 백신''을 맞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7~8시간씩 차를 타고 찾아온 그들에게 음향이나 악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 단지 한 공간에서 추억의 노래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해 했다."
김태민씨는 지난해 말 ‘사랑 그리고'', ‘사랑하고 싶어 다시'' 등의 신곡과 새롭게 리메이커한 ‘내가 말했잖아'', ‘그대여''를 함께 담은 첫 독집 앨범을 냈다.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 발라드풍의 노래들이 편안하고 반갑다. “노래를 잊고 산 세월 동안 목소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그녀의 말처럼 한층 더 깊어진 가창력과 멜로디가 가슴을 파고든다.
농협하나로클럽 노래교실은 또 다른 무대
남편과 두 아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적극 응원해주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김태민씨. 기존의 공연들 외에도 지난 10월 2일에 열린 ‘유방암 인식 향상을 위한 걷기대회'' 등의 의미 있는 행사나 요양원 등 봉사공연에도 열심이다.
항상 자신의 삶이 ‘럭키'' 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녀가 지난 5월부터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에서 노래교실을 연 것이다. 40대 초반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마치 그녀의 팬클럽 회원들 마냥 열성적으로 함께하는 모습이 여느 노래교실과는 다른 분위기다. 로커스트 리더보컬 이미지를 벗고 가을 분위기에 맞는 가요와 트로트까지 멋지게 소화하며 노래교실을 흥겨운 분위기로 몰아가는 그녀의 마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일단 노래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거나 펜을 마이크 삼아 진지하게 일일 가수가 되는 회원들까지, 주부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김태민씨는 “교재를 만들고 신곡도 연구하고 불러 보면서 노래교실 준비를 하는 것이 힘들지만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열성적으로 찾아 오는 회원들을 위해 보다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도록 노래교실을 더 가꿔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내가 말했잖아''를 신나게 합창하면서 수업을 마무리 한 후 해외공연을 떠나는 그녀에게 일일이 인사를 전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사진 박경섭 작가(스튜디오 ZIP)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