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그리는 화가, “꿈을 이루어가는 여정 그 자체가 행복하다”
고척동의 한 화실. 손때 묻은 캔버스 앞에 머리를 질끈 묶고 앞치마를 두른 한 여성이 막바지 그림 칠 작업이 한창이다. 탁자 여기저기에 쓰다 남은 유화물감과 팔레트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걸 보니 어제도 밤새워 그림을 그렸다 보다. 한 손에는 붓을 한 손에는 팔레트를 들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해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지함이 묻어 나온다. 대한민국신미술대전 초대작가 해화 한광순 화가의 작업실 모습이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화실로 밤에는 한 원장의 작업실로 24시간 불이 꺼질 여유가 없다.
연극배우에서 화가로
한광순 원장이 화가가 되는 꿈을 가진 건, 그녀가 열 살 때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께서 책 두 권을 사오셨어요. 노란 해바라기가 그려진 위인전 ''고흐의 일생''과 빨간 표지의 ''왕자와 거지''였어요. 내 것으로 처음 받아본 책이라 표지가 다 헤지도록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고흐처럼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고 왕자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림을 잘 그렸던 한 원장의 그림은 항상 교실 뒤 환경 판에 붙었다. 어느 날은 지폐를 그렸는데 한 원장의 아버지는 그 돈으로 담배를 사오셨단다. 형제가 다섯이나 되는 어려운 형편에 그림을 배운다는 것은 사치이고 불효였을 수밖에. 배우지는 못했을지언정 그 끼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연극배우가 된 한 원장은 대학로는 물론 지방공연까지 다니며 청춘을 보냈다. 극단에서는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될수록 자급자족을 선택했고 손재주가 많은 한 원장이 무대 장식을 하고, 배경을 그리고, 소품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희열에 온몸이 떨렸다고. “그림을 그리니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무대를 떠나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어요.”
배우의 길에서 돌아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일은 고독했지만 어느 때보다 열심이었다. 늦은 나이에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성실만한 지혜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림을 한 장 그려 바닥에 깔고, 또 한 장 그려 바닥에 깔고, 이렇게 반복되는 연습장이 그녀의 키를 넘어서는 순간 ‘나는 최고가 될 것이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70여회의 그룹전을 치루면서 마흔 살이 되면 개인전을 하고 싶었다는 한 원장. 2006년 6월 처음으로 ‘갤러리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 이후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007년 ‘예가족갤러리’, 2008년 ‘미술관 자작나무숲초대’, 2009년 ‘세종문화회관 광화랑’과 ‘혜원갤러리’, 드디어 올해 3월 ‘인하대병원초대’, 6월에는 ‘갤러리아르케초대’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꿈틀거리는 나의 열정을 물감에 묻혀 캔버스에 휘젓고 싶었습니다. 2006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열 살 때 처음 만난 해바라기를 그렸어요.”
세렌디피티(Sendipity),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인생은 우연한 행운의 연속이라 생각하는 한 원장. “조금 오래 걸려도, 출발이 늦더라도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잘 기억하고 있으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 한 원장의 신념이다.
미술학원 원장으로 인생 이막을 열다
바다 해(海) 그림 화(畵), 바다를 화폭에 담고 싶어 海畵(해화)란 아호를 가진 한 원장은 해 맑다. 마흔을 넘긴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활짝 웃을 땐 온 입이 귀에 까지 걸릴 것 같이 크게 웃어 같이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웃음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녀의 간절한 꿈과 폭발적인 열정을 익히 알기에 그녀를 따르는 팬들도 참 많다. 아이들마저도 선생님을 팬으로 삼을 만큼 그 열정을 인정받고 있다.
화가, 작가, 선생님…. 그녀에게는 수식어도 많이 붙는다. 이를 테면 그림만 온전히 그릴 때엔 ‘화가’ 그림이나 조소 디자인 등의 미술활동을 통해서 그린 이들의 심리를 진단하고 치료할 때는 ‘색채미술심리치료사’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엔 ‘선생님’이라 불린다.
한 원장은 현재 대한민국신미술대전 초대작가, 색채미술심리치료사. ART AZIT 미술교육원장, 한국미술협회· 양천미술협회· 한국여성작가회· 한국미술창작협회· 현대여성작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수상경력도 또한 열정만큼 화려하다. 제2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서울시립미술관경희궁분관)을 시작으로 제10회 대한민국수채화미술대전 우수상(공평아트센터갤러리), 제13회 한국여성미술공모전 장려상(세방아트홀), 제37회 국제문화미술대전 입선(서울국제디자인프라자), 제14회 한국여성미술공모전 특별상(세방아트홀), 제2회 대한민국환경미술대전 입선(단원미술관), 제18회 대한민국회화대전 입선(서울국제디자인프라자), 제27회 한국문화미술대전 입선(서울시립미술관), 제41회 국제문화미술대전 은상(서울국제디자인프라자), 제3회 대한민국글로벌미술대전 입선(경기도문화의전당), 제25회 한국미술대전 입선(서울미술관) 등 참으로 많은 상을 받았지만 한 번도 내세워본 적이 없다.
고척동의 작은 미술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리는 한 원장은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지금 다 누리고 있는듯 하단다. 일이 취미이고, 취미가 곧 일이기 때문에. “배워서 남 주는 일이 나의 천직인 것 같다”며 “아내, 엄마, 며느리, 서양화가, 미술학원장, 미술심리치료사 어느덧 나의 이름은 나의 꿈과 나의 일에 빛나는 보석 같다”고 덧붙인다.
아직도 꿈을 꾼다는 한 원장. “아름다운 것은 세상이다. 세상의 꿈이다”라고 주장하는 한 원장의 꿈은 뭘까? “그저 하루에 여덟 시간씩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호호할머니가 되어도 지금처럼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살면 너무 재밌고 신날 것 같아요.”
“인생이 그리 길지 않기에 하고 싶은 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죠. 물론 가장 큰 것은 사랑이구요”라고 말하는 한 원장, 통속적 삶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큰 꿈을 안고 안내자도 없이 현실의 벽을 허물어가는 그녀의 신나는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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