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에 성희롱까지, ‘알바 중·고생’ 부당 대우 심각

인권 사각지대, 브레이크가 없다!

지역내일 2010-11-23
용돈벌이나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이 고통 받는다면?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상당수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언이나 폭행은 물론 성희롱까지 당하는 등 인권침해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 청소년의 30퍼센트 이상이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쉽게 접근하지만, 부당 대우로 마음의 상처를 당한 아이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연소자 근로 보호 조항 위반으로 사법 처리를 받은 경우는 한 건에 그칠 정도로 법적 보호는 미비한 상황이다. 인권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알바 중·고생’ 절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일 만 15~18세 학생(이하 학생) 652명과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하 학교 밖 청소년) 100명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 분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시간당 최저임금(2009년 기준)인 4천 원 미만을 받는 학생이 50퍼센트에 달했다.
임금 체불이나 미지급 문제도 여전했다. 학생은 18퍼센트가, 학교 밖 청소년은 24퍼센트가 돈을 받지 못했거나 체불 문제를 경험했다. 초과근무 수당은 학생의 15.8퍼센트, 학교 밖 청소년은 18퍼센트가 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상 연소자 법정 근로 시간 초과 문제도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의 27퍼센트가 하루 7시간 이상 일했으며, 학교 밖 청소년은 절반 이상(54%)이 초과근무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상 만 15세 이상 18세 미만인 경우 하루 7시간 초과근무가 불가능하다(단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1일 1시간, 일주일 6시간 이내에서 연장 근무 가능).
카페 노래방 비디오대여점 등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을 고용하지 못하는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학생은 5퍼센트, 학교 밖 청소년은 14퍼센트나 됐다. 전문가들은 고용 금지 업소 아르바이트 경험은 흡연, 가출, 음주 등 일탈 행동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성적 침해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학생의 4.8퍼센트, 학교 밖 청소년의 18퍼센트가 성희롱 등으로 고통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상 재해도 적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학생 10명 중 3명 이상(30.3%)이 아르바이트를 하다 다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학교 밖 청소년 가운데 업무상 재해를 당한 청소년은 27퍼센트였다.

업주는 밀린 월급만 지급하면 그만?
문제는 청소년들이 임금 체불이나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 신고를 해도 업주는 밀린 월급만 지급하면 그만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성희롱이나 폭행 등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신고 접수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용노동부의 ‘연소 근로자 사업장 감독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점검 사업장 1천641곳 중 약 85.8퍼센트인 1천408곳이 법 위반 사업장에 해당했다. 전체 위반 건수는 4천749건으로  2년 새 2.8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사법 처리를 받은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일을 하고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법정 근로 시간을 넘겨 일하는 등 노동 관계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온 청소년들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상 18세 미만 청소년은 가족 관계 기록 사항에 대한 증명서와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서를 사업장에 비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 따르면 부모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은 71.1퍼센트, 학교 밖 청소년은 46퍼센트였다.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학생은 80.8퍼센트, 학교 밖 청소년은 74퍼센트로 나타났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저소득층 가정의 청소년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일을 그만두지 못해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단순 반복 업무는 진로 교육에 도움 되지 않아 
이러한 현실 때문에 엄마들은 아이들이 방학 등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두 아이를 둔 김정미(45·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는 “고등학생이 된 첫째 아이가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했지만, 반대했다”고 말했다. 세 자녀를 둔 박은경(47·서울 성동구 옥수동)씨 역시 “공부에 지장이 되는 게 걱정될뿐더러, 돈 몇 푼 때문에 아이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 분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주로 하는 아르바이트는 학생의 경우 전단지 돌리기(26.9%)나 패스트푸드점 점원·배달(11.3%) 등 단순 반복적 업무가 주를 이뤘다. 이처럼 단순 반복 업무 수행은 진로 교육 차원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청소년상담원 복지개발팀 조규필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아이에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엇나갈 수 있으니 때론 협상 아닌 협상을 할 필요가 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신 현재 학업 수준을 유지하거나 공부하는 시간을 지키도록 하는 등 조건을 제시하는 겁니다. 막연히 친구들을 따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하는 경우라면 대부분 쉽게 포기하죠. 아이가 수긍한다면 말리기보다는 적정 기간 동안 체험해보도록 하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때 부모가 아이들의 적성이나 진로와 관련이 있는 아르바이트 정보를 제공해야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미국의 경우 학기 중에는 방과 후 하루 최대 3시간, 평일에만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교 수업이 진행되는 시간대에는 일을 할 수 없다. 영국은 아동과 청소년법상 학기 중에는 하루 2시간, 주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김가람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수업일에도 근로 시간 제한이 없다. 이는 학기 중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의 학습권이나 건강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기의 건강한 성장 방해, 대책 마련 시급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이 겪는 임금 체불 등 부당한 대우나 폭언, 폭행 등 비인격적 처사는 오히려 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각인시킬 수 있다. 여성가족부 백희영 장관은 “청소년의 아르바이트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들을 제4차 청소년정책기본계획 수정·보완판에 반영해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최영희 의원은 지난 2일 일하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알바 보호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8세 미만 연소 근로자의 신고 편의를 위해 학교, 시민 단체 등을 근로조건 위반 정보 신고 기관으로 지정하고, 연소 근로자 전담 근로감독관을 신설하는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다.
최 의원은 “청소년들은 최저임금보다 못한 저임금에 시달리며 임금 체불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방치되고 있다”며 “4인 미만 사업장까지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고, 학교 등을 신고 기관으로 지정해 청소년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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